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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이산가족 감시한 '검은 양복'들의 진짜 정체는

박진여 기자
입력 2015.10.30 09:43 수정 2015.10.30 10:04

안전보위부 통일선전부 소속 정예요원들 남 취재 방해

"북 상봉단, ‘몸 다듬기’ ‘사상교육’ 철저히 받아"

제20차 이산가족 단체상봉 1차 행사가 20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온정리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가운데 남북이산가족들이 상봉을 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6일 이산가족 2차 상봉의 마지막 날. 남측 상봉단 중 유난히 쾌활하고 애교가 많던 배양효 할아버지(92)의 딸 배순옥 씨(55)가 북측 오빠 배상만 씨(65)와 작별상봉 테이블에 마주앉아 엉엉 우는 것을 본 남측 오빠 배상석 씨(60)가 “(또) 만나게 해주세요! 서로 편지 주고받게 해주세요!”라고 소리치자 북측 보장성원 7~8명이 몰려들어 남측 취재진을 막아섰다.

이들은 최근 개최된 제20차 남북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상봉단 및 남측관계자들을 주시하며 행동거지를 살폈다. '안내원', '보장성원'의 명찰을 단 북측 인원들의 실제 소속은 국가안전보위부, 통일전선부 등의 인사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행사 중 감정이 격해지는 테이블에 남측 취재단이 몰려들면 대거로 몰려가 카메라를 막아선 채 취재를 방해하며 단순한 행사 진행요원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동들을 수행했다. 특히 직계가족 상봉이나 납북자 가족 등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테이블 주변에는 많은 인력이 배치돼 상봉단의 행동을 관찰하며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주의 깊게 감시했다.

북측 보장성원들의 이러한 행태는 그간 개최된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마다 꾸준히 이어져온 것으로 지난해 개최된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납북어부 출신인 최영철 씨(63)에게 남측 취재단이 오래 머무르자 서너 명의 보장성원이 다가와 “한 테이블에서 두명 이상 (취재) 하지 말라”며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북측 보장성원이 남측 관계자를 향해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차 상봉단의 개별상봉 시간에 한 북측 보장성원은 남측 상봉단이 준비한 선물을 보고 “가방만 크지 거기에 죄다 라면과 생필품만 가득한 경우도 있다. 우리측 가족들은 ‘이건 선물이 아니라 오물’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물하는 달러도 100달러면 100달러지, 1달러로 쪼개서 몇 달러씩 준다”며 힐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사전에 철저히 교육받은 인원들로 조선적십자회 소속 보장성원으로 위장한 대남공작기구 요원들”이라며 “이들에게는 이러한 행동이 돌발행동이 아닌 책무”라고 입을 모았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29일 ‘데일리안’에 “적십자위원회 직원들로 위장된 우리가 알고 있는 북측 보장성원들은 사실 50% 이상이 국가안전보위부나 통일전선부 등 대남공작기관 요원들”이라며 “남측 예상 행동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벗어나면 통제하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고발했다.

이어 서 국장은 “우리 측도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적십자 복장을 하고 행사에 참여하지만, 북측 요원들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 출신의 송봉선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도 “보통 보위부나 통전부 쪽을 담당하는 대남사업부에서 많이 나온다”며 “보위부의 경우 북측 사람들이 말실수나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지 등 북측 사람들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고, 통전부의 경우 남측 사람들의 동향을 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양쪽에서 이런 것들을 파악해 문제가 될 시 중앙당에 제기해 처벌할 건 처벌하고, 또 생활총화(비판회의)에서 비판할 건 비판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도 “대남공작원들의 평소 가치관 자체가 대남우위에 서야 한다는 자존심이 있어 상당히 고압적이고 권위적”이라며 “(이들이) 모처럼 권력을 쓸 데가 없다가 남북관계대화나 상봉 등이 벌어지면 그곳에 나와 억눌렸던 권위를 폭발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 소장은 “이렇게 해야 총화사업에서 칭찬 받을 수 있다”며 “북한에서 ‘사상단련의 용광로’로 알려져 있는 생활총화에서 남측에 고압적으로 대한 것이 자랑거리이자 칭찬대상이지, 부드럽고 친절하게 행동한 건 비판의 대상”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북한 공안 당국의 인력이 파견된 상황에서 북측 가족들은 65년여 만에 만난 남측 가족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가 사실상 힘들다.

여기에 북측 이산가족들은 상봉행사 전후 평양에 집결해 길게는 3개월 짧게는 1개월 동안 깨끗한 의복 등을 지급받고 철저한 사상교육에 들어간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사전에 '입단속' 교육을 받는 셈이다.

이에 대해 서재평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북측 상봉단이 행사 전 평양에 집결해 3개월씩 철저하게 사상교육을 받았는데 지금은 1개월씩으로 알려져 있다”며 “교육은 상봉 때 나누게 될 이야기들 위주로 살아온 과정에 대한 지침을 주거나 남측이 질문할 것들에 대한 예상 답변들, 대처요령 등을 주입한다”고 밝혔다.

서 사무국장은 “지방에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말을 잘 못하거나 행색이 남루하면 말투를 교정하고 깔끔한 옷가지를 지급해 이미지 개선을 시킨다”며 “또 평양을 몇바퀴 돌아보게 해 ‘이 곳은 잘 산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고 전했다.

안찬일 소장 역시 “각 지방의 사람들이 평양에 소집될 때는 흡사 부랑자의 모습으로 이때 소집된 상봉단은 시커멓고 촌스러운 때를 ‘때벗이’하고 유니폼처럼 지급 받은 깔끔한 단체복으로 ‘몸 다듬기’를 한다”며 “이후 자주 언급해야 할 충성과 체제우월성 말들을 달달 외우고 그걸 검토 받는 교육 시간을 거친다”고 말했다.

안 소장에 따르면 이러한 일심 단결된 모습은 모두 트레이닝에 의한 것으로 그들의 평소 가치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이산가족 1, 2차 상봉행사에서 북한 체제 선전 노래나 체제 선전용 수사 등으로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려는 모습과 남측 취재원을 배척하는 모습들이 시시때때로 그려졌다.

남측 홍복자 씨(89)의 북측 동생 홍대균 씨(83)는 상봉의 감격에 오열하는 남측 가족들 앞에 김일성·김정일 그림이 그려진 노동대회 참가장과 인민군 훈장을 자랑스럽게 꺼내보였다. 이에 남측 조카 우찬표 씨(37)가 슬쩍 참가장을 안보이게 덮자, 대균 씨의 아들 길연 씨(43)가 곧장 앞으로 돌려 잘 보이게 펼쳤다.

또한 남측 이옥연 씨(88)의 북측 며느리 강미영 씨는(45) ‘북에서 잘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아버지인 채훈식 씨(88)가 받은 ‘김일성 표창장’과 각종 훈장 및 표창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보였다.

뿐만 아니라 북측 가족들은 안부를 묻는 남측 가족들에게 “위대한 원수님 은덕으로 만나게 됐다”, “우리는 다 무상이라 괜찮다”, “김정은 원수님의 배려로 잘 살고 있다” 등의 말들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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