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묘가 한국판 야스쿠니 신사인가
입력 2014.03.16 10:04
수정 2014.03.17 11:46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죽은이에 박해받으려는 정치인들
현충원을 선거출정식 무대로 격하시키는 행위는 그만하라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의 수많은 관료와 지식인들이 3년 내지는 10년씩 하방(下放)당하거나 도피생활를 했었다. 후야오방(胡耀邦)은 3년 동안 군사학교에 배치되어 힘든 노동으로 몸무게가 반으로 줄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시골 트랙터공장 노동자로 3년 동안 줄질을 했었고, 자오쯔양(趙紫陽)은 숙청당했으며, 주룽지(朱鎔基)도 5년 동안 돼지 사육을 했으며, 장쩌민(江澤民)은 10년 동안 피신을 다녔다. 원자바오(溫家寶)도 지질연구원으로 북경에서 쫓겨났었다.
시진핑(習近平)은 부친이 하방당해 옥살이까지 하는 바람에 고된 노동으로 소년시절을 보냈다. 리커창(李克强)은 3년 간 농민생활을 한 바 있다. 그 외 대부분의 혁명 동지들과 관료들이 하방을 당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모멸을 겼었다. 한데 왜 그들은 죽은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침을 뱉지 않을까? 박정희처럼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하지 않아서일까? 언젠가 중국이 민주화되면 그때 침을 뱉을까?
문화대혁명 최대의 부산물
어느 날 마오쩌둥은 왕비서를 보내 하방 중인 등샤오핑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게 하였다. 하여 낮에는 온갖 수모어린 궂은일을 원망불평 없이 열심히 해내고 밤에는 마루장 걸레질로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는데도 얼굴이 밝고 온화하더란 보고를 듣자 “등은 마음이 둥글구나!”고 말했다 한다. 세상 사람들은 마오쩌둥이 등샤오핑을 제거하려고 일생동안 애를 썼다지만 그건 속 좁은 소인배적 생각이다. 오히려 훗날을 위해 그를 아껴 원격 모니터링하면서 지도자 그릇 단련작업에 같이 동참하였다.
이처럼 대국을 다스리는 것과 소국을 다스리는 것은 그 격이 다르다. 큰 나무 밑에는 절대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법. 해서 훌륭한 지도자나 스승은 쓸 만한 재목감을 오래도록 자기 밑에 두지 않고 멀리 내친다. 거친 황야에서 비바람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가지를 뻗어 자기 세력을 키우도록 내치고, 심지어 박해까지 하는 것이다.
진정한 영웅은 후계자를 그렇게 키운 것이다. 그의 곁에서 권세와 영화를 누리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4인방들의 면면과 비교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또 대만의 장제스(蔣介石)과 비교하면 쉬이 수긍이 가겠다. 좋은 게 좋다는 성군이 나온 다음에는 반드시 찌질한 왕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강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지고 사람 역시 고난을 통해 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 철든다는 말은 곧 역경을 견뎌냈다는 말이다. 중국이 오늘날처럼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것도 실은 마오쩌둥의 하방 때문이라 하겠다. 하지만 머잖아 그 문혁세대가 끝날 때쯤이면 중국도 활력을 잃을 것이다.
박해는 인재를 숙성시키는 최고의 도구
정치와 종교는 닮은 구석이 많지만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박해’다. 이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치명적 영양소다. 그렇지만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절대권력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죽음이다. 박정희의 진정한 후계자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다. 그들을 가택 연금시키고 감방에 보내지 않았으면? 분명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사라지거나 베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박정희의 절대 권력에 의한 긴 숙성기간을 가지지 않았다면 김대중, 김영삼 같은 정치꾼들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어떻게 했을까? 자유당 시절의 혼란을 반복했을까? 철부지들끼리 서로 민주주의 하겠다고 싸우다가 필리핀처럼 되지 않았을까? 그 무엇보다 경제는? 그리고 북한을 제대로 견제해냈을까? 김영삼, 김대중이 훗날 한참 경륜이 쌓인 다음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위해 한 일을 생각하면 거슬러 짐작이 가겠다.
마오쩌둥을 생각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덩샤오핑을 생각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저우언라이를 생각하면 한국의 김종필이 연상된다. 큰 나무 밑에서 자란 나무들 중 나중에 그 큰 나무를 대신하든가? 박정희 밑에서 다음을 이을 인물이 나왔는가? 김영삼의 가신 구룡(九龍)들은 다 어디 갔는가? 김대중의 마름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귀여운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고 했다. 김영삼의 후계자는 구룡이 아니라 이회창이었다. 김대중의 후계자는 없다. 아무도 키우지 않았다. 다행히 전두환은 국회에서 명패까지 얻어맞아 노무현이란 후계자를 만들었다. 당사자들이야 인정하지 않겠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다는 말이다. ‘웬쑤같은 놈’이 진짜 후계자인 셈이다.
박정희 묘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다시 선거의 계절. 며칠 전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박정희 전 대통령 묘를 참배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또다시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었다. 그 따위 질문을 하는 자나 초등학생처럼 대답하는 자나 한심하기는 매한가지겠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대선이 아닌 지방선거까지 박정희가 없으면 치를 수가 없게 되고 말았으니 이 세태를 두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다.
