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취업준비생의 눈물나는 24시 '고행기'
입력 2016.02.09 09:22
수정 2016.02.09 09:23
<청년취업 속사정은②>구직사이트 보랴 숙식 걱정에 알바 하랴...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 9.2%. 이는 1999년 첫 통계 이후 최고치이자 전체 실업률 3.6%의 3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각 기업들이 2016년 상반기 공채를 앞두고 있지만 취준생들은 “취업의 꿈을 이룰수 있을까”라는 회의감부터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자”며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리고 연구자료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취준생들의 입장과 기성세대의 해결책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데일리안’과 ‘청년이여는미래’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청년 취준생들의 고충을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청년실업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취지에서 그들의 ‘취업속사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세 차례에 걸친 연재 기사를 내보낸다. < 편집자 주 >
역대 최악의 극심한 취업한파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취준생’. 콧대 높은 기업에 하루에도 몇 번씩 차이고, 몇푼 안되는 생활비로 근근이 연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봄이 온다는 희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취업에 성공해 따뜻한 봄을 꿈꾸도 있는 취준생들의 일상은 어떨까. 데일리안이 들여다봤다.
‘NG족’ 이지영 씨의 ‘당당한’ 취업준비 고행기
졸업도 취업도 못한 ‘NG(No Graduation·졸업유예)족’ 이지영 씨(25)는 삼시세끼 밥은 못 챙겨 먹어도 하루 세 번 구직사이트 접속은 한 번도 거르는 일이 없다. 현재 대기업·공기업의 IT컨설팅·지원·기획 직무를 목표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그는 어학성적 관리와 동시에 해당 직무와 연관된 전공분야 자격증 공부에도 한창이다. 입사 준비 반년 차로 새내기 취업준비생인 이 씨는 작년 하반기 총 25곳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모두 고배를 마신 뒤 올해 상반기 취업 성공을 목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09:00-11:59 AM. 이 씨가 기상과 동시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구직사이트 ‘스캔’이다. 특히 최근 본격적인 공기업 채용 시즌이 시작돼 평소보다 더 눈여겨보고 있다. 이때 마감시기가 임박한 공고가 있으면 그간 작성했던 자기소개서 파일을 열어 점검해보기도하고, 관심 있는 기업이 있으면 서류제출-인적성 검사-1차 면접-최종면접 등 채용일정을 수첩에 꼼꼼히 옮겨 적는다. 이후 준비하고 있는 토익, 토익스피킹, 프로그래밍, 전기기사 등 하루 간 공부 일정을 세운다. 이렇게 할 일을 정해두지 않으면 왠지 ‘잉여인간’이 될까봐 두려운 이 씨다.
12:00-16:00 PM. 이 씨가 하루 중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아점(아침·점심식사)’ 겸 여가시간이다. 이 시간은 이 씨 스스로 지정한 공식적인 여가시간이다. 하루 중 유일하게 '잉여'로 있어도 마음이 편한 시간이다. 평소 영화감상이 취미인 그는 이 시간을 이용해 보고 싶었던 영화, 이미 봤던 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한다. 또한 아이돌그룹에도 관심이 많아 좋아하는 가수들의 영상을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이 씨가 지원한 기업의 채용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 여가시간도 허용되지 않는다.
17:00-18:00 PM. 이 씨는 하루 반나절을 마감하는 의미로 구직사이트에 접속한 다. 다시 한 번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죽 훑는다. 이때 평소 관심 없었던 회사나 처음 보는 생소한 이름의 회사들을 보며 "이런 곳도 있구나"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공고가 눈에 띄면 그간 틈틈이 작성해온 입사지원서들을 다시 꺼내 특정 회사 인재상 등 내용을 부분 수정 후 지원서를 넣고 본다. '뿌린 만큼 거둔다', '다다익선'이 이 씨 취업의 모토다.
19:00-24:00 PM. 야행성인 이 씨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간이다. 이 씨의 주요 활동은 역시 취업준비다. 그는 오전에 정리해둔 일정을 확인하며 기본적으로 꾸준히 준비하고 있는 토익, 토익스피킹 등 어학공부 책을 가장 먼저 펼쳐든다. 그러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목표 직무와 연관되는 전공분야 공부로 넘어간다. 이때 그는 주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며 각 기업의 소프트웨어 역량평가 예제를 돌려본다. 이렇게 계획한 공부를 모두 마친 이 씨는 잠들기 전 또다시 구인광고 확인한다. 그의 일상은 구인광고 스캔에서 구인광고 스캔으로 마무리된다.
‘NG족’ 이 씨는 현재 목표인 취업에서 스스로 만족할만한 ‘오케이’ 사인을 위해 수없는 NG(No Good)를 기꺼이 감수하고 있고 있다. 그는 “이 불안한 시기 또한 스스로 선택한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과정으로 불안하기는 불행할 이유는 없다”며 “취업준비는 스펙을 맞춰 나가는 팍팍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내가 앞으로 이 일을 할지 저 일을 할지 재보는 시간이기도 하다”고 당차게 말했다.
대학원생 최재현 씨의 70만원으로 한 달 나기
전공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최재현 씨(26). 취준생인 동시에 자취생인 그는 한 달 70만원으로 학업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 비정기적으로 집에서 보내오는 용돈이 있을 때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최재현 씨. 그는 오늘도 긴축재정 모드다.
대학원생인 최 씨는 학과 연구실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며 월 70여 만 원을 받는다. 이것도 최근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것이다. 이중 40만원은 방값, 18만원은 토익학원비로 지출한다. 이렇게 남은 돈 12만원은 한 달간 식비로도 빠듯해 개인적인 용돈은 전혀 없는 상태. 한 숨만 나오던 이때 친구에게 술 한 잔 하자는 전화가 걸려온다.
최 씨는 같은 처지인 취준생 친구와 종종 만나 팍팍한 취업난과 서로의 한탄을 안주삼아 ‘깡술’을 즐긴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정도 있지만 다행히 최 씨와 친구들 모두 안주를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유일한 안주거리가 되는 친구들과의 대화도 학생 때 주로 나누던 '연애이야기'에서 “뭐 먹고 살지”로 옮겨왔다. 팍팍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가끔 취하고도 싶지만 이조차 주머니 형편이 허락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가 맥주(500㎖) 한 잔에 2500원 정도라 3잔에 1만 5000원 정도면 취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아껴먹는 술보다 더 힘든 건 바로 식비 문제다. 자취생인 최 씨는 주로 밖에서 밥을 사 먹거나 집에서 시켜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끼에 5000~7000원인 밥값이 부담돼 주로 35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학교식당을 애용했으나 지금은 방학이라 문을 닫았다. 방학과 동시에 최 씨의 생활도 더 팍팍해졌다. 이럴 때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한다.
최 씨는 “부모님께서는 저보고 ‘알아서 살아라. 대학까지 보내놨으면 끝이지’라는 주의”라며 "직접 벌어 취업준비를 하다 보니 가장 힘든 것은 '엥겔지수가 높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방학으로 학교식당이 문을 닫아 ‘서럽다’는 최 씨는 그나마 밥값이라도 짐을 좀 덜 수 있는 개강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