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장덕, 천재 소녀뮤지션의 비극적인 인생 "너무 안타까워"

임성빈 기자
입력 2018.04.03 00:41 수정 2018.04.15 23:55
ⓒMBC 방송화면 캡쳐 ⓒMBC 방송화면 캡쳐

'뒤늦은 후회'와 남매듀오 현이와 덕이, 장덕이 관심을 받고 있다.

'뒤는은 후회' '현이와 덕이' '장덕'이 3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현이와 덕이는 '한국의 카펜터스'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장덕은 10대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천재 음악소녀로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10대의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한 장덕은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작사작곡상을 3회 연속 수상을 하며 천재성을 입증했다. 1979년 '소녀와 가로등'으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 예쁜 외모와 맑은 목소리, 천재성이 돋보이는 음악 등으로 가요계를 뒤흔들었다.

장덕이 발표한 노래들은 너무나도 많다. KBS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님떠난 후'를 비롯해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듀엣곡으로 불리는 '너 나 좋아해'를 비롯해 이은하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스버럼' 등으로 자신의 노래는 물론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까지 만들었다.

뿐만아니라 다양한 영화에도 출연하며 당대 청춘스타로 10대 청소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게다가 버라이어티까지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며 만능 엔터테이너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덕은 1990년 2월 4일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수면제로 밝혀지면서 대중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암투병 중인 오빠 장현 역시 여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7개월만에 역시 숨을 거두며 대중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장덕은 떠났지만 그의 동료 가수들은 장덕의 미발표곡을 추모앨범으로 발표하며 그의 노래가 대중 곁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게 했다.

한 누리꾼은 "1980년대 장덕의 위상은 오늘날이 아이유와 비교할만하다. 천재 소녀뮤지션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것을 비롯해 연기와 예능까지 섭렵했던 모습이 비슷하다. 장덕이 오래 살았다면 대한민국 음악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문지훈 기자 (mtrelsw@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