보헤미안 랩소디, 왜 한국에서 터졌나
입력 2018.12.11 08:11
수정 2018.12.11 08:12
<하재근의 이슈분석> 음악영화 사랑…‘사회 부적응자 정서’에 공감
<하재근의 이슈분석> 음악영화 사랑…‘사회 부적응자 정서’에 공감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이 700만 돌파에까지 이르렀다. 애초에 수입사에선 예상 최대치를 200만 관객으로 잡았었다. 그 정도만 해도 놀라운 수치였고, 300만을 넘어섰을 때도 600만까지 바라보긴 힘들었다. 하지만 신드롬과 함께 엄청난 뒷심이 터지면서 700만 고지에까지 이르렀다. ‘신과함께-인과 연’(1227만명),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1121만명)에 이은 올 흥행 3위의 성적이다. 액션블록버스터가 아닌 작품으론 믿기 어려운 흥행이다.
중노년층이 반응하자 매체에서 크게 다뤘고 그러자 이를 트렌드로 인식한 젊은 관객이 가세했다. 일반적인 뮤지션 소재 영화들은 분위기가 어둡고 음울한데 반해 이 영화는 비교적 밝았다. 특히 마지막 라이브에이드 공연 장면이 절정을 형성해 영화 분위기를 살렸다. 또, 프레디 머큐리의 안타까운 삶과 마지막 공연이 합쳐져 막판 감동, 눈물, 여운을 형성했다. 대중흥행영화가 된 것이다. 또, 이 영화를 통해 접하게 된 퀸의 노래들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계속 회자되며 입소문 효과가 나타났다.
이런 점들이 전반적인 흥행의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유독 더욱 강한 흥행 열풍이 나타난 것은 우리 관객이 막판 휴머니즘 감동 코드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영화가 마지막에 감동이나 눈물을 주면 천만관객에 쉽게 도달하는 경향이 있다.
또, 멜로디성이 강한 퀸의 노래들이 한국인의 구미에 맞았다. 서구권의 록밴드 팬들에게 퀸의 음악은 조금 약하다는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무거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이 인기를 끄는 나라가 아니고, 고음이 강조되는 퀸의 멜로디가 더 인기를 끌기 쉬운 풍토다.
또, 한국에서 기존 대중음악계에 대한 식상함과 반발이 유독 컸다. 전 세계 어디도 우리나라처럼 아이돌 댄스음악이 대중음악계 전체를 독식한 곳은 없다. 그렇다보니 반발도 클 수밖에 없어서, 가끔 아이돌 댄스음악이 아닌 음악이 대중매체에서 부각되면 크게 환영 받는 일이 생긴다. 이번에 퀸이 선사해준 록밴드 음악이 그런 환영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퀸과 프레디 머큐리가 절대적 존재로 추앙받으면서 더욱 영화 열기가 커졌다.
또, 우리나라는 중간이 없고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중박이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박이거나 쪽박이거나 양자택일인 것이다. 일부 헐리웃 영화들이 한국에서 천만 또는 그에 가까운 성적을 올리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비정상적인 쏠림 현상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영화 흥행에서도 비정상적인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트렌드, 대세’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그래서 일단 대세가 되면 더욱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현상이다. 이런 것도 ‘보헤미안 랩소디’ 열기를 더 키웠다.
무언가의 좋은 점을 발견하면 지나치게 떠받드는 경향도 있다. 이래서 수많은 ‘~빠’ 현상이 나타나고 인터넷이 팬덤 간의 격전장이 되기 일쑤인 것이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백종원 절대화 현상도 이런 흐름이다. 퀸과 프레디 머큐리가 아이돌 음악과는 다른 대안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이것이 절대화돼서 더욱 열기가 뜨거워졌다. 그런 퀸의 가치를 담은 영화이고, 또 스토리의 감동도 있기 때문에 이 작품 자체도 절대화돼서 일종의 숭배 대상으로 격상됐다.
요즘 콘서트 떼창 문화가 발달하면서 그것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많아졌는데, 이 영화에 마침 실제 콘서트를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 있다 보니 영화관에서 떼창하는 싱얼롱이 떴다. 그것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반복 관람에 나서면서 흥행 뒷심을 견인했다. 또, 한국사회가 다양한 취향과 예술이벤트가 발달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특이하고 재밌는 이벤트에 굶주려 있는데 마침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 상영이 그런 이벤트로 입소문을 탔다. 매체들이 이 현상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연일 대서특필하자 이 자체에 마케팅 효과가 생겼다.
또, 최근 10여 년 사이에 한국에선 음악 영화가 사랑 받는 경향이 생겼다. 음악영화에 익숙하고 그것을 선호하는 관객층이 생긴 것이다. 이 영화에 흐르는 것과 같은 ‘사회 부적응자 정서’에 공감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 유난히 뜨겁게 터졌다고 할 수 있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