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납금 걱정없는 택시협동조합, 기사들 "기대반 걱정 반"
입력 2015.06.21 10:05
수정 2015.06.21 10:06
<데일리안-바른사회 기획-사회적경제기본법 해부④>
최초 조합 운영 초읽기 '서기운수' 투명경영이 관건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과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됐다. 지난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 시행에 이어 사회적 경제체제를 확대한다는 것이 목적이지만 ‘사회적 기업 육성법’ 자체가 사실상 2006년 지방자치 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표퓰리즘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2007년 이후 대폭 확대된 사회적 기업은 경영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 등 내부적 역량이 부족하며 생산성이 낮아 성공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국가의 인건비 지원이 없으면 자립할 수 없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철저한 평가를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이 통과된다면 심각한 예산 낭비와 관치경제라는 비판, 정경유착의 폐해 등 여러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데일리안’은 ‘바른사회시민회의’와 공동으로 사회적경제기본법의 반 시장경제주의, 관치 문제, 사회적경제 발전기금 문제의 심각성, 사회적기업의 정치세력 변질 우려, 향후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 등을 조목조목 분석해보았다. < 편집자 주 >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해야 하는 반시장적 사회적경제기본법을 근거로 하는 형식의 기업이 아닌, 시장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경제활동 단위로서 협동조합은 '자립'과 '자기책임'을 바탕으로 할 때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내달 초 출범을 앞둔 택시협동조합은 향후 협동조합의 모범 사례로 일컬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중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인근 골목 끝에 위치한 택시회사 '서기운수'를 찾았다.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 정문 앞에 다다르자 가장 먼저 줄지어 주차된 주황색의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오후 1시 30분. 한창 서울 거리 곳곳을 달리고 있어야 할 이 택시들은 뜨거운 태양 볕을 내리쬐며 잠자코 멈춰서 있었다.
지난해 11월 경영상의 문제로 부도가 나 법원의 인수합병(M&A) 매물로 공고가 났던 서기운수는 최근 한국협동조합연대(이사장 박계동)로의 인수가 확정됐다. 벼랑 끝에 몰렸던 서기운수는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현재 협동조합형 택시회사로의 탈바꿈을 준비 중이다.
이날 '데일리안'은 내달 초 한국 최초의 택시협동조합 출범을 앞둔 서기운수를 찾아 택시기사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현재 서기운수 소속 77명의 택시기사 중 3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택시협동조합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인원은 '조금 더 두고 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택시협동조합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택시기사들은 그동안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보수라는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에 따라 조금씩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희망을 품고 있다.
이날 만난 배차실 직원 정모 씨(58)는 "지금 택시기사를 하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히 몰린 사람들"이라며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거나 가정적으로는 이혼 혹은 상시적인 가난에 노출돼 있어 하루 벌고 하루 사는, 그야말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기운수 택시기사들은 올해 임금협정에 따라 6시간의 근로시간동안 근무해 하루 평균 15만원의 사납금을 회사에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승객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서 시간당 2만 5000원을 벌어들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결국 이들은 추가근무를 해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급여에서 가불하는 방식으로 사납금을 지급했고, 한달 평균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의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 씨는 택시가 줄지어 서있는 주차장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택시기사들의 처지가 이렇다보니 기사 수급이 잘 안 된다. 보다시피 일 나가야 할 택시들이 다 여기 서있지 않는가"라며 "저 택시들이 벌어들일 수입을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책임져야 하니 사납금이 과다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구조의 희생양은 결국 또 택시기사들"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황이 이러니 우리는 택시협동조합이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사회에 조그마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남들이 보기에는 '망상' 같지만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협동조합의 발판을 마련한 한국협동조합연대는 현재 택시 근로자들이 직접 출자한 출자금으로 택시회사를 인수, 이들이 기업주가 돼 회사를 공동운영하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기존보다 최소 50만원이상의 월수입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주가 택시회사를 경영해 수익금 대부분을 사납금 형식으로 선공제하는 현행 택시운수회사 체제는 택시 근로자의 근무환경이나 복지증진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조합원이 운영·관리하는 공동운영체제 하에서는 수익금을 조합원 급여와 복지에 사용할 수 있어 택시 근로자들의 근무환경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협동조합 운영 방식으로 기업주의 이익을 우선 보장하는 '사납금제'를 없애고 택시 가동률을 높인다면 더 많은 수익을 형성할 수 있고,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조합원에게 전액 귀속시킨다면 택시 근로자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협동조합연대는 또 택시 근로자의 처우 개선은 곧 택시 서비스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택시협동조합으로의 출범에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의심을 품는 기사들도 있다. 조합원 모두가 주인이 돼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투명 경영과 민주적 운영이 과연 보장될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날 만난 서기운수 노조위원장 이모 씨(54)는 "구조상으로 보면 협동조합이 맞다"면서도 "협동조합에 참여하면 한 달에 50만~70만원정도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반신반의한 상태"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협동조합의 긍정적인 부분만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이 씨의 우려다.
한국협동조합연대 "택시협동조합, 택시업계 악순환 구조 철폐할 유일한 방법"
한국협동조합연대는 그러나 협동조합형 택시회사를 운영함으로써 택시업계의 구조적인 폐해를 개선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14대,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계동 한국협동조합연대 이사장은 "사업주의 욕구로 인해 높은 사납금이 매겨지면 기사들의 임금과 처우가 열악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택시업계의 이직률을 높이고 택시 가동률은 낮아지게 만들어 결국 회사의 채산성이 악화돼 또 다시 사납금을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이 협동조합"이라고 강조했다.
15, 16대 총선에서 낙마해 수입이 없던 시절, 생계를 위해 실제 택시기사 생활을 했던 박 이사장은 그 당시의 경험을 계기로 택시업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과도한 사납금 등 택시업계의 병폐는 이익을 공유하는 협동조합형 택시회사를 통해 근절할 수 있다고 보고 택시협동조합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박 이사장은 정부 지원금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택시기사들이 직접 출자금을 냄으로써 책임 의식을 갖고 협동조합을 운영한다면 택시기사들의 근로 여건은 물론 복지수준도 향상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임금도 상승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택시협동조합이 대안으로 떠오르면 전국의 택시기사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서 "택시협동조합은 뜬구름 잡는 것이 아닌 실제 가능한 운영 방식"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같은 계획을 가지고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설명회를 가진 박 이사장은 최근 서기운수의 기존 근로자들을 1순위로 조합원을 모집했다. 아직 서기운수 근로자들의 참여율은 저조한 편이지만, 타 운수회사 소속의 일부 택시기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혀 현재 154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이들은 향후 각각 출자금 2500만원을 내고 택시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일하게 된다.
특히 한국협동조합연대는 하나은행, 서울보증과 3자협약을 맺고 출자금 2500만원을 마련하기 어려운 택시기사들을 일정 기준에 근거해 전액 대출도 가능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한국협동조합연대는 내달 초까지 모든 인수절차를 마무리한 뒤 택시협동조합 출범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인 택시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제1호 택시협동조합 서기운수를 시작으로 제2호, 제3호 택시협동조합을 발굴해 향후 전국적으로 협동조합형 택시회사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