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100세 시대⑤]세계인 입맛 저격한 매콤 라면 '신의 한 수'
입력 2017.01.17 10:25
수정 2017.01.17 11:02
신춘회 회장 '신(辛)라면' 제안…임원 반대 무릅쓰고 강행해 빅 히트
농심 스프 개발팀, 적합한 다대기 배합 위해 전국 유명 음식점 돌아다녀
200여 종류의 실험용 면발 만들기 위해 하루 평균 3봉지 라면 흡입
농심 신라면은 특유의 매운 맛으로 지난 1991년 국내 라면판매 순위 1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을 뿐더러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신라면의 국내외 누적 판매량은 약 280억개. 면발을 모두 이은 거리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5번 왕복할 수 있을 정도다. 국내 라면시장에서 신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이른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1965년 9월1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농심그룹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세우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농심에 따르면 국내에 첫 출시된 라면은 삼양식품이 선보인 삼양라면이다. 당시 라면업계는 독보적 1위였던 삼양식품과 7~8개 회사 간 경쟁이 치열했고, 특히 쌀 부족이 심각해 혼·분식 장려운동이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신 회장은 농부 출신으로 쌀을 대체할 수 있는 식품의 개발은 국민에게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1965년 농심은 롯데라면을 내놓으며 개그맨 구봉서와 곽규석을 앞세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1978년에는 전래동화 의좋은 형제에서 영감을 얻어 '농부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꿨다.
이후 농심은 사발면(1981), 너구리(1982), 안성탕면(1983), 짜파게티(1984) 등 매년 장수제품을 내놓으면서 라면시장 성장에 앞장섰다. 마침내 1985년 3월 농심은 삼양식품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농심은 1980년 경기 안성에 스프전문공장을 세우고, 스프 제조공법을 발전시켜 나갔다. 농심은 업계 1위로 올라선 이유로 스프로 각각의 제품을 차별화한 덕분이라고 짚었다. 농심은 라면시장 1위를 굳건히 다지기 위해 고급 이미지를 가진 제품이 필요했다. 1980년대 초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매운 맛'을 목표로 시작됐다.
개발팀은 '얼큰한 소고기장국맛'을 기본으로 전국에서 재배되는 모든 품종의 고추를 사들여 매운맛을 실험했다. 단순히 고춧가루에서 비롯되는 매운맛에는 한계를 느끼던 어느 날, 개발팀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매운맛을 좀 더 감칠맛 나게 만드는 다진 양념(일명 다대기)으로 실험해 보면 어떨까?' 개발팀은 다진 양념을 사용하는 전국 유명 음식점들을 돌며 적합한 맛의 배합을 연구했다. 다진 양념이란 국물 있는 음식에 버무려 먹기 위해 만든 종합 양념으로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등을 섞어 만든다.
농심은 안성탕면보다 굵고 너구리보다는 가늘면서 넉넉한 식감과 쫄깃한 질감을 목표로 200여 종류의 실험용 면발을 만들었다. "하루 평균 세 봉지에 해당하는 양의 라면을 먹어가며 초시계로 시간을 재고 비커와 온도계로 물의 양과 온도를 측정하며 맛을 감별했다" 신라면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의 회고다.
마침내 1986년 10월 2일, 깊은 맛과 매운맛이 조화를 이룬 얼큰한 감칠맛을 가진 신라면이 탄생했다. 당시 농심은 "신라면의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는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신라면은 출시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소비자들은 '얼큰한 국물맛도 좋고 면도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출시 첫해 석 달 동안 30억 원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매운 라면이니까 신(辛)라면으로 합시다."
신 회장이 이렇게 말했을 때 경영진은 반대했다. 당시에는 제품 이름을 회사 이름이나 재료를 앞세워 지었다. 또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장의 성인 신(辛)과 辛라면이 음과 한자가 모두 같아 종친회나 소비자에게 비난받지 않을까 우려 했다.
지난 2014년 8월 농심은 출시 28년만에 신라면의 맛과 포장 디자인을 개선해 선보였다. 농심은 신라면 맛을 더 신라면답게 살리기 위해 집중했다. 맛의 변화가 아니라 '개선'을 추구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신라면은 연간 국내와 해외 100여 개국에서 약 7000억원치 판매고를 올리며 '세계인을 울리는 글로벌 라면'으로 발돋움했다.
신라면은 일본, 중국,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 중동, 이슬람국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칠레 푼타 아레나스까지 ‘민간 외교관’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은 몰라도 신라면은 안다는 현지 외국인들의 말은 신라면 인기를 방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