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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


입력 2004.03.09 15:40
수정 2004.03.25 18:1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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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토요일, 백두대간 종주를 향한 열세번째 걸음에 나섰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휴가철을 피하기 위해 일주일 앞당겼다. 일부에서는 7월 17일 제헌절 공휴일에 갈 것을 거론하기도 했으나 일단 이날로 결정되었다. 만약 7월 17일에 간다고 하면 그날이 나의 탄생일, 거창했나, 취소해서 생일, 결국 내 생일기념 등반이네. 백두대간 산행이 5월 18일 , 6월 6일 , 6월 29일에 이어 7월 17일에 이뤄지면 내 생일까지 기념하는 국가적 행사 기념등반의 연속이 될 뻔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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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들이 생일은 무슨 생일 (겸손), 내가 이세상에 할 일이 있어유, 그것도 내가 없으면 안되는 인류의 큰 일이 (건방). 그냥 주위 분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조용히 살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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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날에 태어난 것도 다 하늘의 뜻이죠. 이헌태의 ‘헌’자가 ‘법 헌’자에요.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법을 만드는 직업, 즉 ‘국회의원’이 되라는 뜻인데. 한 때 그럴 꿈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인생의 방향을 확 돌렸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한 사람’으로요. 백두대간을 구름처럼 다니다보니 생각이 바뀌어 정치권하고 손을 완전 끊었습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아름다운 산천이 너무 너무 많은데. 내 주장이 맞니, 니 주장이 틀리니하며 싸울 겨를이 없어요. 그런 것은 ‘하고잽이’ 즉, 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맡기고. 나는 산천을 주유하겠습니다. ‘산천주유소’를 차리겠다는 게 아니고요. 정치권에서 아옹다옹하는 불쌍한 인간들. 팔자나 운명이거니 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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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만해도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어깨에 힘도 주고 인생팔자 쥑였는데, 요새는 보니 재미도 별로고요 욕만 퍼지게 얻어먹고 고생만 잔뜩하더라구요. 그저 시켜주면이야 날름 하죠. ㅋㅋㅋ. 인생 바쳐 할 필요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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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에 등반하면 제헌절기념이지 이헌태 생일기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구요. 원래 사람은 착각속에 살잖아요. 착각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고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그 착각을 비난할 필요가 없죠. 오히려 장려하는 게 나을지 모르죠. 그러고 보니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고 좋은 말이네. 곰곰히 생각해보니 ‘착각은 공짜’, ‘착각은 행복’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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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말이 나왔으니 자유를 쟁취하려면 이쯤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밍크나 사향쥐는 덫에 걸리면 다리를 물어 뜯어 잘라내서라도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하네요. 다리를 자를 때의 그 고통, 단말마적인 고통아니겠어요. 그들의, 아니 그 짐승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짐승들이 무슨 용기가 있나, 어쨌든 박수를 보냅니다. 하기야 노루나 토끼나 멧돼지처럼 덫에 걸려 인간들에 의해 잔인하게 죽는 것보다는 백번 나은 선택이지. 밍크나 사향쥐보다 못한 인간들이 아직도 많죠. 돈 몇 푼에 천부적 인간의 자존심과 인격을 묻어버리는 비굴한 인간들. 뉴욕 앞바다에 ‘자유의 여신상’을 이라크의 후세인 동상처럼 끌어 내리고 ‘밍크,사향쥐 조각상’을 세웁시다. 미친 놈. 몸 끊는 전문가 지렁이는 ‘자유의 화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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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강철 같은 용기가 필요한 법. 자유, 평등, 박애, 아시죠. 프랑스대혁명. 이 사람의 용기도 용기인가. 프랑스 혁명 때 정치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미라보’는 사회의 가장 신성한 규범에 공공연히 대적하는 일에 가담하려면 어느 정도의 결의가 필요한 지를 확인하기위해 노상에서 강도질을 했다고 하네요. ”대열 속에서 싸우는 병사는 노상강도의 반 만큼의 용기도 필요 없다”라고 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 얘기죠. 미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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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소에 있는 죄수들을 모두 용기있는 사람으로 임명해야 하겠네. ‘감옥소’가 아니라 ‘용기소’겠네. ‘욱’하는 것도 용기인가. 그럼 일제 치하때 우리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도 강도질 연습하고 하얼삔에서 이등박문의 가슴에 총을 쏘았나. 어쨌든 안중근 의사도 살인범이구만. 그런데 살인범은 살인범인데 애국살인범이라고. 애국자는 독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핵심관계자는 거의 전부 ‘빵’출신이라면서요. 이헌태 같은 ‘범생이’들은 용기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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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적인 착각 두 가지만 소개할께요. 첫째, 한국 대통령의 착각. 국민의 열화와 같은 지지속에 당선되었으며 자기는 일을 열심히 잘 하는데 국민들과 언론들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착각 속에 산다. 폐단은 언론의 무턱된 반대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갖는다. 언론은 원래 그런 존재들, 아부하길 바라면 안된다. 언론을 잘 설득하는 것도 지도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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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될 당시에도 반대자 수는 상당하고 지지자도 시간이 갈수록 반대자로 돌아선다.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청와대생활이 지옥같다고 말한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대선 때가 되면 지옥행 열차를 타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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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국 남편의 착각. 마누라와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사회에서 자존심까지 버리며 온갖 고생을 다하고, 따라서 직장생활에서 고달픈 내가 집에 돌아오면 당연히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착각속에 산다. 폐단은 가족들에게 제왕처럼 구는 게 당연하는 생각을 갖는다. 마누라와 자식들도 똑 같은 사람이고 저거들 기준에 따르면 바쁜 사람인데. 이헌태 너, 많이 변했다. 깨갱.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죠. (세상이 바뀌어 남편이 이전처럼 대왕처럼 행세할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현실에 적응하면서 초라하고 비굴한 사람이 된다. 다른 표현으로 다정다감한 가정적인 남편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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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의 인기가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특히 경박한 말을 많이 하고 말도 자주 바뀐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위나라 문후가 참 본받을 만하다. 중국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이전까지 무려 1362년의 중국 역사를 방대하게 기록한 북송때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나오는 문후의 세가지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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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문후가 어진 이들을 스승으로 섬기며 그 집앞을 지날 때 반드시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고 이로인해 사방의 어진 선비들이 많이 몰려왔다는 것.둘째, 신하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자 들판으로 나가 사냥 약속을 한 산림지기를 몸소 찾아가 약속을 파했다는 것.(일반사람들도 한창 즐거울 때 다른 약속장소에 가기 어려운데 하물며 왕이 하잖은 산림지기와의 약속을 위해, 와 눈 튀나온다) 셋째, 신하들에게 자신이 어떤 임금인지를 묻자 모두들 ´어진 임금´이라고 했는데 임좌라는 신하는 한 사례를 들어 ´어진 임금´이 아니라고 바른말 했고 임금이 몹시 불쾌해 하자 임좌가 물러났다. 문후가 책황에게 다시 물으니 “임금이 어질면 바른 말을 한다고 했는데 임좌의 말을 보니 임금이 어진 줄 알았다”고 답했다. 임금이 즉시 임좌를 불러오게하고 친히 당하에서 맞아 상객을 삼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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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 세월이 뭐 묵나 천천히 가면 되지. 