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NX, 콘셉트카를 넘어버린 양산차
입력 2016.03.29 15:15
수정 2016.03.29 15:23
"한 사람이라도 열광할 디자인을 추구하겠다" 디자인 열정
양산 까다로운 디자인, 기술진 획기적 아이디어로 극복
렉서스 NX300h.ⓒ데일리안
이 녀석을 처음 본건 201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도쿄 모터쇼에서 LF-NX라는 이름의 콘셉트카로 등장했을 때다. 당시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쩍 벌린 그릴과 한판 떠보자고 쏘아보는 듯한 찢어진 눈매, 온몸에 칼자국이라도 난 듯 예리한 선, 어느 방향에서 내리쳐도 끄떡없을 것 같은 탄탄한 비례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잔상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 녀석이 이 모습 그대로 거리를 돌아다닐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그럴싸한 콘셉트카를 내놓고 양산 단계에서는 현실과 타협을 거듭하다 결국엔 허접한 차를 내놓게 마련이니.
렉서스 LF-NX 콘셉트카.ⓒ한국토요타자동차
그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이듬해인 2014년 6월 일본 출장길에 토요타자동차 본사에서 본 NX 양산차는 콘셉트카 LF-NX의 실루엣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강렬한 인상은 밤길에 마주치면 무섭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부드러워졌을 뿐 여전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고, 탄탄한 비례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콘셉트카보다 더 완성된 모습을 지닌 채였다.
“반드시 이 녀석을 몰고 서울 거리를 누비리라.”
그 결심은 한동안 다른 업종을 담당하다 다시 자동차 분야로 돌아온 뒤인 2016년 3월에야 이뤄졌다. 마치 첫사랑을 3년 만에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단언컨대 NX는 렉서스 전 라인업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모델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쟁 브랜드를 포함한 모든 SUV들 중 최고 디자인의 자리에 NX를 앉혀놔도 양심의 가책이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형님격인 RX가 국내 상륙했고, 직접 시승도 해봤지만, NX에 대한 첫사랑을 희석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렉서스의 스핀들 그릴은 날씬한 모델에게 더 잘 어울린다. 세단 라인업에서 막내격인 IS의 디자인을 가장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렉서스 NX300h.ⓒ데일리안
NX를 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천에 있는 경쟁사의 드라이빙센터 난입(?)이었다. 멋들어지게 도열한 경쟁사의 고급 차량들 사이를 누비는 가운데서도 NX의 존재는 빛을 발했다.
디자인에서 하향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인들이 어쩌다 이런 감각적인 디자인을 뽑아냈는지 궁금해졌다.
더구나, 보통 세단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SUV에 적용할 경우 멀쩡한 차에 바람을 불어넣은 것 같은 모습(이를테면 포르쉐의 SUV 형제들처럼)이 되기 마련인데, NX는 세단에서 시작된 스핀들 그릴을 적용했음에도 불구, 마치 NX가 스핀들 그릴의 시초인 양 자연스럽게 딱 떨어지게 된 배경도 궁금해졌다.
가장 의문이 드는 건 콘셉트카인 LF-NX 시절부터 도저히 양산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까다로운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양산차에 적용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한국토요타자동차를 통해 NX 디자인의 탄생 배경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실 렉서스는 2005년부터 컨셉트카를 통해 디자인 아이덴티티의 획기적 변화를 꾸준히 암시해 왔다. 훗날 같은 이름, 비슷한 외모의 수퍼카로 나온 LF-A가 시작이었다. 이후 예리한 선과 입체적인 면이 늘기 시작했다.
렉서스가 콘셉트카를 거의 그대로 양산에 적용하며 엔지니어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건 LF-Ch 때부터였다. 준중형 해치백 콘셉트 모델로 2009년 발표된 LF-Ch는 이듬해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양산차 CT200h로 출시됐다.
이후부터는 콘셉트와 양산 디자인의 구분마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LG-Gh 콘셉트카는 GS, LF-CC 콘셉트카는 IS로 LF-LC 콘셉트카는 RC로 최소한의 손질만 거쳐 양산했다.
