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벙커 트릴로지' 밀폐된 벙커 속 극한의 몰입감

이한철 기자
입력 2016.12.22 09:35
수정 2016.12.22 21:31
연극 '벙커 트릴로지' 공연 장면. ⓒ 데일리안

연극 '벙커 트릴로지'가 전쟁의 참담한 현실과 인간의 본성을 밀폐된 벙커 안에서 펼쳐내 관객들에게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벙커 트릴로지'는 제1차 세계대전 참호를 배경으로 아서왕 전설-아가멤논-맥베스 등 총 3개의 고전을 재해석해 독립된 이야기로 진행되는 옴니버스 작품이다. 역사의 고증보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과 고전이 만나 신비로운 세계관을 구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천재 창작자이자 국내에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사이레니아'로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제스로 컴튼'의 대표작으로 국내 초연은 '김태형 연출-지이선 각색' 콤비가 참여했다.

김태형 연출을 비롯한 트릴로지 사단은 고전 자체를 리메이크하기보다 캐릭터를 차용하고 현대적 관점으로 재기 발랄하게 재해석한 드라마를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세 가지 에피소드에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다.

​먼저 아서왕 전설을 재해석한 '모르가나(MORGANA)'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지 못한 채, 군인이 된 젊은 청년들이 서로를 죽이고 그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을 생생하게 무대 위에 펼쳐 보인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고대 희랍극 '아가멤논'을 모티브로 한 '아가멤논(AGAMEMNON)'은 영국인 부인 크리스틴을 둔 독일군 저격수 알베르트가 전쟁에 참전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며, 양국의 갈등이 깊어지고 전쟁의 광기가 커질수록 파국으로 치닫는 둘의 운명을 밀도 높은 감정선으로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맥베스(MACBETH)'는 원작에서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그대로 따랐던 것에 반해, 극중극 형태로 각색을 시도해 참호를 공격하는 거대한 포격 소리와 숨통을 조이는 독가스 공격 등에 인간의 모든 것이 잠식당할 때 드러나는 본능과 본성에 주목했다.

​연극 '벙커 트릴로지'는 약 20평 남짓한 공간에 벙커라는 공간을 완벽하게 구현해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실제 전쟁 속 참호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의 한 순간인 만큼 군복 의상을 비롯해 장총, 물통, 군번줄 등 디테일한 소품을 구현해 그 리얼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관객들은 전쟁을 통해 사라져 버린 수많은 진실과 전쟁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뿐만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무대와의 아찔한 거리, 총탄과 포탄이 발사될 때마다 무대 세트는 물론 객석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떨림 등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현장에 있는 듯한 극한의 몰입감과 긴장감을 경험할 수 있다.
 
'벙커 트릴로지'는 내년 2월 19일(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