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 동기' 유기준과 김명수, 삶의 궤적 엇갈린 이유는
입력 2018.12.04 05:00
수정 2018.12.04 06:11
'원내대표 도전' 유기준, 김명수 대법원장 사시 동기
면접 탈락, 법무관 불허 고초에도 '긍정적 역사관'
행적 알려지며 '스토리 있는 후보'로 지지세 반등
'원내대표 도전' 유기준, 金대법원장 사시 동기
면접 탈락, 법무관 불허 등 혹독한 고초 겪어
4선 중진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원내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17~20대에 걸쳐 내리 당선된 영남의 율사 출신 국회의원에게서 연상되는 '웰빙 정치인' 이미지와는 달리 굴곡 많았던 행적이 알려지면서 지지세에 탄력이 붙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나경원·김학용 의원과의 각축전의 결말이 주목된다.
유기준 의원은 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공감 △계파 청산 △의총 활성화 △덧셈의 정치 △총선공약 실천 △외부인사 영입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 수호 등 '7대 공약'을 제시하며 원내대표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 의원은 "계파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쾌도난마(快刀亂麻)'의 정신으로 해결하겠다"며 "말로만 계파 청산을 할 게 아니라 공정하게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탕평책을 실시해 강한 야당으로 변신하면 계파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복숭아와 자두는 열매와 꽃이 아름다워 아래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의 '도리성혜(桃李成蹊)'라는 말처럼 덕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 사람이 모인다"며 "품격 있고 안정감 있으며 우리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분을 모셔오는 일을 내가 책임지고 해내겠다"고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영입을 약속했다.
원내대표에 출마선언을 한 유기준 의원은 율사 출신 4선 의원으로, 대변인·최고위원·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경쟁 상대인 김학용 의원이 '흙수저', 나경원 의원이 "계파가 없어 공천도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당을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았다"고 호소하는 것과는 달리, 당 일각에서는 유 의원이 '꽃길'만 걸은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유 의원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치장 동기'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한 학번 차이인 두 사람은 함께 유신 체제에 '짱돌'을 던지며 항거하다 유치장에 나란히 갇혔다.
먼저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유기준 의원이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2차까지 합격했으나 3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반(反)유신 시위 전력이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쩔 수 없이 다음해 3차에 재도전하기 위해 한 해를 놀고 있는데, 이 때 사법시험 1차를 붙어 있는 상태였던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도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했다. 유 의원은 "2차부터 붙을 생각을 하라"고 타박했다고 한다. 정작 김 대법원장은 문제없이 면접을 통과하며 두 사람은 사시 25회 동기가 됐다.
고초에도 긍정적 사관, 역대정권 공과 객관평가
'스토리 있는 원내대표 후보' 지지세 반등 국면
사법연수원에 가서도 유 의원의 고초는 계속됐다. 군법무관 지원이 허용되지 않아 연수원을 수료하고서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하는 극히 드문 사례를 남겼다. 이 때문에 판·검사 임용 기회도 사실상 놓치게 됐다. 법조 경력 손해까지 무형의 불이익은 산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반대로 김 대법원장은 근시로 병역을 면제받은 뒤,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순조로운 법조 생활을 시작해 대조적이었다.
'체제가 나를 철저히 버렸다'는 생각에, 국가에 대한 원망이 쌓여 한이 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환경이었다. 관세청 공무원이었던 부친마저 유 의원의 시위 가담으로 압력을 받아 사직해야 했다.
다행히 관세사 생활로 돈을 조금 모은 부친이 유학을 지원해줬다. 미국에서 당시 국내에 생소하던 해상법을 전공한 유 의원은 귀국해 해상법 전문 변호사로 활약했다. 나날이 수출이 늘고 해운·통상이 성장하던 시절에 그는 항도(港都) 부산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국익에 기여했다.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호형호제 하던 시절이 이 시절이다.
더욱 철저히 탄압받은 사람의 국가관과, 상대적으로 덜 탄압받은 사람의 국가관이 오히려 상식과 반대로 나타나는 것은 의아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유기준 의원실 관계자는 "나라가 버렸을지 몰라도, 유기준 의원은 한 번도 나라를 잊은 적이 없다"며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 역사관이 항상 바탕에 깔려 있고, 비록 유신에 반대했고 그로 인해 혹독한 탄압을 겪었을지언정 역대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철저히 객관적 시선을 견지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호형호제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민변을 만들더니 대통령이 됐다. '유치장 동기'였던 김명수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거쳐 삼부요인의 일원인 대법원장이 됐다.
만약 원내대표가 된다면 유 의원은 여야정 협의체나 각종 의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날 일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는 "과연 그분들이 유 의원의 눈을 바라보며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이 '꽃길'만 걸은 것으로 알았던 동료 의원들과,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초·재선 의원들이 최근 유 의원과의 '스킨십' 과정에서 이를 깨닫게 되면서 '스토리 있는 원내대표 후보'로 간주돼 원내 지지세도 반등 국면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구가 험지(險地)로 알려진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유 의원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느냐"고 놀라며, 원내대표 경선에서 지지를 약속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유기준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좌파들의 파상공세에 조금만 물러서면 설 자리가 있을 줄 알았던 분들도 있지만, 나는 가치를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당을 지켜왔다"며 "한국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지금, 전투를 앞두고 배를 불태우고 솥을 깨뜨리는 '분주파부(焚舟破釜)'의 각오로 야당 역사에서 가장 선명한 투쟁을 이끌어내겠다"고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