헛소리, 사마천의 사기도 중국의 빅히트 역사책이고 사마광의 자치통감도 마찬가지네. ‘사마’자가 들어가면 대단하구만. 한국의 사마귀는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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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씨의 ´야생초편지´라는 책에 보면 사마귀가 웃기는 놈이더구만요. 황씨가 가까이서 지켜본 교미시간이 10시간. 와 짜식들, 거의 ´색마곤충´이구만. 인간색골들은 다음 세상에 사마귀로 태어날라. 섹스로 진을 빼고 나서 허기가 지면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개판´이더라구요. 개판보다 더 나쁜 ´사마귀판´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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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비슷한 말이 상상이죠. 한국담배인삼공사가 KT&G라는 상호로 고치며 담배라는 이름을 살짝 감추고 있죠. 이 회사의 버스광고를 보니, ‘상상예찬- 상상은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라고 홍보하더라구요. 또 잡지광고를 보니, 하늘 구름 위 고래꽁지그림을 그려놓고 "상상예찬,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가 그랬듯, 인터넷시대를 연 빌게이츠가 그랬듯, 앞으로의 세상도 상상에서 출발합니다.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가 그랬듯, 데츠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이 그랬듯, 상상은 무한한 가치로 실현됩니다. 상상의 힘---, 상상의 자유---, 상상이 샘솟는 나라, 대한민국--KT&G는 상상을 응원합니다´. 거창하네. 상상하고 담배인삼공사하고 무슨 관계인가. 갑자기 상상을 응원하겠다고 하니. 남녀간 ´쌍쌍´이 담배피우다 보니 ´상상´이란 말이 갑자기 생각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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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상상’해보니 (잉, 웬 상상, 담배인삼공사에 벌서 물들었나) 담배 피우면 몽롱하잖아요, 헛되든 말든 상상도 잘 되고. 그래서 억지로 상상이라고 붙인 것 같아요. 일부 창작가들은 대마초를 피우면 상상력이 극대화된다고 하니 쬐금은 이해가 가는 구만. 돈 벌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구만. 아예 ´대마초합법운동´이나 하지. 광고 아이디어를 보니 공사에 계신분들 참 똑똑한 사람들이구만.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말장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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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내 생일날인 17일에 일본이 4월 29일, 2차 대전 전범인 히로히토 천황의 생일날을 ‘쇼와의 날’로 정하고 국경일로 삼았다고 하네요. 웃기는 짜장면들인게. ‘격동의 쇼와시대’라고 했다고 하네요. 남의 民族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해놓고 격동은 무슨 격동. ‘잔인의 시대’였지. 일본이 자존심을 살아서, 2차대전 이후에도 정부차원에서 미군의 ‘점령’이 아니라 ‘진주’, ‘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정부차원에서 잘 노는 나라죠. 지금은 정부차원의 개혁이 안되어 아주 골치 아픈 나라가 되어가더라구요. 다 벌받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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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인삼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홍보판에 올린 옹색한 기사 둘. 하나, ‘올해도 금연열풍 작심 3일로 끝나다’ 라는 제목의 어떤 기사 소개. 일반인은 ‘작심3일’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데 이 회사는 오매불망 ‘작심3일’을 바라고 있구만. 역시 웃기는 짜장면이구만. 홍보를 수준 높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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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25년동안 담배를 연구한 모 연구원의 얘기를 실은 기사 소개, 일부 대목, “담배예찬론자다. 담배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알맞게 피울 경우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도 열심히 담배를 피우겠다”며 시제품 한개비를 집는 그의 모습에서 외곬 직업인의 긍지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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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미국의 어떤 유명인사가 ‘마약 예찬론’을 펼치더라구요. 그분도 나중에 몸에 이상이 생겨 끊었지만. 알아서 삽시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마약을 하면 감옥갑니다. 다 안다고요. 이런 한국은 좋은 나라인가, 나쁜 나라인가. 제가 뭘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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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인간과 자연에 해가 되는 직업을 갖지 말라, 자비의 이상을 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는 직업을 택하라고 했는데. 담배회사는 웬지 께림찍, 얼마전까지는 고기집으로 떼돈 번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그것도 이제는 웬지 깨림찍. 술회사는 논평 유보. 이헌태한테 술 없으면 안되니. 이헌태 니는 니 편의대로 사물을 평가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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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유아독존’ 이것을 현대버전으로 번역하면 “내가 잘 났으니 내 멋대로 산다”. 악역이라고요, 부처님이 아시면 기절초풍, 포복절도하시겠네. “이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뜻으로 본인 스스로는 물론 인간들이 서로를 존중하라는 뜻이죠. 지금은 악역쪽이 더 기승을 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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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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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화정 집을 나서 광화문 근처에 내 승용차를 세우고 난 뒤 지하철을 타고 가서 저녁 10시 50분쯤 길동 청산학원 앞에 도착했다. 거리의 네온사인을 받으면서도 어둑해진 밤, 날씨는 선선해서 상쾌했다. 저녁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대지로 비를 뿌리지는 않았다. 미리 도착한 일행 가운데 몇 분은 바로 앞 감자탕 집에서 쐬주 걸치고 있었다. 보도에 쭉 걸터앉은 일행에게 시원한 캔 맥주가 하나씩 주어졌지만 나는 거절했다. 술꾼이 거절하다니 세상이 뒤집어질 일. 백두대간 산행이후 첫 거절. 일주일 전에 접쳐진 다리 발목이 완쾌되지 않았고 더구나 그 이후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시는 바람에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지난 열두번의 대간산행에 한번도 빠지지 않은 소위 ‘종마’라는 역사적 운명 때문에 (아이구, 내 팔자야) 빠질 수가 없었다. ‘종마’는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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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서 5천원짜리 중국산 스프레이 파스까지 사서 발목에 마구 뿌려놓은 상태였다. 약국에서 하도 성능이 좋다고 권해 샀지만 웬지 ‘짜가’ 같은 인상을 떨칠 수 없다. 중국물건은 다 ‘짜가’라는 고정관념이 무섭구만. 산행 때마다 꼴찌 단골인 내가 술까지 잔뜩 마시면 환자 신세가 될까 봐 눈물을 머금고 (?) 술을 자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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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버스는 드디어 저녁 11시 20분에 출발했다. 3명의 신입회원을 포함, 출발인원 총23명 (나중 대전에서 강희재선배가 합류, 총24명). 확실한 장마비의 예정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 “한국에는 더 이상 이같은 산악회는 없다”. ‘강철 산악회’냐 아니면 ‘미친 또는 또라이 산악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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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참석율. 이유가 있었지 않겠어요.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습니다. 심상준총무의 각고의 노력과 정성때문이 아닐까. 사이트에 무려 4번이나 글을 올리며 독려, 선동, 협박, 공갈을 쳤거든요. 대간회원 명단에서 짤리지 않으려면 부모상이나, 본인이 죽는 병이 아닌 다음에는 와야죠 뭐. 사이트에 올린 글을 간단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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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글에서 지난 산행을 회고한 뒤 다음 산행의 운을 띄웠다. “지난 대간 길은 지난하였던 것 갔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멍 합니다. 산행 20년간 지난 번과 같은 큰 사고는 제 기억력이 미치는 한 (태백산은 제외)에서는 없었던 것 갔습니다. 여기 저기 그곳이 조금 쓸키고 삔 적은 있었지만 외상이 그리 크게 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교통사고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우리가 산행을 하면서 착한 마음. 이쁜 마음, 밝은 마음을 잃지 않고 양반 산행을 해서 사고가 그 정도로 그친 걸로 위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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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글은 반성과 독려. “이번 산행은 처음 마음(初 心)을 화두로 잡았습니다. 지리산으로 첫걸음을 옮길 때는 종교적 숭고함까지 느껴졌던 것같습니다. 이제 그 신성한 발걸음을 다시 새워 보는 대간 길을 열어 보았으면 합니다. 계절이 네번째 변해 가고 있습니다. 