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재키 로빈슨에 서린 피 위 리스의 어깨동무

최영조 객원기자
입력 2016.04.16 07:11
수정 2016.04.17 07:28

[MLB]재키 로빈슨 데이에 떠오르는 '진짜 리더' 피 위 리스

다저스타디움 내부에 걸린 재키 로빈슨. ⓒ 데일리안 최영조 객원기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명연설로 열변을 토하기 훨씬 이전, 메이저리그에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오직 실력으로 평가되는 곳에서 야구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재키 로빈슨.

1947년 4월 15일(현지시각)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날로 손꼽힌다. 검은 피부를 가진 재키 로빈슨(브루클린 다저스)이 당시까지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메이저리그에 최초로 등장한 날이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UCLA에서 야구는 물론 미식축구와 농구, 육상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LA 다저스 브랜치 리키 단장은 대학교 졸업 이후 니그로리그에서 뛰고 있었던 로빈슨을 눈여겨보았다. 리키 단장은 당시 메이저리그에 흑인을 데뷔시킨다는 복안이 있었는데 그 적임자로 강한 정신력을 지닌 로빈슨을 낙점했다.

로빈슨의 데뷔는 메이저리그에 뿌리내린 인종차별이란 오래되고 단단한 벽을 허무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흑인이 대통령도 되는 시대지만, 당시는 버스에서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불합리한 시기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데뷔 후, 로빈슨의 하루하루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로빈슨은 자연스럽게 백인들의 표적이 돼버렸고,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관중석에선 언제나 욕설과 조롱이 난무했다. 일부 선수들은 로빈슨과 경기하는 것에 거부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로빈슨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돕는 선수도 있었다. 팀 동료인 유격수 피 위 리스가 바로 그 주인공. 리스는 백인이었지만 피부색에 대한 편견과 흑인에 대한 반감이 전혀 없었던 오픈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다저스의 주장이기도 했던 리스는 로빈슨이 팀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항상 적극적으로 도왔던 진정한 리더였다. 둘 사이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로빈슨의 데뷔 한 달 무렵인 5월 중순, 로빈슨이 속한 다저스는 신시내티 레즈와 원정경기를 치렀다. 로빈슨이 신시내티 홈구장 크로슬리 필드 그라운드에 모습을 나타내자 관중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야유와 욕설을 내뱉었다. 로빈슨은 굴욕적인 반응을 참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 팀 동료 리스가 홀로 서있던 로빈슨에게 다가섰다. 리스는 싸늘한 구장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로빈슨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며 미소 지었다. 이를 바라본 관중들은 아연실색했고 구장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당시엔 백인 선수가 마음속으로 로빈슨을 응원할 수는 있어도 리스처럼 대놓고 지지하는 것은 큰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리스의 이 작지만 대담한 행동은 갓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로빈슨에게 큰 힘을 실어줬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브루클린의 재키 로빈슨과 피 위 리스 동상. ⓒ 데일리안 최영조 객원기자

대조적인 사례도 있다. 로빈슨 보다 3개월 늦게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던 흑인 윌러드 브라운(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이 홈런을 치고 덕아웃에 들어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팀원들의 환호와 하이파이브가 아니라 한 동료가 바닥에 내동댕이친 야구배트였다.

이를 목격한 브라운은 크나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고, 결국 리그와 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메이저리그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렇듯 로빈슨의 성공에는 본인의 눈물겨운 노력 외에도 따뜻한 팀 동료 리스의 존재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로빈슨은 이후에도 수차례 살해협박 편지까지 받는 등 인종차별과의 길고 긴 투쟁을 해야 했다. 하지만 로빈슨은 자신이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오늘 자신이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이 걸어갈 길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로빈슨은 힘들수록 이를 더 악 물었고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다.

결국 로빈슨은 10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타율 0.311-1518안타-197도루의 통산성적을 남겼다. 신인왕(1947년), MVP(1949년), 월드시리즈 우승(1955년)까지 모두 거머쥐었고 명예의 전당(1962년)에도 입성했다. 하지만 로빈슨은 단순히 그의 기록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현재 로빈슨은 이후 수많은 흑인선수들에게 길을 열어준 선구자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1997년 4월 15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로빈슨의 위대한 업적을 인정, 그의 등번호 42번을 전 구단을 통해 영구결번시켰다. 또 2004년부터 그가 메이저리그에 처음 등장한 날을 기념해 매년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Jackie Robinson Day)'로 지정, 이날 30개 구단의 모든 선수는 42번을 등에 달고 그의 업적을 되새긴다.

한편, 리스는 메이저리그에서 16년간 타율 0.269-2170안타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준수한 수비실력과 민첩한 주루능력을 앞세워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로빈슨과 마찬가지로 리스 역시 단순히 그의 기록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리스도 명예의 전당(1984년)에 입성했다. 물론 그의 기록은 준수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에는 분명 부족한 성적이다. 그럼에도 리스가 쿠퍼스타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로빈슨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결 같이 도왔던 그의 공로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실제 명예의 전당에 전시된 리스의 동판에 새겨진 글귀에도 로빈슨에 대한 언급이 있다.

1947년 5월, 리스가 크로슬리 필드 그라운드에 홀로 버티고 선 로빈슨에게 다가가서 보여준 그 인상적인 장면은 동상으로도 만들어졌다. 뉴욕 브루클린 남쪽, 코니 아일랜드에 위치한 한 마이너리그 구장 앞에 있는 그 동상에서는 시대를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용기와 우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라운드에서 세상의 편견을 뚫고 정면 돌파한 로빈슨의 옆에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진정한 친구 리스가 있었다.

최영조 기자 (choiyj214@naver.com)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