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한효주 "아픈 성장통 겪는 중, 더 단단해 지고파"
입력 2018.07.26 09:00
수정 2018.07.27 21:22
영화 '인랑'서 이윤희 역
"내 안의 틀 깨고 싶었다"
영화 '인랑'서 이윤희 역
"내 안의 틀 깨고 싶었다"
"인터뷰하면서 고해성사를 해버렸네요."
한효주(31)가 씽긋 웃으며 말했다.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그는 배우 한효주로서, 인간 한효주로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간 앞만 보고 일했지만, 이젠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있단다.
잠시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는 그는 주연한 영화 '인랑' 속 이윤희와 비슷했다.
'인랑'은 오시이 마모루 원작, 오키우라 히로유키 연출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남북한이 통일 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뒤 반통일 무장테러단체 '섹트'가 등장한 2029년을 배경으로 했다. 경찰조직 특기대와 정보기관인 공안부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기관 간의 숨 막히는 대결 속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그린다.
영화는 200억원에 육박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다. '인랑'은 충무로 스타일리스트 김 김독 특유의 연출이 더해져 비주얼적으로 보는 재미가 있다.
한효주가 연기한 이윤희는 통일선포 후 닥친 경제 위기로 사업에 실패하고 죽은 아빠가 물려준 작은 책방을 하며 혼자 살고 있는 인물.
이윤희는 빨간망토 소녀의 언니로, 동생의 유품을 건네주기 위해 찾아온 임중경과 처음 마주하고, 자신과 닮은 외로움을 가진 듯한 그에게 끌린다.
25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한효주는 "'인랑'은 내가 찍었던 영화 중에 제일 긴 시간 찍었던 영화라 기대도 됐고 궁금했다"며 "언론 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놓친 부분이 많아서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였다"며 "내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연민을 품고 촬영한 작품이라 촬영이 끝난 후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인랑'은 2012년부터 기획한 프로젝트다. 당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한효주는 관심이 있어 원작도 봤다. "저한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감사하면서도 특별한 기회였어요. 훌륭하고 멋진 배우들이 캐스팅된 터라 운이 좋았습니다. 원작 자체가 주는 모호한 정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이런 작품이 감독님의 색을 입어서 어떤 영화로 만들어질지 기대됐죠."
김 감독에 대해선 "은근히 재밌고 독특한 분"이라며 "감정 연기가 어려울 때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배우로서는 독특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한효주는 이윤희 캐릭터가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 중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지금까지 한 도전 중에 가장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운 느낌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고, 감독님이라면 이걸 가능하게 해주실 거라 생각했어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부수고 싶었고, 연기를 할 때 어떤 틀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촬영마다 틀을 깨는 게 무섭기도 했고,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한효주는 "나도 재밌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하게 틀을 깨진 못했지만, 알에 금이 간 정도는 되지 않을까"하고 웃었다. "연기를 할 때 감정적인 한계선을 만났을 때 멈추는 경우가 있었어요. '인랑' 촬영 때는 스스로 내려놓고 순간 느끼는 감정에 집중했죠."
배우는 윤희가 임중경에게 같이 떠나자고 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진심을 얘기할 수 없는 윤희이지만, 유일하게 진심을 얘기한 장면이란다. 잠을 못 잘 정도로 부담이 됐던 장면이기도 했다. 그 신을 찍고 나니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 들었고, 못 봤던 표정도 보였다.
한효주는 요즘 배우이자 사람으로서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떤 배우가 돼야 하나, 어떤 사람이 돼야 하나 고민해요. 주변분들에게 얘기하면 30대가 되면 다 거치는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인랑'이 신념에 대해 다루는데 나는 어떤 신념을 가졌는지, 앞으로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질문을 계속 하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까지 다다랐죠."
반전을 지닌 이윤희 캐릭터에 대해선 "진심을 얘기할 때 표정과 그렇지 않을 때 표정에 차이를 두고자 했다"며 "표정면에서는 원작보다는 다채롭지 않았나 싶다. 영화가 나타내는 모호함이 이윤희 캐릭터와 연장선에 있다. 특히 이윤희는 이도 저도 아닌 색깔이 나서 연기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윤희는 신념이 뚜렷하지 않아서 흔들리는 캐릭터예요. 근데 살고자 하는 의지는 강하고요. 힘들 수밖에 없죠."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점을 묻자 한효주는 "내가 고생했다고 하면 안 된다"고 웃은 뒤 "강화복을 입고 뛰어야 했던 배우들을 보고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강동원과는 '골든슬럼버' 이후 두 번째 호흡이다. 둘은 영화 개봉 전 열애설에 휩싸였다. "영화보다 열애설에 집중되는 것 같아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했어요. 두 차례 이어 작품을 하다 보니 의지가 됐어요. 서로 맛집을 공유하는 편입니다. 서로 힘든 캐릭터를 연기 하다 보니 의견을 주고 받으며 연기했고요."
한효주는 어린 나이에 꽤 촘촘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우연한 기회로 2003년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 나간 그는 2004년 MBC 시트콤 '뉴 논스톱5'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봄의 왈츠'(2006), '일지매'(2008), '찬란한 유산'(2009), '동이'(2010) 등 드라마와 '오직 그대만'(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반창꼬'(2012), '감시자들'(2013), '쎄시봉'(2015), '뷰티 인사이드'(2015), 'W'(2016), '해어화'(2016), '골든슬럼버'(2018) 등에 출연하며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특히 한효주는 영화, 드라마에서 모두 두각을 보이는, 몇 안 되는 여배우로 꼽힌다.
한효주는 "후회 없이 연기했다고 느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며 "내가 가진 거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은 점에 대해 감사하다. 받은 사랑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소모적으로 쓰이지 않나 느낀 적 있냐는 질문에는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부재를 절실히 느낀다"며 "이 부분에 대해선 배우로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 한효주로서 고민은 무엇일까도 궁금했다. "배우 한효주와 사람 한효주 사이에 괴리감이 크다고 생각하고,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힐까도 고민해요. 배우가 아니고 온전히 사람으로서 살 때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배우로 살아갈 때는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는데 사람 한효주로는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재밌어하는 게 뭘까 찾아가는 중이에요. 제가 느리고 서투르거든요. 많이 아팠답니다. 성장통이겠죠?"
배우는 쉴 틈 없이 일하다가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는 하고 싶어요. 연기가 재밌거든요. 제가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도 생기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 시기를 거치면 단단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로서도 더 멋있는 옷을 입을 수 있을 것 같고요. 괜찮은 한효주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