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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쌓인 위안부의 고통 상처 눈물 '귀향'

부수정 기자
입력 2016.02.21 07:04
수정 2016.02.21 11:28

피해자 할머니 다룬 영화…조정래 감독 연출

14년 만에 개봉…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역사를 담은 '귀향'이 14년 만에 개봉한다.ⓒ(주)와우픽쳐스

"영화를 찍는 동안 '증거가 없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는데 정말 화가 났어요. 살아계신 분들의 증언도 증거가 아니라고 한다면 제가 영화로 제작해 문화적 증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역사를 담은 '귀향'이 14년 만에 개봉한다. 각본·연출·제작을 맡은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집(생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후원 시설)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이후 열여섯 살에 위안부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를 받던 도중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

그림 속에는 소녀들이 총살당한 후 불구덩이에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강 할머니가 직접 목격한 장면으로 일본군들의 잔혹함이 가슴을 찌른다.

시나리오 완성 후 10년 동안 투자자를 찾지 못해 표류하던 영화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후원을 받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면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총 7만5270명이 후원해 순 제작비 중 50%가 넘는 약 12억원을 모았다. 후원자 명단은 약 10분에 걸친 엔딩 크레디트에 올라 의미를 더한다.

영화는 1943년 경남 거창의 시골에 사는 열네 살 소녀 정민(강하나)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군에 이끌려 영문도 모른 채 가족의 품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민은 함께 끌려온 열다섯 살 언니 영희(서미지), 그리고 꽃다운 소녀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제2차 세계대전, 차디찬 전장 한가운데인 위안소에 버려진 소녀들. 이들 앞에는 성욕에 굶주린 일본군이 서 있다. 낯선 땅에서 몸과 마음이 짓밟힌 채 "여기가 지옥이다"라고 흐느끼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역사를 담은 '귀향'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았다.ⓒ(주)와우픽쳐스

온몸이 멍투성이, 피투성이인 소녀들. 그녀들의 몸과 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과 아픔이 서려 있다. 일본군의 만행이 심해질수록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 정민과 신내림을 받은 1990년대 소녀 은경(최리)의 사연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70대 노인이 된 영희(손숙)는 이름을 영옥이로 바꿔 위안소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과거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감춘채 묵묵히 살아간다. 한복을 만드는 일을 하다 과거 정민이 건네준 '괴불 노리개'를 통해 쓰라린 아픔과 마주한다.

신녀인 은경은 타향에서 죽어간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모시는 귀향 굿을 펼치면서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영화는 참혹한 실상을 다루면서도 일본의 만행이나 위안부의 모습 등 자극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했다. '가시리' 등 구슬픈 배경 음악을 통해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게 미덕이다.

위안부 피해자 접수창구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걸 밝히냐"는 직원의 말을 들은 영옥이 "그래 내가 그 미친년이다 우짤래"라며 울부짖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피해자, 그들에게 무관심한 우리를 돌아보는 대목이다.

극 후반부 정민과 영희가 헤어지는 장면에선 관객의 눈물샘이 터진다. 무참하게 짓밟힌 소녀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참담한 과거, 피해자들의 통곡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룬 영화 '귀향'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은 "20만명의 억울한 영령들을 고향의 품으로 모시고 싶었다"고 전했다.ⓒ(주)와우픽쳐스

영화는 지난해 4월부터 2개월간 촬영했다.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재능 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손숙을 비롯해 오지혜, 정인기 등 연기파 배우가 동참했다. 손숙은 지난 2014년 시나리오를 읽고 조 감독에게 노개런티 출연 의사를 밝혔다.

대사 대부분이 일본어로 진행된 만큼 재일교포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강하나는 재일교포 4세, 기노시타 역의 정무성은 재일교포 3세다.

'귀향'은 지난달 22일부터 30일까지 미국 LA를, 애리조나, 뉴욕, 코네티컷대, 예일대, 브라운대, 워싱턴 등에서 해외 후원자 대상 시사회를 진행했다.

조 감독은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고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을 참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귀향'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들었다"며 "미국에서 공부 중인 한 일본인 유학생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일본인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일본 관객들은 "한 명이라도 더 봤으면 한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일본인들은 꼭 봐야 할 영화다", "'귀향'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며 눈물과 반성이 섞인 관람평을 남겼다.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정부에 등록된 이는 238명. 최근 피해자 할머니 두 명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생존자는 44명뿐이다.

조 감독은 "일본을 비난하거나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섣불리 위로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라면서 "20만명의 억울한 영령들을 고향의 품으로 모시고 싶었다"고 전했다.

관객들에겐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한국과 일본 간의 정치적 이슈로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유대인 학살처럼 우리가 계속 되새겨야 할 전쟁 범죄이자 인권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무서웠던 말이 피해 할머니들이 영화를 꼭 완성해달라고 한 게 아니라 우리 이야기가 알려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 거였어요. 영화를 많은 분이 알 수 있게 도와주세요."

2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27분.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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