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최순실과 인연에 고개 숙인 이유는...
입력 2016.10.25 18:44
수정 2016.10.25 19:09
여당마저 해명 요구…탈당 거론 등 심각한 여론 고려한 듯
문건 유출 법적 조치·'반쪽 사과' 논란 지속 전망
여당마저도 해명 요구…탈당 거론 등 심각한 여론 고려한 듯
문건 유출 법적 조치·'반쪽 사과' 논란 지속 전망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비선 실세 의혹’이 제기된 최순실 씨의 연설문 작성 개입을 인정했다.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된 지 하루 만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박 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요구한 만큼, 본인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선 ‘확실히 털고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연설문 사전 유출 의혹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알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고 운을 뗐다.
박 대통령은 “최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홍보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며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며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대국민 사과했다.
앞서 JTBC는 최 씨의 PC에 들어 있는 파일 200여 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박 대통령의 연설문·국무회의 자료·대통령 당선 소감문 등 44개의 파일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파일들은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연설을 하기 전 최 씨에게 전달됐으며, 일부 문건은 곳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내용과 순서를 바꾼 흔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박 대통령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하고 나서 본인으로선 더 이상 침묵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 대통령 탈당 요구 등 여권 내 심상찮은 기류를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본보와 통화에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며 “계속 부인할수록 증거만 더 나온다. 이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청와대 공식 문서를 외부에 유출한 것은 엄연히 위법 행위다.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 생산되거나 접수된 기록물은 모두 대통령기록물 관련법의 적용을 받는다. 박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문건 유출을 자인한 만큼 야당의 공세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신 교수는 “청와대 공식 문서를 외부에 유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법 위반”이라며 “그 부분을 (정치권이) 어떻게 해석할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한 듯 새누리당은 곧바로 문건 유출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김현아 새누리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많은 문건이 유출된 것에 대해 반드시 진상 규명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객관적이고 신속한 수사로 납득할 만한 조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의혹 등 최 씨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도 향후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반쪽 사과’라고 비난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대통령이 전혀 상황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국정 혼란을 초래했고 헌정 문란을 초래한 이 사태에 대해 박 대통령은 그냥 단순히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서 유감 표명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추 대표는 “우린 박 대통령의 개인 심경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무너진 헌정 질서는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지에 대한 엄중한 상황인식이 듣고 싶은 것”이라며 “증거를 확보하고 (최 씨의) 신병을 확보해서 하루 빨리 수습하고 진상조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감동적인 사과를 해야 국민이 감동을 느끼고 대통령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저도 TV를(통해 기자회견을) 봤지만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당신의 할 말만하고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질문도 받지 않았다”고 힐난했다.
새누리당은 이러한 ‘민심 악화’를 고려, 레임덕 가속화를 막기 위한 후속 조치 마련에 분주한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24일 ‘개헌 카드’를 꺼낸 것이 의혹을 덮기 위한 전략으로 야권에서 해석되는 데다, 대통령 탈당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