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④] 앞으로 죽어갈 희생자들…北주민 2561만명
입력 2018.12.14 05:00
수정 2018.12.14 06:05
강도높은 주민 인권탄압·통제 지속…세습독재정권 유지 필수 수단
자발적 인권개선 가능성 ‘0‘…文대통령 "한반도 평화" 뒷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앞두고 한국에 때 아닌 '김정은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시민환영단·백두칭송위원회 등 환영단체가 우후죽순 등장했고, 급기야 광화문 광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위인이다"는 외침이 울렸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은 한반도 비핵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김씨 일가의 손에 묻은 희생자들의 피는 씻을 수 없을 정도로 짙으며, 김정은은 그에 따른 사죄는커녕 오히려 남한에 책임을 지우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왜 김정은이 환영 받을 수 없으며, 또 그래야만 하는지 김씨 일가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을 헤아려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①] 전쟁으로 죽어간 희생자들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②] 테러로 죽어간 희생자들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③] 숙청으로 죽어간 희생자들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④] 앞으로 죽어갈 희생자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2018 인권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인권을 무시할 때 야만이 되풀이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해석의 주체에 따라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을 겨냥한 도발로 인식하고 발끈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유럽순방 일정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평양행 초청장’을 전달했다.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의 방북을 추진해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고취시키고 북한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통일연구원이 펴낸 ‘2018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대다수의 탈북민들은 북한에 거주할 당시 ‘종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신앙심은 1인 독재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 종교의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한 것이다. 백서는 “북한이 신봉하는 주체사상은 자유로운 사상·양심·종교와 양립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민주당 경선후보 당시 “성평등은 인권의 핵심 가치”라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발언했다. 또 지난 2월에는 “미투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며 “관련 사건은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적극 수사하라”며 여성인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출했다.
북한의 여성인권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달 북한 성폭력 실태 보고서를 통해 “관리들에 의한 여성 성폭력이 만연해 있지만 낙인과 두려움, 구제책의 부재 탓에 신고·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 탈북민 출신 박사는 “북한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차별 질서가 여전하다”며 “남녀칠세부동석은 물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도 통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인권의 날 축사에서 “많은 국민들이 아동폭력 문제를 염려하고 있다”며 아동 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핵심 공약인 ‘아동수당’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아동 복지 증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반면 북한인권백서는 “북한 아동의 보건·복지 수준은 낮은 편이며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한 노력 동원 및 정치행사 동원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남북정상이 관람한 집단체조 예술공연에 동원된 아이들은 폭염의 땡볕 아래에서 장기간 혹독한 연습에 임하는 탓에 건강이 악화되고 교육권도 침해된다는 비판도 잇따라 제기돼왔다.
이같은 실상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인권의날 축사에서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한반도 평화가 우리 민족 모두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한반도 평화가 확립되면 북한 인권은 자연스럽게 개선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북한 인권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한반도가 안 평화로워서가 아니라 그것이 김정은이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례없는 3대 세습으로 정통성 및 권력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주민들이 체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인권·자유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면 정권은 존립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김정은이 자발적으로 주민 인권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반도 평화·교류가 공고화되면 김정은은 주민들이 남한세계를 접하고 체제에 회의감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오히려 탄압의 끈을 더 강하게 조일 수도 있다. 현 북한주민 2561만명이 당국의 탄압으로 정신과 육체가 살해당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주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드는 중동국가들의 독재와 달리 북한의 독재 형태는 주민들에게 한시도 쉬지 않고 정치적 메시지를 주입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악랄하다고 지적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UN COI)는 16가지 반인도주의 범죄행위 목록을 만들고 시리아와 북한의 인권유린 정도를 비교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북한은 ‘인종말살’을 제외한 15가지 반인도 범죄행위를, 시리아는 9개의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장 센터장은 “이는 시리아가 덜 악랄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김정은 정권의 조직력이 뛰어나고 어느 독재국가보다도 탄압역량이 높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반도 평화’라는 이익을 위해 ‘북한인권’ 문제를 뒷전에 두겠다는 것은 “정의로운 나라를 이루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도 배치된다.
북한의 인권 탄압을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압박해야만 문제가 개선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특히 미국은 인권·민주주의 가치 수호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함으로써 인권개선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김정은의 연내답방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모든 국민들이 쌍수로 환영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북한최고지도자의 방한 자체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서울답방을 통한 비핵화 견인 및 평화분위기 고조는 한국에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과거 김일성이 죽인 260만명, 근래 일으킨 침투·도발·테러행위 3094회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세습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사람’들을 421명 이상을 무자비하게 처형·숙청했고, 미래에도 자신의 권력 지키기 위해 주민 2561만명을 대상으로 유례없는 탄압을 계속 해나갈 것이 유력하다.
김정은은 이들 잘못에 대한 사죄와 개선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서울 땅을 밟더라도 결코 환영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