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카라스키야와 권투를?
입력 2016.09.16 07:04
수정 2016.09.16 07:07
국회내 이색 동아리 카라스키야, 생생텃밭, 기우회 등 눈길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표로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되는 입법 활동을 하는 헌법 기관이지만 개개인으로 보면 국회라는 직장에서 직장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국민들에게는 정쟁의 모습만 비춰지다보니 일부는 국회의원을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국회의원 역시 일을 하면서 여느 다른 직장인들과 같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자발적으로 동아리 모임을 구성해 갖가지 활동으로 의정활동을 하며 쌓인 피로감을 풀기도 한다. 그 중 이색적인 동아리 몇 개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농사 짓는 국회의원 '국회 생생텃밭'
지난 7월 1일 국회 헌정기념관 앞 잔디밭에서는 국회 생생텃밭 개장식이 열렸다. 여기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텃밭 동아리 소속 의원, 시민단체 관계자 뿐 아니라 역대 최장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인 이동필 장관(9월 5일 퇴임)이 참석했다. 이 장관은 "국회텃밭에서 흘리는 구슬땀이 온 국민들에게 치유·힐링·공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확산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에 백악관 텃밭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국회 생생텃밭이 있다. 국회의원들의 농사체험 동아리가 중심이 된 이 모임은 지난 2015년 4월 8일 당시 50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해 문을 열었으며 올해는 4명이 늘었다. 시골 경험이 많은 정 의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넓이는 400㎡(120평)로 그리 크지 않지만 상추나 고추, 가지, 완두콩, 옥수수 등 의원 개인별로 심고 싶은 채소들을 심어 가꾸고 있다. 여성 의원들은 주로 메리골드나 한련화 등 식용을 겸한 꽃이나 허브, 쌈을 싸 먹는 채소류를 키우기도 한다.
국회의사당 내부에서 호미질을 하고 채소를 재배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여기서 수확한 감자와 열무는 국회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에게, 지난해 담근 2000포기 상당의 김장김치는 어려운 소외계층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이 같은 활동에 일부 네티즌들은 "의정 활동이나 잘 하라", "보여주기식 활동은 이제 질린다", "농부들을 욕 되게 하지 마라" 등 비난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텃밭 활동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불신 문화가 국회의원들의 모든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첨예한 갈등을 빚는 여야 의원들이 텃밭에서 흙을 만지며 서로 웃고 땀 흘리는 모습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농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의원들에겐 이 활동이 미약하게나마 농민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돼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전 프로기사가 참여하고 있는 국회 기우회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바둑 애호가'로 유명하다. 19대 국회에서 국회 바둑모임 기우회 회장을 맡으며 바둑 사랑을 보이던 그는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 전 9단의 입당에도 상당 부분 기여했다. 당시 원 전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바둑 인구가 약 1천만 명에 이르며 마인드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며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조 9단의 입당을 환영한다"고 반긴 바 있다. 결국 조 9단은 당선 안정권인 비례 14번을 부여 받아 20대 국회의원이 됐다.
지난 7월 5일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선 국회 기우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가입 의사를 밝힌 26명 의원 중 원 전 원내대표가 또 다시 회장을 맡았고 조훈현 의원은 고문으로 참여했다. 이 외에도 새누리당의 김기선, 이종구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아마추어 바둑 유단자로 기우회에 함께 했다. 특히 송희경 새누리당 의원과 박영선 더민주 의원은 국회 기우회 사상 첫 여성 회원으로 가입해 눈길을 끌었다.
원 회장은 "새로운 회원이 많이 참가해 주셔서 희망적이다. 20대 국회가 상생과 협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우리 기우회도 일조하겠다"며 "한·중·일 의원이 한 자리에 모이는 연합 교류전을 실현하고자 노력해 왔는데, 연속성을 갖고 꼭 이루어 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9월 30일 첫 출범한 기우회는 그동안 한국-중국 국회의원 바둑전 등으로 '반상외교'를 펼쳐왔다. 기우회는 그간 칠월칠석(음력 7월 7일)에 중국 측과 바둑교류전을 열어왔고 올해는 8월 10일부터 3일 간 한국에서 정기 교류전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논란 속에서 취소됐다.
사드 배치 발표 직후 중국이 강력 반발하는 등 한중 관계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바둑 교류 일정을 진행하는 데 대해 양국 모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계자에 따르면 원 회장이 바둑을 통한 의원외교에 관심이 큰 만큼 오는 12월 한·중·일 의원 친선바둑교류전이 열릴 예정이다.
'카라스키야'가 '카라스키야'를 만나다, 더민주 삼수생 이상 모임
1977년 11월 27일 전국의 온 국민은 TV 앞에 모여 앉았다.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페더급 초대 타이틀을 걸고 맞붙은 우리나라의 홍수환 선수와 파나마의 카라스키야 선수 간의 권투 시합을 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28세의 홍수환은 18세의 카라스키야보다 전력에서 훨씬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2라운드에서는 카라스키야에게 무차별 주먹을 맞았고 무려 네 번의 다운을 당했다. 그러나 홍수환은 포기하지 않았고 3라운드에서 놀라운 투지로 기적과 같은 KO승을 거뒀다. '4전 5기'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 때의 카라스키야는 현재 정치인으로 변해 시의원, 시장을 거쳐 현재 파나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더민주 의원들은 여기에서 착안을 해 '카라스키야' 모임을 만들었다. 김부겸·김영춘·김두관·김영호·박재호·신동근·전재수·최인호 의원이 함께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3,4회 정도 낙선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김영호 의원은 모임의 의미에 대해 "홍 회장에게 카라스키야가 극복해야 할 장벽이었듯이 우리도 우리 앞에 닥친 장벽을 뛰어넘자는 각오를 다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카라스키야 모임은 의원들의 취미 생활과 관련이 있는 텃밭, 바둑 모임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여기서는 개혁입법에 대한 논의와 동시에 당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활동을 포함, 의원 본연의 임무와 연관된 움직임을 주로 보일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최근 공공외교 전문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초청으로 방한한 카라스키야는 지난 9일 더민주 의원 모임 '카라스키야'의 초청으로 국회를 찾았고, 카라스키야와 카라스키야 간의 이색적인 만남이 연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