단풍구경을 겸한 백두대간 첫걸음이 겨울 지나 봄을 훌쩍 넘어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그렇게 흘러갔는지 그것이 아주 오래전 이야기처럼 그렇게 가버리고 다가 왔네요. 우리들의 대간 길도 한번은 돌아 보아야할 때가 지금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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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간을 가면서 자연의 변화, 산들의 흘러감 그 속에 나를 낮추고 찾고. 함께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산을 이기고 정복하고 소유하고 또 대간길 떠남을 관행적 행사로 여기지 않았나 하는, 마음 한 구석의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삼도봉(전라,경상,충청)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의식을 가지려 합니다. 그날은 개인 개인의 정성을 보여 앞으로 가는 대간 길에 큰 어려움이 없이 나를 닦고 키우는 산행이 되기를 소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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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7월 11일에서는 장마비를 예측하며 불굴의 의지를 호소. “이번 산행은 장마중이어서 빗길 산행이 될 확률이 90%이상 될 것입니다. 총무의 기로 하느님과 소통을 해서 비를 멈추어 주길 간절히 소원해 볼까 했는데 지난번 산행에서 너무 방정을 떨어 험한 산길이 되었던 것 같아 이번은 순리에 맞추어 내리는 비는 막지 않고 맞고 갈려고 합니다. 이번은 빗길 산행을 준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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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바로 당일인 12일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협박과 공갈. “답은 하나. 무조건 갑니다. 비가 억쑤로 와도 갑니다. 비가 무지막지 하게 와서 백두대간이 자리를 피해도 쫓아가서 오릅니다. 오늘 무조건 갑니다. 빗길 산행 준비 단단히 하고 오십시오. 비가 와도 꼭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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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허정균선배도 리플답변을 통해 “천지의 교접 그리고 인, 천지인 삼재, 3수분화의 우리 전통세계관을 맛볼 좋은 기회. 그러나 준비는 단단히”라며 바람을 잡았다. 자기가 무슨 바람잡이인가. 나도 “심선배의 저 결연한 의지, 독립군의 후손인가” 라며 한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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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우중 산행’ 아니, ‘폭우중 산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많은 인파들이 몰려들 것은 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심선배의 무지막지한 폭압과 협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저 혼자 생각해봅니다. 아니라구요. 심선배가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한 지 처음 맞는 ‘우중 산행’의 기가 막힌 맛을 보게 하려는 그 심오하고 갸륵한 정성이 하늘에 닿아 사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이빨과 구라만 는게 아니고 아부도 늘었구만. 총무로서 늘 고생많습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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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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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총무가 버스안에서 이번 산행은 1000미터 고지 위에서 나아가는 ‘하늘 길’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첫 산신제를 지낸 이후 이번에 다시 무사산행을 위한 고사를 지낸다고 했다. “이 지역은 가야, 백제, 신라가 피튀기게 싸우던 곳으로 기가 센 지역이어서 늘 조심해야 한다”는 거창도사 백신종 선배의 말씀도 전하면서. 죽은 원혼들이 아직도 떠돌고 있나.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시작된 뒤에도 영,호남지역이 계속 싸우고 있다고 하네요. “아, 슬퍼다”. 이헌태의 ‘형님동생 구별법’ 전에 가르쳐 드렸죠. “아우야, 많이 먹어라”형님이죠. 동생이 좋다고요. 그러면 할말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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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에서 어떤 시인의 시를 배포했다. “사랑이란 함부로 쓰지 말자, 인연이란 함부로 쓰지 말자. 만남이란 함부로 쓰지 말자”라는 표현이 눈에 쏙 들어온다. ‘아나바다’ 운동이 생각나네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운동. 그거하고 다르다고요. 시간이든, 물이든, 전기든, 뭐든지 아껴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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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하는 분들은 ´덜먹고 덜입고 덜갖고 덜쓰고 덜놀고´운동, 즉 ´덜하자´운동을 펼치시더라구요. 환경도 살리고 사회불평등도 해소되고.최근에는 경기침체로 아예 ´안입고 안쓰고 안놀고´ 현상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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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웃사랑과 자선활동은 아끼지 말고 푹푹 쓰고. ‘아나바다’ 운동의 반대는 마구 쓰고 혼자 쓰고, 한번 쓰고, 푹푹 쓰고 ‘마혼한푹운동’이네. 경기부양하다가 카드빚때문에 나라가 거들날 뻔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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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만에 나온 양평 누님은 이날도 기가 차게 맛있는 김밥과 전을 푸짐하게 준비했고 당연, 버스안에서 술잔이 마구 돌았다. 중국 북경대에서 한방을 공부하고 있는 김우진 후배가 나의 부은 발목에 침을 몇 대 놓았다. 왜 그리 아픈지, ‘악악’하며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귀가 뚫려서인지 모 선배가 “막내라서 그렇다”며 엄살로 치부했다. 흥분. 제가요, 국민학교때 다쳐 찢어지고 피가 나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아 의사들이 깜짝 놀란 독종인 것을 모르는 모양이죠. 침 몇 대 맞고 나니 덜 아픈 것 같았다. 한방에서 ‘침술이 최고’라고 하더니. 빈 말이 아닐세. 참 신기하지. ‘침이 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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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기고 하나 둘씩 취침에 빠진다. 좌석을 뒤로 젖히고 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통로를 건너뛰어 네 자리를 쭉 연결해서 자는 사람, 두 좌석을 이용해서 베낭을 베고 새우잠을 자는 사람, 자는 폼이 가지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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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들의 취침모습 대공개. 공자께서는 언제나 몸을 꼬부리고 옆으로 누었다고 하네요. 부처는 반듯한 자세로 평화로운 모습으로 편안하게 누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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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태의 호프, 소동파가 좀 특이하더라구요. 이부자리에 몸을 편안하게 누운 뒤 눈을 감고 자신의 숨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호흡이 느리고 고른 것을 확인하고 잤다고 하네요. 자기 전에 속으로 “이제 난 아주 평온하게 누어있다. 몸 어느 구석이 설사 불편하다 하더라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온전히 의지력과 집중력으로 견뎌내리라. 잠시후면 몸이 발끝까지 편안하고 안락하게 느껴질 것이고 나른함이 밀려와 난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거의 기도하고 제사지내는 수준이구만. 그냥 자면 되지 꼭 이렇게 기도하듯이 자야 하나. 소동파도 코를 심하게 골았다고 하네요. 나 원 참. 본인은 꿈속에서 편안했는지 몰라도 주변사람들이 짜증났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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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가운데 하나가 딸자랑. 자랑하기위해 손가락 꼽으려면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나의 딸 승은이의 자랑하나. 이 짜식은 부처처럼 공주처럼, 잠잘 때 바른 자세로 편안하게 누워 평화로운 얼굴모습으로 늘 자죠. 여자도 성현이 될 수 있나. 잠자는 부분에서는 성현될 자격은 갖추었네. 내실과 품격만 갖추면 되네. 부모가 훌륭하면 자식도 훌륭하다고 하든데. 그 대목이 쬐금 아쉽네. 스승보다 나은 제자라는 뜻의 ‘청출어람’이라고. 자식이 부모를 월등히 뛰어넘을 수도 있잖아요. 헛된 욕심 버리라구요. 죄송합니다. 남의 자식 이쁜 꼴을 못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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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잘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자느냐가 그날 잠자는 동안과 자고 나서 깬 뒤까지 영향을 준다고 하네요. 그래서 잠자기 직전에 명상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고. 민주당 정대철대표가 굿모닝시티 정치자금 수수문제로 인해 대표직 사퇴여부를 고민하면서 저녁내내 대취를 해서 양복 입은 채로 호텔방에서 잤다는 기사가 나왔더라구요. 나도 그런 적이 일년에 몇 번은 있겠죠. 술에 만취해서 양복을 그대로 입고 침대에 벌렁 누어 코를 쿨쿨 소리 내며 자는 것은 ‘양반’이 아니라 ‘머슴’들이 하는 습성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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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얘기 추가. 나폴레옹은 밤에는 별로 자지 않고 낮에 조금씩 분산해서 잠을 잤다고 하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밤을 꼬박 세우고 네 시간마다 15분씩 낮잠을 잤다고 하네요. 