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새누리, 5년 전 위기 상황 '데자뷔'?
입력 2016.11.25 18:44
수정 2016.11.25 19:52
당시 소장파 탈당에도 버틴 새누리, 지금은 달라
주류·비주류, 더 이상 한배 어렵다 '비관론' 솔솔
새누리당의 원조 쇄신파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3선의 소장파 김용태 의원의 탈당, 김무성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버티는 이정현 대표. 새누리당이 그야말로 침몰 위기에 빠졌다. 여당의 현 상황은 소장파와 지도부가 강하게 부딪혔던 5년 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는 정두언, 정태근, 김정권, 정문헌, 박준선, 김동성, 이성권, 김상민 전 의원 등 새누리당 원외 당협위원장 8명이 자리했다. 이들은 새누리당의 해체를 요구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는 '영혼 없는 통치', '철학 없는 정치', 그리고 '책임 없는 정치'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며 "새누리당의 강령 '국민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민본, 민생 지향의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는 어디에다 버렸나"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이미 존립의 근거도, 존대의 이유도 잃어 버렸다. 당의 해체가 마땅하다"며 "새 길을 찾겠다. 시대가 요구하는 공정과 공평, 효율과 성장, 그리고 분배까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개혁적 중도 보수'로 가는 길을 찾아 우리는 떠난다"고 덧붙였다.
전날 남 지사와 김 의원에 이어 이들이 탈당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이후 탈당자는 10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날 오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김 전 대표가 당에 잔류해 서울 등 수도권과 부산·경남(PK)지역 현역 의원들의 탈당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당이 어떤 식으로 무너질지는 누구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여당의 상황은 2011년 말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겪었던 좌초 위기와 상당히 흡사하다. 당시 한나라당은 소속 보좌진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사이버테러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또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퇴하여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하면서 쇄신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한꺼번에 앞두고 한나라당 쇄신파들은 신당 수준의 재창당을 요구했다. 당시 전면에 나섰던 이들은 남경필, 황영철, 권영진, 주광덕, 김세연, 김성식, 정태근 의원 등이다. 이들은 홍준표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도 거세게 펼쳤다. 그러나 홍 대표는 '2012년 2월 재창당'을 주요 내용으로 한 쇄신안을 내놓고 버텼고 당은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져 극심한 내홍을 앓았다.
그러나 '그 때도' 주류였던 친박(친박근혜)계가 재창당 요구를 거부했고 김성식, 정태근 의원은 전격 탈당을 하고 만다. 이들의 탈당으로 쇄신파의 추가 '탈당 러시'가 예상되며 연일 심각한 분위가 형성됐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쇄신파는 분열되고 만다.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 7명이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난 이후 당 잔류를 선택했고, 이후 박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 이듬해 2월 13일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기존 한나라당의 전력 이탈을 막으면서 당명 개정안을 통과시켜 이름을 바꾼 형태로 사실상 간판만 바꿔 단 것이다.
그 효과는 선거 승리로 나타났다. 이후 새누리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달성했고, 그해 12월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기존 시·도당과 당협위원장이 대부분 그대로 장악력을 발휘한 것도 당에 큰 힘이 됐다.
반면 틸당파들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들의 거사는 큰 방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두 사람 모두 19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이후 정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복당을, 김 의원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곁으로 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20대 총선에서 정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김 의원은 국민의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그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지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재창출을 노리는 새누리당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로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는 것을 바라만 볼 뿐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5년 전 초선의원이었다가 어느덧 3선 고지에 오른 황영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쇄신파들이 대통령 탈당, 지도부 교체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대표는 내년 1.21 조기 전당대회를 약속하며 버티고 있다. 여기까지의 상황이 5년 전 한나라당이 겪던 내홍과 상당히 유사하다.
당내 대표적인 소장파인 남 지사와 김 의원이 탈당했고 원외 당협위원장들까지 당을 나가며 위기감은 점차 고조되지만 김 전 대표의 잔류로 당장 당이 쪼개질 상황이 아닌 것도 이전과 비슷하다. 비주류들이 주장하는 비대위가 꾸려질 경우 외형상으로는 이전과 지금의 상황이 대동소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도 많다. 당시 새누리당은 절대적으로 유력한 '박근혜'라는 주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그에게 의존하려는 여당 인사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추가 탈당 및 당 붕괴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쇄신파 쪽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존재하는 한 보수 진영이 해체돼 세력 재편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하다"고 현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뚜렷한 주자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있던 주자였던 김 전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해버렸다. 5년 전 구심점이 됐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은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입장이 매우 난처해진 상황이다. 국민들은 매주 모여 촛불을 밝히며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은 건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각 계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은 연일 언론에 대고 상대 진영을 향해 날선 발언을 이어가고 있어 더 이상 한배를 타고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오래도록 이어져왔던 친박계와 비박계의 '불편한 동거'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데일리안'에 "표면적으로 봤을 때 5년 전 디도스 사건과 지금 최순실 정국으로 촉발된 여당의 위기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면서도 "당 위기를 불러 일으킨 사건의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최근 성난 민심 또한 사안의 경중을 따질 수 있게 한다. 5년 전에 비해 지금의 위기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때는 오히려 당을 지킨 사람들이 총선과 대선 승리라는 달콤함을 맛 봤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존폐를 걱정해야 할 때"라며 "그 당시 상황을 지금에 대입하려는 발상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