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후진국' 대한민국 '암살'도 '연평해전'도 보훈은 없다
입력 2015.08.16 07:34
수정 2015.08.16 07:51
<광복절 특집②-유영옥 국가보훈안보학회장 인터뷰>
"보훈체계 틀 없고 유공자 개별법 다다르고 용어도 엉망"
보훈. 사전적 의미로 풀이하면 ‘국가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어 나라에서 유공자나 그 유족에게 훈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일’을 뜻한다. 이 보훈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가치로 자리 잡고 있을까. “요즘 사람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은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연평해전’을 계기로 국가를 위해 싸우다 숨진 이들, 즉 국가유공자에 대한 범사회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더욱이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애국정신이 강조되고 있다.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예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우리나라에 ‘보훈학’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유영옥 국가보훈안보학회장(국가보훈안보연구원 원장)을 12일 서울 중구 일대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수십년간 보훈정책과 보훈체계를 연구해온 그에게 ‘대한민국의 보훈’을 묻자 그는 먼저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뒤에는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이내 그는 “우리나라는 보훈에 있어서 정말 후진국입니다”라는 한마디를 어렵게 내뱉었다.
유 회장은 우리나라 보훈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을 세 가지로 꼽았다. △보훈체계의 기본 틀이 없다는 것 △국가유공자와 각각의 유공자에 따른 개별법이 다원화돼있는 점 △국가보훈에 있어서의 용어상의 문제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어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틀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보니 사고가 난 다음에 대처하면서 그때그때 개별법을 만들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우리나라에는 현재 국가유공자 종류는 14개, 개별법은 43개가 있다. 특히 ‘국가유공자는 그 사람의 희생도에 따라 상응하게 보상한다’고 하는데 그런 용어상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로 인해 보상과 예우에 대한 차이가 발생, 형평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공자의 종류를 3가지로 단순화시켜야하고 유형을 정확하게 정리·구분해 그에 맞는 균형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군 유공자 위주의 보훈체계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날렸다. 상대적으로 경찰 공무원 등 순직 유공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군인 숫자가 경찰에 비해 훨씬 많다보니 정치권도 군인의 표를 의식한 보훈 정책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며 “국가보훈처 안에 제대군인정책국은 있어도 퇴직경찰지원정책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도 치안을 위하다 순직하게 되는 것인데 같은 대우를 해줘야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국가보훈은 안보와 직결된다”며 “국가유공자에 대해 국가가 예우와 보상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가를 위해 기꺼이 싸우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유 회장과의 일문일답.
-연평해전을 계기로 해서 보훈정책에 대한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보훈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자면 무엇인가.
“어떤 사고가 일어나고 난 다음이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어떤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이러한 대우를 해준다’, ‘어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다’라는 틀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틀이 없다. 실제로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 반복되면서도 아예 객관적인 평가 체계가 마련되지 못해 보상이 불균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고가 난 다음에야 대처하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때 그 때 개별법을 만들어버리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14개의 국가유공자가 존재해있고, 거기에 개별법이 43개가 있다. 내가 보훈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내 자신도 어떤 때는 어떤 법이 어느 내용이었는지 잊어버린다. 속된말로 책상에 앉기 만하면 보훈학을 연구하는 사람인데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유공자의 종류가 많고 법도 너무나 많다.
또 용어상의 문제점도 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보면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여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돼 있다. 이는 국가유공자들의 등급을 분류해 보상과 예우를 하는데 있어 서열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국가유공자들 간에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을 객관적으로 계량화하는 게 문제라는 것인가.
“그렇다.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이라는 것은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나 6·25전쟁에 참전한 사람이나 국가를 위해 싸운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 똑같이 귀중한 것이고 목숨은 하나뿐인데 어떻게 그 공헌도를 따지겠다는 말인가.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서의 사망과 부상 혹은 공헌을 서열화하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문제다. 수많은 경우를 어떻게 객관적인 수치로 나누어 서열화 시킬 수 있겠는가. 그렇다보니 현재로서는 주관적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평가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게 돼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추상적인 말장난 보다는 분명한 용어를 사용하고 사전에 국가유공자의 선별기준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일부 국가유공자들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까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보훈 법령이 너무 많다보니 각 유공자별 형평성 문제가 야기된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군복 입고 적과 싸웠을 때 어떻게 보상해줘야 한다’, ‘훈련 도중에 부상했을 때는 어떻게 보상해줘야 한다’ 이렇게 딱딱 정리가 돼 있고 기준 틀이 있어야 하는데 매번 개별법이 생기고 또 생기고 이러다보니 ‘저 사람은 저렇게 보상해주는데 왜 나는 그렇지 않은가’라는 불필요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국가 유공자도 세 가지로 단순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첫 번째로 국가유공자. 전쟁에 나갔다든지, 독립을 위해 싸웠다든지 국가를 위해 싸운 사람이다. 두 번째는 민주유공자. 4·19나 5·18과 같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사람이다. 세 번째는 순직유공자. 공무원들이 일하다 사망한 경우다.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면 사람들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순직유공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소방·경찰 공무원 출신의 보훈대상자가 군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우가 부족하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더라.
