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에 살아있는 현영철, 선전부의 실수? 국정원의 실수?
입력 2015.05.15 08:36
수정 2015.05.15 11:12
국정원 보고 다음날에도 조선중앙TV에 등장
전문가들 "국정원 성급" vs "북 선전부 실수"
국가정보원에서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불경죄’로 처형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가운데 일각에서는 현영철의 처형설에 대한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국정원도 '첩보'임을 전제로 현영철의 처형을 단정적으로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영철이 북한 영상기록물 등에서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정원 관계자도 지난 13일 “현재 (현영철) 처형을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북한이 발표하지 않았고 현영철이 계속 기록영화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현영철은 숙청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처형까지는 확정할 수 없는 단계다. 처형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특히 국정원은 현영철의 고사포 처형설을 ‘첩보’ 형태로 밝혔으며 숙청 근거에 대해서도 ‘첩보’ 수준의 근거와 “좀 더 구체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라는 대답을 내놨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고위급 간부가 처형되면 반드시 영상기록물 등에서 모습을 삭제하는 북한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정원이 좀 더 신중하게 내용을 파악해 발표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14일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에 따르면 북한 핵심 엘리트들의 변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요 행사참석 여부와 건강문제 → 북한 매체의 보도변화 → 북한 매체에서 해당 엘리트의 모습이 지워진 ‘흔적지우기’ 실행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국정원이 마지막 단계를 건너뛰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정원에서 처형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현영철은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김정은 인민군대 사업(2015.3) 현지지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6일, 8일, 10일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라는 노래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국정원의 보고 이튿날인 14일에도 현영철의 모습이 북한 조선중앙TV에 나왔다.
정 실장은 ‘데일리안’에 “만약 현영철이 지난달 30일 간부들 앞에서 공개처형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후 북한 TV의 기록영화에서 현영철의 얼굴이 삭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국정원 관계자도 ‘단정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현영철 처형을 기정사실화 하는 성급한 태도는 신속하게 시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현영철은 김정은 기록영화에 11일까지 계속 등장했음에도 불구 그가 처형 혹은 숙청됐다고 국정원이 발표하는 것은 정보 분석의 기본 원칙이 무시된 것 같다”면서 “이미 10일 넘게 그가 기록영화에 등장한다는 것은 김정은의 폭군적이고 비관용적인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 숙청된 사람은 북한 매체에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상기록물을 담당하고 있는 북한 선전선동부에서 현영철의 처형 사실을 알았다면 해당 기록물들에 대한 ‘흔적 지우기’ 작업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 실장은 “선전선동부가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데 핵심인물이 숙청되면 지도부 공유는 물론 선전선동부 또한 이미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이 같은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현영철의 거취 여부는 ‘처형’ 쪽에 방점이 찍혀있는 상황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영철에 대한 숙청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지다보니 ‘흔적지우기’ 작업이 늦어졌거나 실무자의 실수로 해당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북한이 현영철 처형 공개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지난달 27일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원회에 대한 ‘15명 총살’ 보고와 28일 ‘38노스’의 총살보도가 이어진 상황에서 현영철 처형까지 공개되면 외부의 정보력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현영철 총살 사실을 내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는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지난달 30일 숙청된 현영철이 최근까지 기록영화에 등장하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정부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은 집권이후 지금까지 고위급 인사 가운데 리영호 전 총참모장,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제외하고 이 같은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13일이라는 기간동안 ‘흔적지우기’가 진행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본보에 “김정은 시기 들어 리영호, 장성택 사례 외에는 그런 것(흔적지우기)이 없었다”면서 “통상 며칠 있다가 지웠다, 이런 (흔적지우기 소요 기간과 관련) 부분은 이례적이다, 아니다라고 판단할 사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14일 기자들과 만나 “변인선도 지난 2014년 11월 달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했는데 올해 4월 30일 재방된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에도 삭제되지 않았다”면서 “왜 삭제하지 않느냐는 것은 좀 더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본보에 “국정원이 정보 판단할 때 신뢰성 90% 이상이 아닌 이상 공개를 하지 않는다”면서 “기록영화에서 삭제하지 않은 것은 긴박한 상황이었을 가능성도 있고 고사포 처형설은 신빙성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유 원장은 “장성택 수하들도 고사총으로 처형됐는데 신발 두쪽만 남았다고 한다”면서 “때문에 당시 간부들 사이에서 ‘신발 두쪽만 남으려고 하나?’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록물에서 흔적지우는 것은 선전선동부 소관인데 김여정이 선전선동부를 관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영철을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은 선전선동부 징계거리인데 김여정 때문에 놔둘수도 있다”면서 “아니면 조선중앙TV 실무자나 선전선동부 실무자들이 징계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