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넘어가는 한국 최초 극장 단성사, 기구한 운명
입력 2014.06.18 16:10
수정 2014.06.18 19:08
2012년 리모델링 준공 후 지금껏 빈 건물..오는 26일 법원 경매
한국 영화의 고향 '단성사'
18일 서울 종로 3가역 9번 출구를 빠져 나오자 유리 외관의 번쩍이는 현대식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1907년 개관 이래 수많은 영화 관객들을 종로로 이끈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 극장'인 단성사다. 2000년대 초반 신축공사와 이후 몇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어려웠지만 여전히 같은 자리, 같은 이름으로 국내 영화계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단성사는 과거 맞은편의 피카디리 극장, 한 블록 아래의 서울극장과 더불어 종로 3가 극장가 전성시대를 주도했던 트로이카의 한 축이었다. 1990년에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개봉으로 당시 서울에서만 관객 67만명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후 같은 감독의 작품 '서편제'로 서울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한국영화의 신기원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단성사의 흥행 성적이 곧 전국 흥행을 의미했을 정도로 단성사는 당시 영화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였다.
그러나 빛나는 명성과 달리 단성사는 오는 26일 경매에 부쳐질 운명을 맞게 됐다. 대법원 법원경매정보에 따르면 6월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단성사 경매가 진행된다. 채권자는 우리은행의 양수인인 우리이에이 제17차유동화전문 유한회사로 청구금액은 10억원, 경매 대상은 토지 2009㎡와 지하 4층~지상 10층 건물(1만3642㎡)이며 감정가격은 약 962억6902만원이다.
사실 단성사가 경매에 부쳐진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시공사의 공사비 회수문제로 한차례 경매에 내몰려야 했고, 2012년 8월에는 경영난에 따른 은행 대출금 미상환 등으로 채권단에 의해 공매에 부쳐져 입찰가 607억원까지 갔지만 유찰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이후 단성사 소유주인 '아산엠단성사'의 처분금지가처분 소제기로 공매가 중단됐다가 올해 1월 대법원의 최종 기각 판정에 따라 최근 매각절차가 다시 진행된 것이다.
최신식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수난 겪는 단성사
국내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단성사가 이러한 기구한 운명에 놓이게 된 배경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단성사는 열악하고 낡은 시설로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는 최첨단 시설의 멀티플렉스 영화관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후 2001년 결국 문을 닫고 철거됐다.
그러다 제 2의 전성기를 위해 2005년 7개관을 갖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재개관했지만 이미 주 고객층은 빼앗긴 뒤였다. 허덕이는 경영난 속에서 수차례 주인이 바뀌게 되는 수난을 겪고 2008년 최종 부도를 맞게 된 단성사는 이듬해 현재 주인인 '아산엠단성사'에게 넘어갔다. 이후 아산엠은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한 '귀금속산업 뉴타운의 종합지원시설' 유치 기대를 갖고 영화관을 줄여 보석전문상가로 변신시킬 계획으로 대규모 리모델링을 착수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에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서울시 계획마저 무산되면서 2012년 리모델링 준공을 완료하고도 대출금 상환문제로 현재까지 빈 건물로 방치되고 있다. 단성사는 현재 수백억의 낙찰가 외에도 가압류, 공사비 미지금, 세금, 우발 채무 등 약 200억원정도의 추가 비용이 들어가 제 주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시청이나 종각 등 도심권의 오피스에 대한 시세는 ㎡당 약 500만원 내외로 단성사 규모로 볼 때 약 700억원 내외의 시세가 있으나 수익률이 5%이상 확보돼야 하고 공실 및 추가공사비 등의 추가비용을 감안하면 경매에 부쳐져도 유찰될 가능성이 크다는게 전문가들 평가다.
단성사, 극장 명맥 유지하며 귀금속 판매점·호텔로 재탄생??
'대한민국 최초 극장'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향방을 잃은 단성사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하며 인수 의지를 밝히는 곳이 있다. 종로 일대 귀금속 도소매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서울귀금속보석클러스터사업협동조합이다.
양승무 조합 본부장은 "단성사 명성에 맞게 지하 2,3층에는 영화관을 운영하고 지상에는 국내 최대의 귀금속 판매시설을 입점시키는 한편, 6-10층은 중저가 비즈니스호텔로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증거금 예치와 인수대금을 높이더라도 단성사를 매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매 진행 채권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며 "조합은 공매를 통해 채권단과 이미 협의 중이고 경매채권 또한 상환 할 것이다"며 인수 의지를 강조했다.
108년의 장구한 역사와 달리 짧은 기간 거친 수난을 겪고 있는 단성사. 과거 종로 3가 극장가를 주름 잡던 옛 모습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지만 하루바삐 제 주인을 만나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대한민국 최초 극장'이라는 명성만은 유지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