“실제로 그렇다.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경찰도 똑같이 전쟁에 참여하게 돼 있다. 과거에는 간첩 작전에 경찰이 나와서 싸우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훈 정책은 모두 군인 위주다. 왜 그럴까.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사람을 보지 않고 표를 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수가 많은 군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경찰은 묻히게 되는 것이다.
국가보훈처 안에 제대군인지원정책국이라고 있다. 그런데 퇴직경찰지원정책국은 없다. 나는 치안을 책임지다 순직한 경찰도 똑같이 대우를 해줘야한다고 본다.”
-지난 2009년 각국의 보훈정책을 비교한 책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보훈대상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우가 타국에 비해 상당히 낮다는 평가가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많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는 현역 군인이어도 비행기를 맨 먼저 타라고 한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군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대학 학비를 모두 지원해준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지원이다. 우리나라는 학기제지만 미국은 학점제이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군인이라면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대우해주니 국가를 위해 싸우겠다는 희생정신이 일게 되는 것이다.
보훈병원의 문제도 우리와 다르다. 미국에는 총 490개 보훈병원이 있고 최고의 베테랑 의사들이 있다. 그곳에서는 혹여 의사들이 제대로 진단을 못했다 싶어 교차진료를 해주기까지 한다. 특히 이 보훈병원은 대통령과 상하원의원들도 이용하고 현역군인의 가족들도 이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국가에서조차 보훈병원을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인데, 그야말로 예우가 차원이 다른 것이다.
또 군인들의 사기를 고무시켜주기 위해 마을별, 학교별, 지역별로 전사자를 기리도록 조성이 돼 있다. 우리와 문화가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은 국가를 위해 일했다는 자부심이 너무나 크다. 국가가 그만큼의 예우를 해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훈에 대한 인식이 문화적으로 다른 것 같다.
“국가보훈은 정부만 주도해서는 올바르게 정착될 수 없다. 국가유공자와 국민이 함께 해야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함이 국민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서 인정되는 것을 두고 국민과 함께하는 국가보훈제도라고 한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혜택을 형평성이 어긋나는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에게 드리는 감사와 보상이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사업을 해야한다. 국민 스스로가 국가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국가보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보훈대상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절한 예우와 보상은 곧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국가보훈은 곧 안보와 같다. 국가를 위해 내가 열심히 일하다 사망했다. 그런데 국가가 살아남은 가족과 친척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가를 위해 싸울 사람이 충분히 있다. 이것이 곧 안보와 직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안보가 중요시돼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데도 대내적으로는 국민계층갈등이나 국가정체성 혼란으로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민들의 정신적 토대의 요체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보훈정신이다.
잘 발전된 국가보훈제도는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사회 통합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가보훈제도는 대상자들은 물론 일반국민도 국가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게 하고 필요할 때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상징적인 정책이다. 국가보훈제도가 잘 발전될수록 국민은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희생정신을 더욱 갖추고 위기 시에는 단합된 정신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일 것이다.”
-보훈 교육도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보훈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내 경우는 어릴 때 군인들에게 위문편지 쓰는 게 있었는데 그러면서 안보의식이 강해졌는지도 모르겠다.(웃음) 어쨌든 어릴 때부터 국가를 사랑하는, 조국이 있어 내가 있고 조국은 내가 지킨다. 조국의 부름이 있으면 내가 간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보훈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면 바로 달려가는 이유도 바로 나라사랑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6·25전쟁이 단순히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60년 전에 일어났던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가깝게는 제1·제2연평해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가 성장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국가보훈에 가장 필요한 점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첫째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그만한 예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로가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균형 있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 둘째는 국가보훈처가 지금 차관급 기관인데 국가보훈처를 부총리급으로 승격시키거나, 아니면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하나의 독립된 원으로 만들거나, 장관급인 부로 만들 필요가 있다.
보훈 교육이나 보훈 사업에는 각 부처와의 협력이 필요한데, 현재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유공자의 종류를 세 가지로 조절하고 그에 따라 법령도 43개에서 다시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