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야당 '꽃놀이패' 선진화법, '예산'에 발목잡혀

김지영 기자
입력 2014.11.19 15:18
수정 2014.11.19 15:34

예산안 자동상정 조항으로 새누리당에 압박받아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를 둘러싸고 국회선진화법의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일명 ‘날치기 방지법’으로도 불리는 국회선진화법은 정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의 가장 효과적인 입법전 무기였지만, 예산안 심사기한이 임박한 현 상황에서는 여당의 독주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돼버렸다.

몇 개월 새 여야의 상황도 완전히 뒤바뀌었다.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서 선진화법 폐기를 촉구하던 새누리당은 오히려 선진화법을 내세워 새정치연합을 압박하고 있고, 고비마다 선진화법을 활용해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던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예산안 강행처리를 맨손으로 막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8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달 30일까지 예산안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국회법에 따라 다음달 1일 표결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공언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9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어제 새누리당 지도부가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야당과 협상을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며 “새누리당이 단독처리 방침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반발했다. 새누리당이 협상을 거부할 경우, 새정치연합으로써는 예산안 상정을 막을 방법이 없다.

예산안 자동상정 조항, 다수당 예상한 민주당이 '발목잡기 방지' 수단으로 추가

본래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개정을 통해 신설된 국회법 조항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선거 패배를 예상했던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법안 날치기(과반 의석 정당의 입법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반대할 명분이 없었던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예산안 발목잡기를 방지하기 위해 예산안 자동상정 조항을 추가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자 소수당이 된 민주당은 지난해부터 새누리당이 추진했던 조항들을 적극 활용해 대여(對與)공세를 펼쳤다. 구체적으로는 제57조 2항(안건조정위원회), 제85조 1항(의장 직권상정)과 2항(의안의 신속처리) 등 의안 상정과 관련된 조항들을 무기로 삼았다.

먼저 안건조정위는 이견 조정이 필요한 안건에 대해 상임위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에 따라 구성된다. 안건조정위에 회부된 법안은 최장 90일 동안 상정 불가능하다. 해당 법안이 상정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로 의결되거나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야 하기 때문에 여야간 합의가 필요하다.

또 제85조 1항의 의장 직권상정은 개정을 거치면서 천재지변의 경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로 제한됐다. 개정 전에는 상임위가 특별한 이유 없이 기간 내에 안건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의장이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돼있었다.

새누리당은 그간 야당의 발목잡기에 대응할 수단이 없었다. 현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법안이든 새정치연합이 안건조정위에 회부하면, 새정치연합의 동의 없이는 본회의 상정이 불가능하다.

예산안 심사 미완료시 세법 개정안 등 부수법안도 자동부의

하지만 민주당이 추진했던 예산안 자동상정 조항이 1년의 유예기간을 끝내고 올해부터 발효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국회법 제85조의 3 1항에 따르면 국회는 매년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쳐야 한다. 이날까지 예산안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동조 2항에 따라 다음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여기에는 예산 부수법률도 포함된다. 오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세법 개정안을 비롯해 세입과 세출이 수반되는 법률안들도 정부안대로 일괄 부의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주민세·개별소비세·자동차세 인상 등 이른바 ‘서민증세’가 포함된다. 서민증세와 부자증세 ‘빅딜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새정치연합이 요구하는 부자증세는 사실상 물 건너간다. 서민증세를 협상 수단으로 삼았던 새정치연합으로써는 더 이상 내세울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동법 동조에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가 있으나, 예산안 심사기간 연장은 정의화 국회의장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동의할 때에만 유효하다.

그나마 새정치연합이 협상용으로 내세울 수 있는 카드로는 4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산비리) 국정조사, 공무원연금 개혁 등이 있다. 다만 정부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기존에 당론으로 삼았던 정책기조들을 물릴 경우,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둘러싼 향후 원내 협상에서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우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은 여야간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예산 법안을 합의 처리하라는 취지였다”며 “형식적인 이유로 법안과 예산안 처리해서는 국민적 저항을 감당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새누리당이 예산안 본회의 표결을 강행할 경우에 대해서는 “그 결과는 국정파탄이며 국민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원론적 수준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수준에 그쳤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