세계의 스타 가운데는 별의 별 인간들이 많구만. 별의 별이 스타의 별인가. 그래서 영웅들은 별난 사람들이구만. 짜식 또 말장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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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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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한밤중이고 초행길이라서 전세버스는 길을 잘못 들었다. 무주군 설천면 쪽에서 헤매다가 겨우 목표지인 부항령을 찾아 왔다. 산을 뚫어 부항령 밑을 가로지르는 삼도봉 터널도로는 요새 만들어진 길이라서 안내판이 거의 없었던 탓. 새벽 5시, 전세버스가 도착한 곳은 지난 산행 때 국수를 너무 맛있게 한 그릇 비웠던 ‘역사의 현장’ 바로 그 천막휴게소 앞. 그 후덕해보이던 아지메는 어디 가고.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의 변형. ‘주막은 그대로인데 꿈결 속에 맛본 듯한 그 국수는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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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김에 창업된 조선에 투항하지 않고 금오산에 들어가버린 고려말 충신 야은 길재, 경상도 영천의 포은 정몽주와 함께 영남학파의 창시자. 길재의 시 전문소개."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죽어도 두 임금을 못 모신다고 했다네요. 대충 살지. 왕이 중요하나 백성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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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하나, 고려에서 이조로 넘어갈 때 적잖은 고려 선비들이 고려의 패망을 아쉬워 했더라구요. 고려말의 나라사정이 썩어 문드러졌는데도. 고려가 매력이 있었나 보지. 아니만 말고. 시대는 지났지만 왕조의 이름은 남았구료.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조선일보, 고려대학교, 조선대학교.다들 대단하지. 그럼 이헌태가 나온 연세대학교는 사학으로 가장 오래된 뿌리 깊은 ‘연세 드신 학교’라는 뜻이네. 그것보다는 ‘연연 세세, 영원히 번성하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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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니 벌써 날은 훤히 밝아 있었다. 시계 50미터밖은 하늘땅 구별 없이 자욱한 비안개로 뒤덮여있다. 소낙비는 후두두두, 두두두두, 따발총처럼 땅에 내리꽂아 딱딱 때리는게 재미나는 듯이, 아니면 무슨 맺힌 한을 풀 듯이 마냥 쏟아붓고 있었다. 쫙 깔린 안개속의 장대비, 그리고 인간들의 군상, 신비함을 연출하는 영화의 멋진 한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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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 터널안을 쳐다보니 마치 불이나 연기가 가득차있는 듯하다. 저 터널을 지나 건너편은 호남 땅으로 넘어가겠지만. 상상의 날개를 난다. 미래로, 우주로 가는 터널인가. 미래를 미리 가고 싶은, 우주로 무한히 뻗어가고 싶은 게 인간의 꿈이다. 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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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초우의, 일회용 비닐비옷, 자켓우의,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색깔의 비옷으로 완전무장. 비옷을 입은 형상이 유령 같기도 하고 꼬마병정 같기도 하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비가 다소 멈추기를 기다렸으나 기우 사실은 헛꿈에 그쳐 대장님의 출발지시에 따라 새벽 5시 50분 장정의 첫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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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도로 때문에 생긴 높다란 절개지를 따라 진초록 빛깔로 싱싱하고, 쑥쑥 높게 자란 풀들을 정글 헤치듯이 대략 15분쯤 올라가니 지난 산행때 중단했던 부항령 대간 마루금에 도착했다. 다시 보니 반갑네. 이제 산하고 정들었네. 산봐도, 길봐도 반가우니. 완만한 오르막 길과 가파른 길, 평평한 길이 조금씩 골고루 뒤섞여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한시간 가량 가다 보니 첫 봉우리에 올라섰다. 김경순씨가 준비한 고도시계에 따르면 해발 1022미터. 천미터 고지에 드디어 올라섰구만. 다행이다. 이번 산행은 여유로운 산행이되겠구만. 발목이 약간씩 우-리-하게 부담을 주고 있다. 끝까지 버틸 수 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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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짙은 안개로 자욱한 가운데 비가 천지의 주인공이 된 양, 소리까지 내지르며 경망스럽다. 짜식. 초목(草木)이 빗방울을 머금어 구슬마냥 영롱, 윤기가 졸졸 흐른다. 생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대지는 비를 받아 마시느라 분주하고 너무 포식했는지 물이 넘쳐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식물들은 비가 오니 풀, 나무 구별 없이 한결같이 진초록색으로 통일해서 한 형제처럼 보였다. 식물들의 ‘대동세상’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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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서로 같은 무리끼리 어울린다는 뜻, 명칭은 다르나 따져보면 한가지 것이라는 말이라고 사전에 적혀있다. 맞다. 모양과 크기는 다 다르지만 드디어 다 하나처럼 보였다. 원래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은 ‘가재는 게편’ 처럼 비슷한 놈이 편들 때 비아냥대면서 쓴다. 이날 울창한 숲은 그야말로 ‘초록은 동색’을 입증하듯 초록단일색으로 페인트칠했다. 어느 페인트회사제품이 ‘숲으로’ 라더라구요. 친환경시대를 맞아 그 순수한 ´환경´을 잘도 팔아 울겨 먹는다. ‘환경’을 팔아서 돈 번 회사는 환경보호에 적극 투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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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산처럼 참나무들이 산을 뒤덮으며 대장노릇을 하고 있었다. 바람도 합세했다. 나뭇가지들과 풀들이 휘청휘청한다. 비가 오니 새들은 저그들 집에서 콕 쳐박혀 있는 지 기척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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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대지, 파릇 파릇 풀들을 보면서 30년대 미국 대공황때 오클라호마 빈농이 땅을 잃고 살아가는 암울하고 비극적인 대서사시를 그린 미국대표소설가 스타인 벡이 생각났다. 그는 ‘분노의 포도’에서 “난 대지야 그리고 비지. 이제 조그만 있으면 나로부터 풀이 돋아나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심미적으로 잘 표현. 스타인 벡의 일관된 신념은 “인간이란 어떤 고난에 부딪치더라도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것. 맞습니다, 맞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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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땅을 살리고 풀을 살리는 생명수구나. 지금 나를 향해 한껏 퍼붓는 비도 생명수겠지. “안개 자욱한 산속,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촉촉히 젖은 초목은 나를 보며 한가롭고, 산은 선승처럼 침묵 수행중”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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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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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령을 출발한지 대략 1시간 반을 지나니 사방이 뚫린 봉우리에 올라섰다.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슴이 뚫린 듯하다. 비가 안개를 만들어 이렇게 아름다운 천지, 대자연을 보지 못하게 심통을 부리는 구나. 나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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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님은 출발할 때부터 “조금 가면 비가 그칠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비가 야속하게도 쉼 없이 계속 내리고, 산행내내 단 한 팀의 다른 대간종주팀도 마주 치지 못하자 스스로 “보통의 언행을 넘어서는 산행”이라고 평했다. 남들이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스페셜 산행’ 이라고 실토한 셈이다. 이순간 우리나라 남녘의 백두대간 길에는 과연 몇 팀이 대간 산행에 나설까. 호우주의보가 아침 뉴스에까지 나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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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니 처음에는 빗소리도 음악처럼 들리고 비가 내 몸을 툭툭 치니 정겹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비 때문에 신발이 젖고 비옷안에 습기가 차니 답답하다. 불쾌, 짜증까지 날 정도였다. 정글 길을 헤치고 가면서 우산을 펼칠 공간이 나오면 비옷의 머리 덮개를 벗고 우산을 썼다. 한결 시원하고 편했다. 차라리 몸에 걸치고 있는 모든 옷을 벗어 던지고 나체로 걸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비가 내리고 젖고 습기까지 차니 몸에 걸친 것들이 너무 거추장스럽다. 문명의 이기가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원초적 자유 본능을 누르고 있었다. 가자, 무인도로. 로빈슨 크루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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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인간의 고독을 그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지독한 사회비판서인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영국에서 성인용 소설로 대히트를 쳤지만 후에 편집해서 어린이용 동화로 둔갑된 케이스. 