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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서 만난 오마니 밥상"...탈북민들 고향음식 '힐링'

박진여 기자
입력 2016.11.18 18:06
수정 2016.11.19 04:17

탈북단체, 탈북 청소년들에 북한 음식 나누며 '내리사랑' 실천

"그리움의 맛...선배들에게 받은 만큼 북한 주민들 돕고 싶어"

18일 오후 12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탈북민 대안학교인 남북사랑학교에서 탈북청년들과 지역 탈북민을 위한 만찬 행사가 열렸다. ⓒ통일미래연대

18일 오후 12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탈북민 대안학교인 남북사랑학교에서 탈북청년들과 지역 탈북민을 위한 만찬 행사가 열렸다. ⓒ데일리안

탈북단체, 탈북 청소년들에 북한 음식 나누며 '내리사랑' 실천
"그리움의 맛...선배들에게 받은 만큼 북한 주민들 돕고 싶어"

쌀 반죽과 시래기를 넣어 만든 순대와 콩을 고기처럼 갈아 만든 인조고기밥, 감자 전분으로 만든 농마 국수까지.

18일 오후 12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탈북민 대안학교인 남북사랑학교의 점심 식탁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북식 한상차림이 펼쳐졌다. 푸짐하게 마련된 이북식 음식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때 아닌 명절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북사랑학교는 북한에서 고교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탈북 청소년의 공부방이자 지역 내 탈북민의 사랑방으로 통한다. 이날 앳된 얼굴의 청년부터 나이가 지긋한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탈북민 20여명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당초 예정시각인 2시간이 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며 음식을 나눴다.

맛깔스러운 고향 음식을 앞에 두고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 옆 사람에게 음식을 소개하는 사람, 오랜만에 만났는지 등을 두드리며 웃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그중 몇몇 탈북민은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연신 음식 사진을 찍던 김은화(가명·2014년 탈북) 씨는 “음식을 보는 순간 고향생각이 많이 났는데, 음식을 먹고 나니 고향이 너무 그립게 느껴진다”며 “고향음식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어 3년째 이 맛을 잊고 지냈는데, 오늘 어릴 때부터 자주 먹던 인조고기밥을 보니 너무 반갑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만감이 교차한 듯 눈물을 훔치기도 한 박성령(가명·2008년 탈북) 씨는 “고향에서 흔히 먹던 음식들을 마주하니 참 좋으면서도 서글프다”면서 “한국생활이 거의 10년차인데도 위쪽(북한) 입맛이 바뀌지 않아 입에 안 맞는 음식들이 많았는데, 오늘 고향음식을 먹으니 참 맛있다”고 전했다. 이어 박 씨는 이북식 순대를 집어 들고 “순대만 해도 여기는 당면을 넣는데, 우리는 시래기랑 쌀을 넣는다”며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말했다.

탈북단체인 통일미래연대가 마련한 이 자리는 정든 고향을 떠나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과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희망과 사랑 나눔의 봉사’라는 이름으로 기획됐다. 단체는 매년 탈북민 학교와 관련 기관들을 찾아 북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생활용품 등을 제공하고 있다.

단체는 이날 현장에서 직접 만든 이북식 순대, 소송편, 인조고기밥, 농마국수 등 북한 주민들이 평소 즐겨 먹는 대표 음식들을 탈북민들과 함께 맛보며 치유와 공감의 시간을 나눴다. 또한 각자 모금액으로 마련한 생활용품과 비품 등도 함께 기증했다.

18일 오후 12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탈북민 대안학교인 남북사랑학교에서 탈북청년들과 지역 탈북민을 위한 만찬 행사가 열렸다. ⓒ통일미래연대

특히 탈북과정에서 학업시기를 놓친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용 빔프로젝터를 지급하는 등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날도 남북사랑학교에 모인 20여명의 ‘후배 탈북민’들에게 안정적인 한국 사회 정착을 위한 지속적 지원을 약속함과 동시에 동향 사람으로서 북한의 음식과 정을 함께 나누며 ‘내리사랑’을 실현하고 있다.

이 같은 탈북단체의 활동은 후배 탈북민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탈북민들은 연신 감사를 표하며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입장에서 받은 만큼 나눠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일손돕기를 자처해 각 테이블에서 음식을 비울 때마다 빈접시를 나르던 황은지(가명·2011년 탈북) 씨는 “한국에 와서 우리가 받은 관심과 사랑만큼 우리보다 어려운 탈북민이나 남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물질적, 정신적으로도 빨리 안정을 찾아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 지역의 시민단체에 소속돼 각종 봉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이금영(가명·2009년 탈북) 씨도 “우리 탈북민들은 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며 “(소속된 단체에서) 서울역의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데, 한국사회로부터 우리가 받은 관심과 사랑만큼 우리도 나눠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행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학생들과 주민들을 살뜰히 챙기던 이빌립 남북사랑학교 교장은 “통일미래연대의 봉사로 학생과 주민들이 오랜만에 고향음식도 맛보고, 봉사의 미덕을 배우는 참교육이 됐다”면서 “우리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도움을 주는 사람, 나아가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통일미래일꾼이 되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교육할 것”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최현준 통일미래연대 대표는 “이번 행사가 탈북청년들에게 봉사활동의 의미를 계도시키고, 통일한국의 주역들인 탈북청소년들이 통일한국 실현의 밀알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통일미래세대인 우리 후배 탈북민이 한국사회에 잘 정착해 향후 통일한국의 중추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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