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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사태, 떠날 때 놓친 패장 ‘초라한 퇴장’

이경현 객원기자
입력 2014.10.27 10:09 수정 2014.10.27 10:13

재계약 후 일주일 만에 사임 ‘사실상 경질’

자존심 지키려다 최악의 선택, 야구인생 오점

선동열 감독이 결국 악화된 여론을 돌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 KIA 타이거즈

결국 민심은 선동열을 버렸다.

재계약 후 일주일만의 사임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명목상 자진 사퇴였지만 사실상 팬들에 의한 경질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집착이 더 큰 파국을 초래했다.

KIA 타이거즈 구단은 지난 25일 오후 선동열 감독의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보도자료가 나오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만큼 이번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KIA 구단은 선동열 감독이 사퇴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 만류해볼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 19일 2년간 총액 10억 6000만원(계약금 3억원, 연봉 3억8000만원)에 재계약했다. 올해 포스트시즌 4강에 탈락한 팀 중 유일하게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KIA 팬들의 여론은 들끓었다.

선동열 감독은 앞선 계약 기간인 3년간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3시즌 간 팀 순위는 각각 5-8-8위에 그쳤다. KIA에서의 통산 승률도 0.439(167승 9무 213패)에 그치며 역대 KIA 사령탑 중 가장 낮은 승률을 기록했다.

세대교체와 리빌딩, 트레이드, 선수단 장악 등 팀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팬들은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이 지난 3년간의 부진에 대한 책임 회피이자 면죄부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악화된 팬들의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 23일 터진 안치홍의 군입대 회유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AG) 대표팀에 탈락한 안치홍은 시즌 후 경찰청 입대가 결정된 상황. 다음 시즌 전력누수를 우려한 구단 측과 선동열 감독이 안치홍의 잔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임의탈퇴'를 언급했다는 내용이 도마에 올랐다.

감독과 구단 측에 비해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선수의 상황을 악용해 협박을 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온라인에서는 선동열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급기야 오프라인에서도 1인 시위 등을 통해 팬들이 실력행사에 나설 조짐을 보이며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물론 선동열 감독도 자신을 둘러싼 여론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선동열 감독은 재계약이 확정된 이후 이례적으로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팬에게 그동안의 성적 부진을 사죄하고 앞으로 팀 개편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장문의 편지까지 올렸지만 이미 돌아선 팬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신공격성 비난이 점점 극심해지고 언론에서도 비판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정상적인 감독직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선동열 감독은 결국 먼저 백기투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선동열 감독의 초라한 퇴장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는 현역 시절 '국보급 투수' '무등산 폭격기' 등의 찬사를 받을 만큼 지역 팬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러나 '감독 선동열'이 홈팬들에게 남긴 이미지는 선수 시절과는 딴판이었다.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인한 KIA 사상 최악의 흑역사를 남겼고, 선동열 감독은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선수단 및 팬들과의 소통에 서툰 모습만을 드러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선동열 감독은 올 시즌이 끝난 후 깔끔하게 먼저 사퇴했어야했다. 선동열 감독과 함께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SK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 한화 이글스 김응용 감독 등은 별다른 잡음 없이 조용히 사퇴했다. SK는 이례적으로 이만수 감독과 신임 김용희 감독의 이·취임식까지 동시에 개최하며 '아름다운 이별'의 전례를 만들기도 했다.

반면 개인의 명예회복이라는 자존심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선동열 감독은, 결과적으로 선수단과 팬들 모두에게 최악의 뒷모습만을 남긴 채 4강 탈락팀 감독 중 가장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등 떠밀려 쫓겨나는 모양새를 만들고 말았다. 떠나야 할 타이밍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레전드의 씁쓸한 추락이었다.

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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