작자가 살았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하기야 ‘해리포트’는 어린이용이 어린이, 성인겸용으로 바뀌고 있으니. 이제 어린이, 성인 구분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구만. 어린이 같은 어른이 많고 어른 같은 어린이들이 많아졌다는 얘기. 이헌태는 혹시 전자. 넘어갑시다. 나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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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태평양에 놓여있는 지구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팔라우’ 공화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의 사람들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비 오면 그냥 맞고 또 시간이 지나다 보면 마르고 그렇게 비와 한 몸이 되어 살고 있었다. 공기는 너무나 깨끗한 순도100%. 흰 와이셔츠를 일주일 입어도 깨끗하단다. 한국의 수도, 서울은 하루만 입어도 목에 때가 꼬장꼬장 묻어 있는데. 그곳은 ‘공기천국’, 서울은 ‘공기지옥’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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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원주민 부인과 사는 한국인 아저씨 한 분이 살고 있어요. 이국만리도 아니고 더 나아가 삼국만리, 사국만리인 그 곳에 살고 있다니, 깜짝 놀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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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해서 살게 된 사연인 즉, 외항선언인 그 아저씨의 배가 그 섬에 들렀을 때 원주민 처녀와 썸씽이 있었는데 처녀가 놓아주질 않았다네요. 그 나라의 법에 따르면 원주민이 허락하지 않으면 출국이 되지 않는데요. 그래서 그냥 눌러 앉아 살겠되었다고 하네요. 고향은 경남, 세월이 오래 흐른 뒤에야 편지로 고향에 소식을 띄었다고 하네요. 돈이 없어 10여년째 아직 고향에 한번도 가지 못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형제 부모가 보고 싶을까. 우째 그런 팔자가 다 있나. 한국에 태어날 운명이 아니었는데 하늘이 나중에 조정을 해주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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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에서 아저씨와 고국의 형제들간의 상봉을 만들어주면 좋을텐데. 남태평양의 비경도 보도도 할 겸. 제가 갈 당시만해도 일본관광객이 많았고 한국관광객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한국인 ‘아리랑’ 식당은 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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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분이 ‘망향가’를 부르며 마냥 눈물과 시름에 젖어있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바다에 가면 그물로 잡을 생선이 가득 차 있고 야자수를 비롯 열대과일도 지천에 늘려있고 만사가 귀찮으면 시원한 그늘이 쳐진 오두막집에서 낮 잠을 쿨쿨 자고. 바로 ‘지상낙원’이 아닐까. 10여년 전만해도 아저씨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지금 스트레스에 찌들면서 살고있는 한국의 샐러리맨들에게는 여간 부러운 게 아니고 축복스럽게까지 보일지도 몰라요. 딸은 ‘튀기’라서 어찌나 예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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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정보 하나, 한국 사람들이여 미국으로 이민가지 말고 남태평양 섬으로 이민을 가자. 돈 1억만 가지고 가서 욕심 버리고 살면 평생 낙원 속에 살 수 있을걸. 남태평양 원주민들은 경쟁이 있나, 스트레스가 있나, 걱정이 있나, 미움과 증오가 있나, 그냥 살면 되니. 부럽다, 부러워. 문명국 한국의 이헌태가 미개인 남태평양의 원주민을 부러워하니 세상도 많이 바뀌었구만. 거꾸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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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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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에 비를 맞으며 그냥 또 걸고 또 걸었다. 보이는 시계는 여전히 50미터 내외. 평평한 능선도 지났고 봉우리를 지났고 암릉도 지났고 넓은 평지와 초지도 지나며 북쪽으로 계속 진군했다. 1000미터를 두고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종마’인 내가 포함된 후미그룹은 오전 10시 20분쯤 작은 공터에 서서 아침을 먹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행전체가 모여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이번처럼 아침을 늦게 먹은 것은 대간산행 후 처음이다. 선두그룹은 우리 후미그룹과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는 모양이다. 구입한 무전기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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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길 대비용 스패치가 혹시 유용할 지 몰라서 가져왔다. 대략 3시간동안 신발안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 주었다. 그 후로는 소용이 없었다. 신발에 물이 차 발이 물에 쪼그라들었다. 길은 비로 흙탕물길로 바뀌어 대지를 밟을 때마다 철벅 철벅, 물똥을 밟으며 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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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비안개 속에 파묻혔다. 안개가 흰색,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보이니 깜깜한 것과 진배없다. 희고 검은 색, 극과 극이 서로 통하네.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즉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준다. ‘적막강산’ 속의 ‘면벽수도’, 눈감은 ‘명상’과 일맥상통. 명상도 눈 깜고 고요한 마음에서 해야지 눈뜨고 이것 저것 다 구경하면 명상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헌태는 눈 감으면 잠이 오고 명상이 불가능하죠. 명상하고 거리가 멀죠. 이헌태, 자랑이다. 죄송합니다. ‘선’(禪)의 대사부인 달마스님은 토굴에서 9년간 면벽수도했다고 하네요. 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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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많으면 나를 보지 못하고, 보이는 게 없으면 나를 볼 수 밖에” 말 되나 모르겠네. 누가 명상은 전 우주에 울려 퍼지는 진아(眞 我)의 고요함이라고 했던가. 절에서 20년간 벗어나지 않은 스님도 있더라구요. 이헌태는 세계 각국을 돌면서 많이 많이 많이 여행하고 구경하는 게 꿈인데, 완전 다른 인생관이구만. 이헌태는 여러 군데서 행복을 찾는데 그 스님은 한 군데서 행복을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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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명상은 내면에서 우러 나오는 환희와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공짜라서 더 좋다고 하네요. “외부세계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실험실과 엄청난 예산이 들지만 내부세계에선 그렇지 않다”. 공짜 너무 좋아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넘어가겠습니다. 요새는 잘못하면 집단항의를 받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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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대간 길을 가는 동안 무의 경지에 빠져서 ‘십우도’ (또는 심우도)를 차분하게 음미해 보았다. 멍한 채 걸어가니, 노니 뭐합니까, 심심하면 장독 깬다고. 십우도는 북송 말기 곽암사원 스님이 사람과 친근하고 굳센 ‘소’에 의탁하여 득도하는 수행과정을 열장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시를 붙여서 탄생한 것이라고 하네요.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서 소를 보고 잡아 끌어서 마침내 소와 내가 하나가 되어 결국 공적 (空 寂)이 되고 다시 당초의 일상생활로 되돌아가는 순서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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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신의 본면목의 비유인 ‘소’를 찾아 나서고 (심우), 소의 자취를 발견하고 (견적), 소를 발견하고 (견우), 소를 얻으니 (득우), 소를 잘 먹여 길러 (목우),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기우귀가), 이제는 소를 얻어온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망우존인), 그래서 사람도 소도 사라지고 없는 큰 융화의 경계에 이르러 (인우구망), 마침내 본래의 온전한 자아로 돌아가서(근본환원), 저자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 즉 누구와도 자유롭게 편하게 어울려 지낸다(입전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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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근본환원 원문. “ 본래 청정해서 한 티끌에도 물들지 않으면서, 모습 있는 만유의 영고성쇠를 본다. 함이 없는 고요한 경지에 머물러, 더 이상 환상과 동일시 하지 않으니, 어찌 수행과 계율에 의지하리오! 물은 맑게 흐르고 산은 푸르른데, 홀로 앉아 세상의 흥망 성쇠를 바라보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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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 라스트 신, 입전수수 원문. “ 싸리문을 닫고 홀로 고요하니, 천명의 성인이라도 그 속을 알지 못하네. 자기의 풍광은 묻어 버리고, 옛 성현들이 간 길들도 등져버린다. 표주박을 들고 저자에 들어가며, 지팡이 짚고 집으로 돌아간다. 