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리 "예쁘지 않은 나, 영화로 자신감"
입력 2015.12.03 09:55
수정 2015.12.07 09:20
'극적인 하룻밤'서 '밀당 하수' 요즘 여자 시후 역 맡아
"로맨틱 코미디 첫 도전, 많은 관객이 설렘 느꼈으면"
'원나잇'으로 만난 남녀. 여자가 먼저 말한다. "우리 딱 열 번 만 더 하자!"
발칙한 19금 발언이 마냥 야하지만은 않다. 사랑스러운 여자로 분한 배우 한예리(30) 덕이다.
한예리는 3일 개봉한 영화 '극적인 하룻밤'(감독 하기호)에서 정훈(윤계상)과 원나잇으로 엮인 시후 역을 맡았다. 극 중 정훈과 시후는 전 여친, 전 남친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나 '극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짜릿한 밤을 지새운 시후는 정훈에게 음료 쿠폰을 들이 내민다. "열 칸 남아 있는 음료 쿠폰을 다 채울 때까지 '몸친'으로 지내자." 그렇게 두 사람은 '텐나잇'을 보내고 '몸친'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원나잇'을 통해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독특하면서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지치고 팍팍한 현실에 많은 걸 포기하는 'N포 세대'의 연애담을 무겁지 않게 그려낸 게 미덕이다.
1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예리도 이 점을 강조하면서 "젊은 친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탄생해서 다행이다"고 미소 지었다.
'극적인 하룻밤'은 한예리의 첫 로맨틱 코미디이면서 상업 영화 첫 주연작이다. 단편 '기린과 아프리카'(2007)로 데뷔한 그는 주로 단편 영화를 찍다 '코리아'(2012)를 기점으로 상업 영화에 진출했다. 이후 '동창생'(2013), '해무'(2104), '필름 시대의 사랑'(2015)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한예리는 "로맨틱 코미디는 하고 싶어도 감히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었다"며 "화려한 장치 없이 생활 연기를 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도전이었고 힘들었다고 했지만 시후는 한예리라는 옷을 입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로 훨훨 날았다. 의상은 마냥 청순했고 시후의 집은 꽃내음이 날 듯 로맨틱했다.
"감독님이 '예리 씨가 제일 예뻤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의상, 소품 등에 다채로운 색상을 넣어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촬영 감독님이 실제 제 모습을 담았다고 하셨는데 절 캐스팅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웃음)."
영화는 '19금' 등급인데 노출 수위가 그다지 높지 않다. 다만 대사의 수위가 좀 있다. 노출신은 사전에 합의한 후 촬영했다고. "사실 야하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주변에서 야하다고 한 분들이 있더라고요. 19금 대사가 없으면 영화 자체의 맛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이런 걸 고려하고 촬영했습니다."
정 주고 몸 주고 돈 주고도 전 남친에게 차인 시후는 정훈을 만나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사랑 앞에 나약하기만 했던 그는 꽤 용감한 여성으로 거듭난다. 자신을 지잡대 출신, 기간제 교사라고 한탄하는 정훈에게 시후는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며 정훈을 잡기도 한다.
정훈과 보낸 '극적인 하룻밤'이 시후 인생에서도 '극적인 하룻밤'이 됐다고 한예리는 말했다. "처음 느끼는 감정, 몸의 반응을 시후 스스로 궁금해해요. 정훈을 사랑하면서 용기 있는 여성이 된 거예요. 시후는 꿈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정훈을 통해 자신의 꿈을 확실하게 알게 돼요. 사랑을 통해 성장한 거죠."
실제 한예리라면 극 중 시후처럼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시후는 정훈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실제 나는 포기가 빠른 사람이라 남자친구가 날 떠났다고 느끼면 이내 마음을 접는다"고 했다.
영화는 '원나잇'으로 시작한 사랑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말한다. 한예리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자기 생각을 들려준 그는 이번에도 차분하게 얘기했다.
"육체적 사랑을 먼저 시작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게 옳다, 그르다, 이런 건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 만나기 때문에 그들만의 방법이 따로 있지 않을까요? '원나잇'으로 시작한 사랑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할 때 말하는 '갑을 관계'에 대해서는 "항상 갑, 을일 수는 없다"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고 조곤조곤 말했다.
사랑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한 정훈과 시후처럼 어떤 계기로 성장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해온 무용을 하다 연기로 돌아선 후 한 뼘 자랐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무용과 학사 출신인 그는 촉망받는 무용학도에서 영상원 학생들의 영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기의 길을 걷게 됐다.
"무용은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뚜렷한 목표가 없었어요. 그러다 영화를 만났는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
사실 한예리는 전형적인 미인형과는 거리가 멀다. 속쌍꺼풀 눈이 돋보이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동양적인 매력이다. 볼수록 끌리는 얼굴인데 이 여배우는 "연기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내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웃었다.
"전 키도 작아서 무용학과에서 예쁜 외모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찍을 때는 주변에서 '예쁘다'고 칭찬해주시는 거예요. 그때 '왜 나한테 예쁘다고 하지?'라고 의문이 들었어요. 저한테 뭘 바라는 줄 알고요. 미의 기준이 다양하고 예쁘지 않더라도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깨달았어요. 절 사랑하게 됐고 이젠 얼굴에 대한 만족도가 꽤 높아졌답니다(웃음)."
한예리는 "너무 예쁘지 않은 내 얼굴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배우에겐 강점"이라며 "매 순간 아름다운 얼굴은 위험할 수 있다"고 강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연 배우로서 흥행 욕심이 있을 터. 한예리는 "최근에 로맨틱 코미디물이 거의 없는데 '극적인 하룻밤'을 계기로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며 "150만명만 넘으면 잠을 안 자도 괜찮을 듯하다"고 웃었다.
한예리는 지난해 정신혜 무용단의 '2014 정신혜무용단 창작춤 레퍼토리Ⅳ-설령 아프더라도'를 통해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무용 공연은 그가 계속 잡고 있는 소중한 끈이다. 언젠가는 한국 무용을 다룬 영화를 하고 싶단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를 묻자 "상대 배우와 치열하게 연기할 수 있는 장르라면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호흡하고 싶은 상대 배우로는 안성기, 김윤석, 송강호, 최민식 등을 꼽았다. 연기 조언을 받고 싶단다. "선배님들처럼 지치지 않고, 여유롭고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에는 심지 굳은 연기 철학이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포기하는 이 시대 모든 사람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확' 와닿는 담백한 답변이 돌아왔다.
"사랑이 찾아오기만을 바라는 여성분들이 많은 듯한데 먼저 찾는 건 어떨까요? 남을 의식하지도, 앞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걸음 다가가면 상대는 두, 세 걸음 다가올 거예요. 조금만 더 용기 냈으면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걸 당당하게 쟁취하는 여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