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지하 금고엔 금이 없다?
입력 2016.01.17 11:56
수정 2016.01.17 13:42
'지정학적 리스크'에 영국 영란은행에 보관…'金잃은 아픔' 때문
‘한국은행 금고에 금괴는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의 금(金)보유량은 100톤이 넘는다. 이 금의 대부분은 한국은행이 소유하고 있다. 세계 금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세계 공식 금 보유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104.4톤이다. 이는 ‘공식 통계’일뿐, 개인이 국내에 유통한 금이나 장롱 속에 감춰둔 금도 많아 정확한 민간 보유량까진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100톤이 넘는 한국은행의 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은행 본점 지하에 위치한 겹겹의 보안 장치로 둘러싼 금고에 보관되고 있을까.
'金잃은 아픔'에 영국 영란은행에 보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은행엔 금괴가 없다. 과거엔 한국은행 대구지점에 쌓아뒀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인해 2004년 이후 모든 금괴를 영국 런던 영란은행으로 옮겼다. 국책은행이 엄청난 규모의 금을 사고 팔 때마다 금괴를 옮길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보안 리스크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영화처럼 금괴가 실린 차량이 ‘털리면’ 국가재정에 타격을 입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한국은행의 금괴는 언제나 영란은행 창고에 쌓여있고, 금을 추가로 사들이면 소유권만 늘어나는 식이다. 한국은행이 영란은행에 보관하고 있는 금괴는 순도 99.5%에 무게는 400트로이온스(12.5㎏) 규격을 따른다. 약 8320개의 금괴로 쌓여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지하 금고에 금을 보관하지 않는 데에는 역사적인 아픔도 숨어있다. 한국은행은 1950년 6.25전쟁 직후인 6월 27일 서울 본점에서 금 1070㎏과 은 2500㎏을 군 트럭에 싣고 경남 진해 해군통제부로 옮겼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급박해 금 260㎏과 은 1만6000㎏은 미처 옮기지 못했는데, 서울을 장악한 북한군이 이를 훔쳐간 것이다.
금에 대한 기억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IMF위기 당시 국제적인 이슈가 됐던 ‘금 모으기 운동’이다. 전국적으로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7톤의 금이 모이는 기적을 일으켰다. 금액으로 21억3000만달러에 달했다. 당시 전체 외채가 304억달러였으니 무시 못 할 금액이었다. 현재 한국은행의 금보유량 보다 2배 넘게 많은 금이 장롱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회복세를 나타내며 재도약을 시작했고, 2001년 예정보다 3년이나 빨리 차입금 전액을 조기상환하면서 IMF 관리 체제에서 벗어났다. 당시 금은 상징적인 의미로 남아있지만, 외환관리에 실패하면 언제든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교훈은 여전히 현실과 맞닿아 있다. 당시 모았던 금을 해외에 팔지 않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으면 금값 폭등으로 나라의 곳간이 넉넉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요동치는 글로벌 경제…금 더 쌓아둬야 하나
한국의 금 보유량은 세계 34위 수준이다. 가장 많은 금을 쌓아놓은 나라는 미국이다. 한국은행 보다 80배 많은 8133.5톤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갖고 있다. 두 번째로 금이 많이 독일(3381톤)과 격차도 상당하다. 3위는 국제통화기금(2814톤)이었고, 이탈리아가 2451.8톤으로 4위, 프랑스가 2435.5톤으로 5위다. 이어 중국(1722.5톤), 러시아(1370톤), 스위스(1040톤), 일본(765.2톤), 네덜란드(612.5톤) 순이다.
과거 10톤 정도의 금을 보유했던 한국은행은 지난 2011년 금 40톤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30t, 2013년 20t을 매입했다. 그 후로는 추가 매입에 나서지 않았다. 현재 외환 보유액 가운데 금의 비중은 1.3% 수준이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논란거리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의 10%가량을 금으로 보유한데 비해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금을 많이 보유한다는 것이 리스크라는 입장이다. 금값의 변동폭이 커서 투자 위험이 따르고 유동화가 어려운데다 금 보유에 따른 이자가 없어 기회비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금 보유량은 외환보유액과 함께 한 나라가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안전판’으로 인식된다. 요동치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금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선 한은의 금 보유량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금 같은 실물자산으로 외부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를 마련해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외환보유고에서 금의 비중을 무작정 늘리기도 어렵다. 금은 달러에 비해 가격안정성이 떨어지는 데다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외화자산이 유사시 대외 지급결제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쌓아 둔 ‘비상금’의 성격인 만큼 지나치게 수익성을 추구하거나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이래저래 영란은행 창고에 쌓인 한국은행의 금괴 높이가 더 높아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