술집도 가고 고깃간도 들어가서, 교화를 펼쳐 부처를 이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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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 뭔데. 헛된 망상과 집착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나를 찾아 자유로운 삶은 산다는 것. 쥑인다. 이헌태 막걸리만 보면 죽는 줄 알았는데 저런 시를 보고 ‘쥑인다’고 하니, 니도 어떤 때보면 수준이 있구만. 저를 어떻게 보세요. 저도 ‘울 엄마한테 가면 세상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식인데,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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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도 삼십에 뜻을 세우고 사십에 흔들리지 말고 오십에 삶의 뜻을 깨달아 육십에 이르러 매사를 자유롭게 살아라고 하셨죠. 쇼핑몰의 ‘가격파괴’가 아니라 요즘은 ‘나이파괴’ 20, 30대에 재산을 모으고 뜻을 편 사람들이 적잖아서 ‘나이파괴’가 본격화되는 듯. 그래도 성숙이 안 되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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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은 ‘한장면 산행’, 즉 ‘한 컷 산행’다른 말로 ´답답 산행´밋밋 산행´. ‘다장면 산행’ ‘파노라마 산행’, ´조망 산행´, ´전망 산행´ ´경치구경 산행´이 아니라. 시종 시계 30-50미터 반경내의 안개 속 숲, 걷고 있는 나와 일행. 똑 같은 그림, 오직 한 장면이 이번 산행의 전부였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북쪽방향은 뭐가 보이고 남쪽방향은 뭐가 보이고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슬프고 좋은 일,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는 쓸 게 별로 없다. 눈으로 본 게 없으니. 비가 무지하게 내려서 메모도 불가능했다. 보이스펜을 사든지. 누가 한 개 사주세요. 겨우 시간대별로 체크하는게 거의 전부였다. 그래도, 이헌태가 누군가. 구라 고추가루를 팍팍 더 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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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산행’은 단조롭기 그지 없지만 달리 생각하니 차분한 마음으로 명상의 분위기도 돋구어주었다. 아시다시피 명상하면 여유와 무욕이 저절로 생긴다. 심심한데 이빨이나 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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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여유. 중국의 한 선비는 하루에 한번씩 세시간에 걸쳐 차를 마셨다고 하네요. 할 일 없는 놈. 시간은 돈, ‘시테크’라며 일초를 아끼는 현대 경영자들에게는 정신병자취급을 받기 십상이지만. 근래 들어서서는 이런 황당한 사람도 나름대로 인정 받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깽판을 치고 무너진 뒤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자본주의가 더 기승을 부릴수록 오히려 반대로 자연과 마음을 중시하는 풍토가 강해지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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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들이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외로움을 달래주는 안식처를 찾게 마련. 최근에는 환경문제가 대두하면서 자연숭배, 그를 바탕으로 한 종교가 더욱 번성하는 것과 같다. 불교나 인디언신앙 같은 종교는 미신처럼 취급 받아 죽다가 살아난 케이스. 환경파괴가 인류가 맞이한 대재앙이면서도 거꾸로 인류에게 획기적인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인류가 정신을 더 차려야 하지만 ‘꼴통’들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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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의 창시자가 부처님이라고 하네요. 제자들에게 남은 음식들을 호수나 강에 버리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수자원 오염금지. 그곳의 생명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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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캠페인 가운데 가장 확실한 구호. ‘환경운동은 나와 내 사랑하는 가족이 살기 위한 운동’이라는 거죠. 지구를 살리자, 인류를 살리자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가슴에 더 와 닿잖아요. 추가, 자연과 나는 한 몸이라는 생각도 필요합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나의 팔다리가 짤려나간다는 고통의식을 강조하는거죠. 너무 뻥이 심했나. 이 두 가지를 명심하고 살면 자연파괴는 못하죠. 이런 것을 두고 ‘위협, 협박, 공갈성 화끈 캠페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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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여러분, 환경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때까지 당분간 마음속으로 매일 ‘지구의 날’. ‘생명의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시다. 아침마다 ‘오늘도 사람을 사랑하자’고, 또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하듯이. 이헌태처럼 ‘오늘도 숨을 쉬게 해주어 감사합니다’라고 겸손하듯이. ㅋㅋㅋ. 겸손한 놈이 겸손하다고 말하는 것 못 보았다구요. 그럼, 처음이니까 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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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개인’ 차원으로 환원시킬 수 있죠.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주장했죠. 즉 “인간의 자연상태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불사하는 야만의 속성에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만인은 만인에게 적이며 타도의 대상이다”. 웬 그렇게 야박한 말씀을. 이 분에 따르면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것도 친절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빈곤을 보며 고통을 느끼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까지는 너무 무리한 해석같고요, 남을 도우면 자기 기분도 좋으니까 결국 자기 만족을 위해 한 행동은 틀림 없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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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환경운동하든 자선사업을 하든 뭐든 착하고 선하고 좋은 일도 자기 생존과 만족을 위해 하는구만. 이헌태, 좋은 게 좋다고, ‘인류정신’이나 ‘박애주의’, ‘이타주의’로 보고 넘어가자구요.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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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욕. 인디언의 생활철학.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에서 나오는 인디언 노인의 몇 가지 말씀. 구절 구절이 공자님같이 옳아 다소 길더라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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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콘매는 느린 놈을 잡아갔어. 그러면 느린 놈들이 자기를 닮은 느린 새끼들을 낳지 못하거든. 또 메추라기 알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우는 땅쥐들을 주로 잡아 먹는 것도 탈콘매이란다. 탈콘매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메추라기를 도와주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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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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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족한테도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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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칠면조란 놈들도 사람하고 닮은 데가 있어. 뭐든지 다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자기 주위에 뭐가 있는지 내려다보려고는 하지 않아. 항상 머리를 너무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배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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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디언들은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을 죽이러 갈 수 없으니까 그동안 살인하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 동물을 상대로 그 짓을 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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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살생을 금하는데 인디언들은 먹기 위한 살생은 허용했구만. 어떤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발에 밟혀주는 동물이 생길까 봐 발뒷굼치를 들고 다닌다고 하네요. 와, 그렇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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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태 니, 대단하다. ‘한컷 산행’을 갖고 이렇게 이빨을 세게 푸냐. 어떻게 보면 하품 나오고 싫증날 일인데 그렇게 심오하고 득도하는 산행으로 바꾸냐. 