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야구 ‘병역 원정대’ 논란…오만의 증거?
입력 2014.07.30 09:56
수정 2014.07.30 09:58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최종엔트리에 싸늘한 반응도
"금 예약한 것처럼..도하 AG 참사 잊었나" 지적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엔트리 최종 명단이 발표되자 팬들의 반응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이번에도 ‘말 바꾸기’다. 선수선발을 주도한 류중일 야구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회는 아시안게임 우승을 목표로 철저히 실력 위주의 선발을 공언했다. 병역문제나 팀별 안배는 고려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내용은 달랐다. 최종 엔트리 24명중 미필자만 13명이다. 김태균-정근우-이진영 등 대표팀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빠지고 서건창-안치홍-박석민-윤성환 등 소속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던 선수들도 대거 탈락했다.
반면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미필자 선수들이 대거 승선했다. 물론 단순히 미필자가 많다는 이유로만 비난받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선수는 소속팀에서 부진한데도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발탁되고, 어떤 선수는 성적이 좋아도 멀티 포지션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제외하는 등 선수선발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낳았다.
분명한 사실은 누가 봐도 이번 대표팀이 현재 한국야구가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선수구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팬들이 이번 대표팀 엔트리에 실망하는 것은 대표팀 선발을 주도한 류중일 감독과 야구인들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을 깼다는 점이다.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취임 당시 ‘원팀 원골 원스피릿’을 모토로 내걸며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를 중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 소속팀에서도 부진하거나 제대로 활약도 하지 못하는 선수들, 자신이 잘 아는 올림픽대표팀 출신 애제자들에게 지나친 특혜를 제공하다가 팬들의 비난여론에 직면했다.
결과로 입증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월드컵 본선에서는 20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홍명보 감독은 결국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논란에 시달리다가 불명예 사퇴했다.
월드컵에 비해 아시안게임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대회인 것은 사실이다. 유력한 경쟁상대인 일본과 대만은 아시안게임에서 최정예 멤버를 내보내는 경우가 드물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한국의 안방인 인천에서 열린다. 미필자 위주의 대표팀이라도 한국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것은 사실이며 선수들은 금메달을 통해 병역혜택을 얻겠다는 동기부여를 기대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일련의 해프닝 속에 자칫 태극마크의 취지가 지나치게 왜곡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고민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시안게임은 국가를 대표해 나라의 영광을 빛낸다는 명예보다 프로선수의 병역혜택을 위한 수단처럼 여겨지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 아쉬울 때는 목을 걸다가도 일단 병역혜택만 얻고 나면 그 뒤에는 ‘양보’를 핑계로 대표팀을 나 몰라라 하려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버젓이 ‘병역원정대’에 가까운 대표팀을 내놓고도 ‘최고의 선수구성’이라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아시안게임 우승을 쉽게 보고 있다는 오만함의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은 상대를 우습게보고 미필자 위주의 대표팀을 구성했다가 대만과 일본에 참패하며 동메달에 그치는 굴욕을 뒤집어썼다.
류중일 감독도 지난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야구에 사상 최초로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안기며 치명적 실패의 전력이 있는 감독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병역혜택을 위한 안배로 얼룩진 야구대표팀 구성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다고 해도 한국야구의 명예가 드높아지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