NX 역시 2014년 선보인 LF-NX를 쏙 빼닮았다. 차체를 거침없이 썰고 과감히 파냈다. 양산차로서는 표면에 라인이 이례적으로 많다(그만큼 엔지니어들은 괴롭다). 전반적으로 칼질이 난무하다 보니 그 자체로 모종의 디자인 테마를 이뤘다.
렉서스 NX300h.ⓒ데일리안
사실 지금의 NX 디자인을 채택하기 전까지 A, B, C 3가지의 디자인안이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당초 렉서스에서는 젊은 여성 디자이너가 고안한 B안을 진행하려고 했었고, 그렇게 됐다면 지금의 NX는 영영 만나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렉서스 NX 초기 스케치 3개안 중 채택된 B안.ⓒ한국토요타자동차
여기에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유러피언 감성을 담은 A안을 지지했지만, 결국 개성 있는 젊은 세대에 어필하기 위해 C안으로 양보했다. 그 결과 NX는 지금 모습으로 결정됐다.
이 ‘젊은 세대에 어필하기에 최적화된 개성 있는 디자인’을 뽑아낸 렉서스 디자인 조직의 수장은 놀랍게도 환갑을 훨씬 넘긴 인물이다.
현재 렉서스 디자인 총괄은 1951년생인 도쿠오 후쿠이치다. 1974년 일본 타마 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토요타에 입사한 그는 프랑스 니스의 토요타 유럽 디자인센터장을 역임한 뒤 2008년 토요타의 자회사 칸토 오토웍스(현 동일본 자동차)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형적인 정년퇴직 코스였다.
그런데 그가 2011년 현직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700명 넘는 디자이너 지휘할 토요타 그룹의 디자인 총책으로. 아키오 사장이 그에게 내린 주문은 명료했다. “간결하고 ‘쿨(Cool)’하게 디자인해주세요.” 후쿠이치는 “사장이 말한 ‘쿨’한 디자인은 차별성과 개성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방향을 잡았고 권한도 쥐었다. 렉서스 디자인 개혁이 시작됐다.
예컨대 ‘스핀들 그릴’로 콧잔등을 화끈하게 찢었다. 범퍼엔 아가미처럼 칼집을 저몄다. 렉서스의 새 디자인은 찬반양론의 불씨를 당겼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꿈쩍 않는다. “100명이 그럭저럭 만족할 디자인 대신 한 사람이라도 열광할 디자인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금 디자인으로 놀라선 곤란하다. 앞으론 더 과격해질 것”이라고 으름장 놓는다.
NX의 디자인은 다양한 면과 선을 품었다. 렉서스 디자인팀은 “앞부분을 빚는데 특히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까다로운 법규를 만족시키면서 NX 특유의 표정을 담아야하는 까닭이다. 가령 조명장치와 관련해 방향지시등이 반대편 45도 사선에서 봤을 때 보여야 한다는 법규가 있다. L자 모양으로 심은 방향지시등이 바로 이 숙제를 풀기 위한 묘안이었다.
또한, 뒷바퀴 주변 철판은 바람 빵빵하게 채워 넣은 것처럼 부풀려 디자인했다.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디자인을 살리려면 생산라인에서 프레스하기가 까다로웠다.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렉서스 엔지니어들은 뒷문 안쪽과 맞닿은 철판을 만두피처럼 접어 볼륨감을 살리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디자이너의 열정을 참신한 아이디어로 생산 현장에 적용한 엔지니어들 덕분에 획기적이지만 양산이 까다로운 NX의 디자인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NX를 살펴보니 “100명이 그럭저럭 만족할 디자인 대신 한 사람이라도 열광할 디자인을 추구하겠다”는 후쿠이치의 말에 공감이 간다. 확실히 NX는 아예 혐오하거나 완전히 열광할 만한 디자인을 갖췄다. 그리고 기자는 후자에 속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