그것은 요,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저의 일관된 철학에서 비롯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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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런 분이 계시더라구요. 간만에 이헌태가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한 분이죠. 다 아실 겁니다. 2000년 여름 자동차 사고로 온 몸에 화상3도의 중화상을 입고 죽음까지 갔다가 회복과정의 참혹한 고통을 극복하고 이제는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지선이라는 참한 여자가 있어요. 사고전 대학시절때 찍은 얼굴사진과 사고후 지금의 얼굴사진을 비교해보면 속된 말로 천사와 괴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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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달마대사의 제자인 혜가는 자신의 멀쩡한 팔 한쪽을 잘라 달마의 가르침을 얻었다고 하네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어이, 소름 끼쳐. 스님들이 원래 독해요. 장가 안가는 것까지는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속세의 인연’을 끊는다면서 가족과의 인연도 끊더라구요. 이 대목에서는 진짜 독종이죠. 스님입문테스트에 독종도 체크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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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스스로 팔을 끊어 도를 구했듯이. 지선양은 타의에 의해 도를 구한 케이스죠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보니 좋은 글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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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 등이 아파서 벽에 기대야 했기 때문에/ 모두 앞으로 나와 예배드리는데도 저는 맨 뒷자리에 있었어요/ 그러나 내 마음은 하나님 제일 가까이/ 십자가 바로 밑에 엎드리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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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찬양하는데 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잇몸이 다 내려 앉을 것 같이 당기는 턱때문에/ 도저히 입을 벌려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큰 소리로 /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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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지 말아주세요/ 너무나 못난 얼굴을 갖게 되었지만 /예전처럼 예쁘게 화장도 못하지만 / 이 마음은 그 누구보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스물네 살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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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쯧쯧쯧..."불쌍하다 하지 말아주세요/ 누가 봐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불행할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이 행복한 천국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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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외모가 아닌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는 그래서 하나님이 더 좋아요/ 내 부족한 외모가 아닌 / 내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나는 그래서 하나님이 참 좋아요 (20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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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지 말아 주세요’. 캬, 한용운,이육사,윤동주,서정주등등 한국의 거물급 시인도 표현하지 못한 멋진 말이구만. 거의 도인들이 쓰는 사고와 언어인데, 하느님을 믿는 어린 소녀가 오래 도를 닦은 불교의 선승수준에 이르렀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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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양은 책 말미에 “누군가 제게 물었습니다. 예전의 모습으로 , 사고 나기전 그 자리로 되돌려준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바보 같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제 대답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입니다”. 100%본심이라고 믿기에는 아직도 주저하지만 그러나 제가 객관적으로 볼 때 사고후 새로 얻은 행복이 사고전 멀쩡했을 때 행복보다는 훨씬 컸다는 데는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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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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쨔잔, 오전 11시 일행은 삼도봉(1177미터)에 도착했다. 전북 무주, 경북 김천, 충북 영동 세 곳이 만난다고 해서 삼도봉. 지리산 삼도봉(경남, 전남, 전북), 초점산 삼도봉(전북, 경남, 경북)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이곳은 마한, 진한, 변한 소위 삼한의 삼도봉이고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삼도봉이어서 ‘대표 삼도봉’이네. 흘러 흘러 충청도 땅까지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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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은 ‘남한의 센터’로 불리는 산. 가깝게는 남서쪽으로 덕유산, 저 멀리 남쪽으로는 지리산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남동쪽으로는 가야산, 북동쪽으로는 황학산, 그리고 북쪽으로는 속리산까지 보인다고 하니. 동서남북의 대표 선수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드문 산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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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 보니, 미리 온 선발대는 오래 기다려 체온이 하강한 듯 입술이 파랗게 질리면서 한기에 벌벌 떨고 있었다. 아이구, 미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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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 정상 한가운데 세 마리 거북이 위에 여의주 하나를 함께 들고 있는 세 마리 용의 형상을 조각한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이 있었다. 어찌나, 촌스러운지. 삼도봉을 함께 나누고 있는 전북 무주, 경북 김천, 충북 영동 3곳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1990년 10월 10일에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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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에는 “삼도 대화합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소백산맥의 우뚝 솟은 봉우리에 인접 군민들의 뜻으로 이 탑을 세우다”라고 적혀 있었다. 매년 10월 10일, 3개군 지역민들이 삼도봉에 모여 ‘만남의 날’ 행사를 가진다고 한다. 걸핏하면 밥그릇 갖고 싸우는, 한국에서 가장 별나고 골치아픈 3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이제 쬐금 정신차리고 ‘자중자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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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20분, 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념탑에서 조금 올라선 삼도봉의 정상바위 앞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막걸리가 아니고 양주, 산신령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양주가 더 좋겠지 뭐. 부침과 과자,떡, 과일을 차려놓고 절을 했다. 유영래대장님과 허정균선배가 각각 준비한 두개의 제문을 읽었다. 둘 다 좋은 내용. 대장님 제문은 불태어졌고 한지에 쓴 허선배 제문은 하늘로 날려 버렸다. 잘도 날라가네. “산신령님, 잘 봐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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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래대장의 제문은 본인도 기억 안나고 나도 기억 안나고. 대장님의 깊은 뜻은. 