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투혼’ 조코비치, 정현에게 보인 패자의 품격
입력 2018.01.23 09:33
수정 2018.01.23 09:46
부상 통증에도 끝까지 투혼 발휘
3세트 모두 정현과 명승부 연출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58위·삼성증권 후원)이 롤모델 노박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정현은 22일 오후(한국시각) 호주 멜버른 파크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호주오픈 남자단식 16강전에서 조코비치를 3-0(7-6<7-4> 7-5 7-6<7-3>)으로 제압했다.
이로써 정현은 1981년 US오픈 여자단식 이덕희, 2000년과 2007년 역시 US오픈 남자단식 이형택이 기록한 한국 선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인 16강을 뛰어넘었다. 정현의 메이저대회 8강 진출은 당분간 한국 테니스 역사에서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정현의 이날 승리가 남달랐던 이유는 평소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혔던 조코비치와 3세트 모두 듀스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승리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천하의 조코비치를 상대로 3세트 모두 듀스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정현의 집중력과 체력이 조코비치를 압도했다.
이날 승리로 정현은 2년 전 이 대회에서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조코비치에게 당했던0-3(3-6 2-6 4-6) 완패를 완벽하게 설욕했다.
사실 정현의 맞상대인 조코비치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지난해 하반기 팔꿈치 부상으로 치료와 재활을 거듭한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를 통해 6개월 만에 복귀전을 가졌다. 하지만 짧지 않은 공백기에도 조코비치는 건재함을 과시하며 쉽지 않은 상대들을 잇따라 제압하고 16강까지 올랐다.
다만 직전 경기 도중 메디컬 타임을 부르는 등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정현과의 경기에서도 완벽한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1세트부터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일 정도로 몸 상태에 이상이 있는 듯 보였다.
코너를 찌르는 정현의 견고한 스트로크와 예리한 포핸드를 따라갈 때는 안쓰러울 정도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조코비치는 2세트 한 때 또 다시 고통을 호소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듯 보였지만 조코비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2세트 한 때 1-4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기어코 5-5 듀스까지 만들어냈다. 긴 랠리를 주고 받을 때마다 힘찬 기합소리를 내며 있는 힘을 모두 짜냈다.
포인트를 따내면 어느 때보다 큰 액션을 취했다. 접전 끝에 3세트에서 4-4 동률을 이루자 손을 높이 들고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스타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경기를 마친 뒤에는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정현과 악수를 나누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또 직접 자신의 SNS에 게시물을 올려 정현의 승리를 또 한 번 축하하는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였다.
정현이 승리를 거둔 상대는 부상을 당한 조코비치가 아닌 이기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 조코비치였다. 애써 정현의 승리를 폄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