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뭥미?" 통비법 개정 '무관심' 국회의원들
입력 2015.10.30 08:22
수정 2015.10.30 09:00
<단독>설문 미방위·정보위 의원 31명 중 3명만 답변
"안보위협 증가하는데 법적 장치조차 없어 통과돼야"
갈수록 증가하는 북한의 사이버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통신 사업자에 휴대전화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해 감청이 가능한 장비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입법기관인 국회는 법안 논의는 차치하고 개정안 통과에 대한 요구에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정보위원회(정보위) 소속 위원 31명에게 현행 통비법에 대한 인식과 위원 개인의 견해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객관식 문항 8개와 주관식 문항 1개로 구성된 설문조사에는 현행법상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한 점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비롯해 △불법 통신 감청 △불법감청 근거 및 대책 △휴대전화 감청에 대한 통신업체 협조 △국정원 휴대폰 감청장비 보유 및 실시 △통신업체 감청협조설비 이행강제금 △안보목적의 합법적 휴대전화 감청 △중대범죄 휴대전화 감청 △개정안 선호 등에 대한 질문이 담겼다.
그러나 29일 오후 1시 현재, 설문조사에 대한 응답률은 10% 남짓한 9.67%로 나타났다. 31명 중 3명의 위원(박민식, 서상기, 이철우)만이 응답했고, 나머지 28명의 위원은 응답을 거부하거나 수차례에 걸친 응답 요청에도 설문조사 결과를 회신하지 않았다.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박민식·서상기 의원과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이 상대적으로 해당 법안에 관심을 보였을 뿐 이들을 제외한 미방위·정보위 소속 위원 대다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응답을 미뤘다. 특히 문병호·최원식·홍의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3인은 바른사회의 설문조사 응답 요청을 공식적으로 거절했다.
바른사회에 따르면 미방위·정보위 소속 문병호 의원 측은 "보수적인 시민단체에서 하는 설문조사라 회신을 하지 않겠다"며 응답 거부 의사를 표했다. 설문의 내용보다는 설문을 실시한 단체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아 답변을 거부한 것이다.
또 최원식 의원(미방위) 측은 "설문을 읽어보았으나 답변이 곤란해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홍의락 의원(미방위) 측은 "(설문을) 검토해보았으나 다른 법안도 검토해야 하고, 설문조사지가 너무 전문적이고 내용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지 않아 답변을 하기 어렵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밖에 설문조사 요청에 회신하지 않은 25명의 의원들 중 새누리당 권은희·김무성·민병주·원유철 의원과 새정치연합 문희상·장병완 의원은 재보궐선거·국정감사·예산안 책정·소위원회 활동·행사 등의 이유로 "바쁘다"며 응답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 외 미방위·정보위 소속 여야 의원실 측은 "의원님께 보고할 예정이다", "보고 진행 중이니 기다려달라", "보고했으나 의원님께서 회신이 없다", "11월 초에 다시 연락해달라"는 등의 입장을 전하면서 회신을 미루고 있다. '미회신'으로 처리해달라는 의원실도 다수였다.
특히 바른사회는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통비법에 대해 과거 상임위 회의에서 발언하거나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의원(문병호·송호창·유승희·이개호·전병헌·최민희)에게는 별도의 질의서를 첨부했다. 바른사회는 해당 의원들이 통비법과 관련해 발언을 한 날짜와 발언 내용 등을 명기한 뒤, "해당 발언을 하게 된 취지와 발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병호 의원의 경우, 지난 2014년 11월 21일 국회 미방위 회의에서 "통신에 관련된 우리나라 정보기관들의 업무집행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무소불위이고 자기 멋대로 하고 있다…국가기관 전부가 불법으로 법 위반해서 감청하고 있으면서 다 허가해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발언한 바 있다.
전병헌 의원 역시 당시 미방위 회의에서 "국민들이 마구잡이형 감청으로 인해 사생활 보호에 대해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는데 통비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미방위에서 이것을 상정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말했다.
바른사회는 이러한 일부 의원들의 발언에 대해 취지와 근거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 중 문병호 의원만이 '답변 거부' 의사를 밝혔고, 나머지 5명의 의원들은 현재 설문에 회신하지 않고 있다.
현행법은 합법적인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 감청을 위해서는 특수 감청 장비가 기지국마다 설치돼야 하는데 통신회사가 이를 확보하지 않아 사실상 감청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때문에 통신 사업자에게 감청장비 설치를 강제하도록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법안이 통과되면 정보기관의 불법사찰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옥남 바른사회 정치실장은 29일 ‘데일리안’에 “북한이라는 적과 대치된 상황에서 안보환경은 계속 변화하고 안보위협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쉽게 말해 간첩의 전화마저도 감청할 수 없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적 장치가 국제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박민식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경우에는 야당이 문제 제기한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부분까지 모두 포함됐는데, 이것마저도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박민식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감청 오·남용 방지 등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관리 감독하도록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통신제한조치 감시위원회’를 신설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국가 정보기관의 불법 감청 가능성을 사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 실장은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미방위나 정보위 국회의원들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관심조차 없다”며 “지금과 같은 입법 미비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반응하고 개정안을 자연사시키려는 모습은 입법부로서의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