전라경상충청의 3도, 마한진한변한 3한이 맞붙는 백두대간에서 가장 기가 충만된 삼도봉의 귀신을 불러 일행 모두에게 한반도의 정기를 충만하게 해주셔서 건강하게 대간 산행을 종주하도록 해달고 빌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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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균선배의 제문 소개. “유세차 단기 4336년 칠월 열사흘 ,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 대원들은 충청, 전라, 경상도를 아우르는 삼도봉에 올라 백두대간 정령들게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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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시월 스무이레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고남산 봉화산 백운산 영취산 덕유산 삼봉산 대덕산을 넘어 이곳 삼도봉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숨결을 한걸음씩 이어 밟으며 오는 동안 바위 하나 나무 한그루에게 조차 우리 조상들의 기억이 깃들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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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축복받은 삼한의 옛터는 오늘에 이르러 탐욕으로 가득찬 세상을 맞아 신음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부디 아침 햇살에 산 안개 흩어지듯 미망을 떨쳐내게 하시어 우리 삶의 근본이 백두대간임을 알게 하시고 너와 내가, 남과 북이 결국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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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세번째 걸음으로 삼도봉에 오른 한걸음 이어가기는 앞으로도 오십여 차례 더 나아가 우리의 조상들의 피인 저 물줄기와 우리 조상들의 뼈와 재인 저 대지를 내려다보며 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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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정령들게 간절히 비옵나니, 대원 모두가 아무런 사고 없이 대간 마루금을 이어가게 하시옵고 또한 이땅의 모든 묏부리의 조종인 백두산을 우리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고 오르게 하소서.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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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씩 절을 하면서 소원을 빌었다. 나도 ‘종마’라고 시킨다. 나는 ‘무사히 끝까지’. 이날 산신제의 의미는 단 하나, ‘겸손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면 산은 한없이 아름답고 푸근하지만 오만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면 산은 가차없이 엄하고 무자비하다’는 사실. 산에서 까불면 죽음까지도 내모는 잔인한 면도 지니고 있다. 와, 산이 무서워. 어떤 때는 악마구만. ‘산은 종교’, ‘산은 스승’이란 개념까지 나왔는데. 앞으로 매번 등산시작 때 ‘겸손’을 외치고 길을 나서야하겠다. ‘프로 스포츠는 프로를 원하지만 산은 프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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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길을 한번 정리해본다. 용틀임하는 장엄한 산맥의 백두대간 능선에 홀로 빼어나 솟구쳐서 이름이 자자한 봉우리만 40여개를 넘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꿈결 같다. 어찌 이 연약한 인간 이헌태가 걸어 왔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까마득하다. 신선이 구름타듯이 비행기를 타고 지나온 궤적을 한번 내려다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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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제석봉-장터목산장-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평전-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형제봉-연하천산장-명선봉-토끼봉-화개재(뱀사골산장)-삼도봉-노루목-임걸령- 돼지령-노고단-성삼재-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주촌리-수정봉-입망봉-여원재-장봉-고남산-유치재-매요리-사치재-새맥이재-복성이재-매봉-치재-꼬부랑재-봉화산-광대치-월경산-중재-백운산-영취산-암봉-말궁굴재-민령-깃대봉- 육십령- 할미봉- 장수덕유산-남덕유산-월성치-삿갓봉-무룡산-동엽령-백암봉-싸리덤재-지봉-달음재-대봉-갈미봉-신풍령-삼봉산-암봉-소사고개-삼도봉(초점산)-대덕산-덕산재- 부항령-삼도봉-삼마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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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 라면도 끓여 먹고 과일도 깍아 먹고 양주도 나눠 마셨다. 등산화는 냉수물이 가득 차 철벅거리죠, 등산화를 벗어 물을 빼내고 양말을 짰는데도 불과 몇 분을 못 가죠, 방수 비옷인데도 속옷은 거의 다 젖였죠, 비는 속절없이 하염없이 내리죠, 다들 오들오들 바들바들 추워서 떠는 모습이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 따뜻한 라면 국물이 그래도 몸을 훈훈하게 녹여주었다. 라면이 이렇게 고맙고 맛있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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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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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15분 다시 길을 나섰다. 삼도봉에서 서북쪽방향은 석기봉, 민주지산으로 가고 백두대간 길은 직진이다. 당초 계획은 대간 길을 따라 3시간 더 행군, 우두령까지 가기로 했으나 날씨 사정상 목표를 수정,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다음 산행 때는 다시 대간 마루금까지 힘겹게 다시 올라와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지만. ‘과욕은 금물’. 날씨와 대원들의 컨디션으로서는 포기가 정답인 듯. 늘 합당한 판단을 내리시는 대장님. 이헌태, 평소에는 더 가자고 난리더니 이번 산행 때는 발삐었다고 동조하고, 일관성이 없구만. 제가 원래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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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이름이 특이했다. 민주화 투쟁의 기념산인가. 전혀 관계없다. 국립지리원 발행의 지도에는 면주(目民 周)지산으로 되어있는데. 충청도쪽에서는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불렀다가 일제시대에 지도를 제작하면서 민주지산으로 잘못 굳어졌다고한다는 것. 아,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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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바로 하산길이 이어지면서 목 계단이 몇 개나 놓여 있었다. 정상부근에 이런 목계단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보니 인근에서 사랑받는 산인 모양. 대략 20분쯤 내려가니 영동군 상촌면과 김천시 부항면을 연결하는 삼마골재가 나타났고 일행은 대간 길을 벗어나 왼쪽인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물한계곡을 따라 본격 하산했다. 넓게 트인 완만한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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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래 대장께서 “대간길은 간땡이가 부은 사람들이 간다”고 한마디. 대간의 간이 간땡이의 간이구만. 또 “장사꾼, 거간의 최고가 ‘대간’이라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면 통이 커져서 대간 같은 사람이 되는 모양이지. 이헌태, 닮으셨나. 말장난하시기는. 그런 천한 말장난은 이헌태같은 쌍놈들이나 하지 대장님 같은 양반들이 하면 품위 떨어지죠. 그래도 뜻은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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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퍼부어 물한계곡에 물이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산 구석구석 움푹 꺼진 골만 생기면 아래로 빠르게 흐르는 빗물이 순식간에 계곡으로 떼지어 마구 유입되면서 콸콸 큰 소리를 지르며 맹렬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물이 온순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섭다는 게 실감났다. 이렇게 미친 듯이 달려가는 계곡 물을 오랜만에 보았다. 폭포가 갑자기 여기저기 생긴 것이다. 보기 드문 멋진 광경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 계곡에 갈 날이 별로 없으니. 이번 산행은 슬프게도 ‘안개 산행’으로 마감하면서 땡할 줄 알았는데 산신령이 선물을 하나 주셨구만.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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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양의 바위를 끼고 길게 이어진 계곡으로 물이 확 불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3,1절과 작년 월드컵이 생각났다. 성난 파도처럼 각 골목에서 뛰쳐나와 아우네 장터로 몰려나온 그 울분과 분노. 광화문 사방의 거리를 메우며 서울 시청 앞으로 모여든 그 환희와 흥분. 작은 힘이 합쳐 큰 힘을 만드는 모습, 예술이다. 이승만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고”. 이헌태는 거꾸로. 뭉치면 술을 마시기 때문에. 이헌태의 경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이헌태, 제발 일찍 일찍 집에 가거라. 저도 소원, 워낙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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콸콸 분기탱천, 혈기왕성한 계곡의 물들이 바위에 강하게 부딪히며 생긴 흰 거품이 계곡을 덮고 있었다. 흰 눈 같다고 한 분도 있고, 나는 계곡의 기(氣)가 아닐까 한다. 도인들에게 흰 수염이 나듯이. 상스러운 기운이 몰려있듯이. 사람들도 열 받으면 입에 거품을 물잖아요. 그게 아니라구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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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도 종류가 너무 많죠. 보기도 싫은 거품은 공장폐수거품. 인생에 있어 거품을 빼고 경제의 거품을 빼고. 저는 늘 폭탄주 만들 때 맥주 거품을 빼죠, 잉. 이헌태 니는 맨날 폭탄주얘기냐. 저는 소주는 독하고 맥주는 배부르고, 둘을 섞은 폭탄주가 가장 좋아요. ‘폭탄주 매니어’ 폭탄주 몇잔 마셔도 알딸딸 취하고. 가장 경제적인 술이죠. 분위기도 가장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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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물이 급작스레 불어나면서 낭패가 생겼다. 띄엄 띄엄 흩어진 돌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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