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m 건너간 발전소, 내부는 '컴컴'…민주당 "그 자체로 위험"
입력 2018.12.22 03:00
수정 2018.12.22 12:17
이해찬, 故김용균 씨 빈소 찾아 고개 숙여… "근본적 해결 하겠다"
김씨 부모 "더이상 다른 아이들 다치지 않길 바라" 눈물로 호소
이해찬, 故김용균 씨 빈소 찾아 고개 숙여… "근본적 해결 하겠다"
김씨 부모 "더이상 다른 아이들 다치지 않길 바라" 눈물로 호소
"위험하다,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다"
김성환·남인순·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태안화력발전소를 빠져나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굴에는 검은 석탄가루가 묻은 채였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21일 故김용균 씨의 사고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태안화력발전소를 찾았다. 이들은 사고 현장을 방문한 뒤 한목소리로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자체가 매우 위험한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계약직 컨베이어 운전원으로 근무했다.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그의 나이 24세였다.
작업장을 둘러본 우원식 의원은 "기계를 멈추는 안전장치가 있다고 하지만 굉장히 엉성하고 허술했다"며 "(장치를) 매우 팽팽하게 당겨야 컨베이어 벨트가 중단되는데 긴급한 순간에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성환 의원은 "1~4호기가 구식이고 김 씨가 일하던 9~10호기는 현대적(신식)이라는데, 저희가 보니까 발전소 자체가 매우 위험한 시설이었다"라며 "혼자 일해서 사고가 나고 2인 1조이면 안전하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다.
어둡고 좁은 작업 환경…240m 구멍 뚫린 다리 건너가야
여당 방문 앞두고 대대적 청소…안전장치도 사고 후 설치
태안화력발전소는 업무 환경도 열악했지만, 업무 장소로 가는 길 자체도 험난했다.
9~10호기 발전소 내부로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발전소 꼭대기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건물 바깥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직접 올라가야 한다.
또 하나는 건너편 건물과 연결된 다리를 건너는 방법이다. 다리 길이만 240m가 넘는다고 했다. 다리와 계단은 구조물 밑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위험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 관계자는 "사즉생의 각오로 건너가야 한다"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안 가는 게 좋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되도록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사망한 김 씨가 일하기 위해 매일같이 다니던 길이었다.
기자는 결국 김 씨가 사고당한 현장을 갈 수 없었다. 좁고 위험한 현장 상황을 고려해 남기자 1명만 들어가기로 했다. 민주당에선 김성환·남인순·우원식 의원이 함께 갔다. 고령의 이해찬 대표는 발전소 밖에서 지켜봤다.
대신 아직 가동 중인 1~4호기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김 씨가 일하던 9~10호기와 비슷한 구조와 체계로 가동된다고 했다. 관계자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내부에는 엄청난 양의 분진이 있다"며 방진 마스크 착용을 거듭 강조했다.
작업 현장 주변에는 매캐한 석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부는 좁고 어두웠고 미세한 먼지와 쇳가루가 가득했다. 현장 관계자가 작업 환경을 설명했지만, 쉴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소리에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바닥에는 탄가루가 진흙처럼 질퍽거렸다. 고작 10분 있었는데도 눈과 목이 따가웠다.
현장 관계자는 이것도 평소보다 훨씬 깨끗한 상태라고 했다. 발전소가 이해찬 대표의 방문을 앞두고 대대적인 청소를 벌였기 때문이다. 컨베이어 벨트를 둘러싼 안전장치도 김 씨의 사고가 터진 후 설치됐다고 했다.
이같은 설명을 들은 이해찬 대표는 "발전소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발전소 점검을 끝낸 뒤 충남 태안군 태안의료원에 마련된 故 김용균 씨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해찬 대표는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저희가 발전소를 점검해봤는데 굉장히 불안한 시설이었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아드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대표는 "이게 다 외주를 줘서 비용을 아끼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지나친 경쟁을 시켜 외주를 주고, 외주 회사는 비정규직을 쓰고, 비정규직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들어가 일을 하게 되는 (악순환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해 "국회에서 법을 심의하고 있다. 며칠 전에 제가 직접 노동부 장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불러 1차로 논의했고, 다음 주에 다시 한번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불러 금년 내에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발생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거듭 호소했다.
김 씨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발전소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이 12명이라고 한다. 그때 제대로 진상규명을 했다면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넘어와서 우리 아들이 또 죽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파헤쳐서 더이상 다른 아이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 어머니 "보내지 말아야 할 곳에 보낸 것 같아 죄책감"
이해찬 "위험의 외주화 문제… 죽음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개선"
김 씨 어머니는 또 "제 아들의 죽음에는 구조적 원인도 있다고 본다. 공공기업인데 나라에서 이렇게 (열악한 환경을) 만든 게 아닌가"라며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에 놓였다는 게, 부모로서 보내지 말아야 할 곳을 보낸 것 같아 죄책감이 많이 든다"고 눈물을 훔쳤다.
김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밥 먹는 영상을 찍어놔서 봤더니 이불에 석탄가루가 한 움큼씩 있더라. 밥은 한 끼밖에 안 주니까 매일 햇반을 먹는다고 했다. 피곤해서 집에 오면 잠만 자서 나가는 것 같다"며 "한 번은 예비군 훈련을 나왔는데 핼쑥해져 있길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김 씨 부모의 말에 눈시울이 불거진 이 대표는 "어머님 아버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업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오도록 제가 철저하게 대책을 세우겠다"고 거듭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