지난 대선 때 민주통합당 문재인이 국립현충원 참배를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만 분향한 것을 두고 국민들이 그 옹졸함을 비웃자, 이를 의식한 안철수는 박정희 묘에도 분향을 하고 그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우리 산업의 근간이 마련됐지만 법과 절차를 넘어선 권력의 사유화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를 위해 노동자와 농민 등 너무 많은 이들의 인내와 희생이 요구됐다”며 침을 뱉었다.
박정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시대의 굴레에 저항 한 적도 없이 경제성장 덕분에 보리밥은 구경도 못한, 쌀밥과 고기반찬에 기름지게 자라 성공한 기업인이 갑자기 정치에 입문하자니 도무지 뭔가 부족한 것이겠다. 해서 그 무덤에 침이라도 뱉어 반(反) 박정희, 실은 박정희의 유복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겠다. 아무렴 참배를 해도, 참배를 안 해도, 참배를 않겠다고 해도 화제가 되니 그만한 노이즈마케팅거리도 다시없겠다.
박해받지 못해 안달해대는 정치 철부지들
박정희에게서 직접 박해(보호관찰)받은 정치인들은 대통령도 해먹고, 박정희를 욕한 사람도 대통령을 해먹었다. 박정희 시대에 감옥 혹은 유치장 다녀 온 학생들은 다들 근사한 자리나 배지 하나씩 보상받았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출세를 하려면 박정희에게서 박해 받은 척이라도 해야 한다. 해서 어차피 가야할 군대에 일찍 징집 당한 것도 박해받았다고 하고, 장발단속 당한 걸로도 박정희에 항거했다고 떠벌리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독재자의 적이 되어 순교자인양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자신이 박정희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 시대의 주연으로 싸운 양 환상에 빠져 주제파악도 못하고 돼먹지 않은 말을 입에 담는 게다. 스스로 과거사의 굴레를 뒤집어쓰면서 입으로는 미래가 어쩌구, 새정치 새시대가 저쩌구 외친다. 진실로 오만하고, 가증스럽고, 비열하고, 비겁하고, 역겨운 위선이라 하겠다.
물론 누구한테서 박해를 받았냐가 중요한 일. 이 나라에선 오로지 박정희여야 한다. 전두환에게서 받은 박해는 박해가 아니라 피해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해서 적당히 보상받고 끝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죽은 박정희에게 박해해달라고 매달리는 정치꾼들. 그때 왜 자기를 감방에 보내주지 않았느냐며 무덤에까지 와서 떼쓰는 그 가증스러움에 눈물이 나려한다. 박정희가 무능한 독재자였더라면 과연 그랬을까?
속담에 싸우다 정분난다고 했다. 글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욕하면서 닮는 건 맞는 것 같다. 기실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의 우상은 박정희다. 그를 배우고 싶고, 닮고 싶고, 넘어서고 싶고, 밟고 싶은 게다. 더구나 민주화 시대엔 영광되게 감옥에 갈 빌미도 없다. 명패 던질 곳도 없다. 무단 월북을 해도 영웅은커녕 정신 나간 놈 취급만 받는다. 해서 박정희 무덤에 몰려와서 참배 아닌 침뱉기 경쟁을 하는 것이다.
현충원은 정치 시위하는 곳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치명적인 약점은 제 포지션을 모른다는 것이다. 도무지 분수를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터지면 울컥댈 줄만 알았지 도통 솔루션을 만들어낼 줄은 모른다. 이 민족에겐 정치DNA만 있고 창조DNA는 아예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할 줄 아는 짓이라곤 고작 편가르기라지만 하필 왜 국립묘지인가? 호국영령들이 그 꼴을 보자고 목숨 바쳤는가?
유불리 현실감각 내지는 호불호 역사관으로 무슨 공인인가? 아무리 박정희와 원수지간이라 해도 공인(公人)이면 최소한의 품격과 덕목은 갖춰야 한다. 공인으로 나섰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사적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현충원에 들러 참배하면 국민의 애국심이 고취된다던가? 아니면 그들의 우국충정의 각오를 국민들이 곧이곧대로 믿을 것 같은가? 입만 열면 화합이니 새정치니 하면서 정작 하는 짓이라곤 분열과 갈등 조장이다.
현충원에서의 정치적 추태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선거 출정식하는 곳이 아니다. 정히 시위를 하고 싶으면 기왕지사 널리 백성을 위한다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엎드리든 팔뚝질이든 하길 바란다. 정치인은 현충일 등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라 해도 취임할 때 군통수권자로서 무명용사기념탑에 꽃을 바치는 것 이외는 사적으로 현충원을 찾아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이 자주 찾을수록 현충원이 오염될 뿐이다. 정히 참배 하고 싶으면 잠든 영령들을 깨우지 말고 조용히 혼자 헌화하고 다녀가라. 그리고 참배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망자의 귀와 눈과 입은 막혀 있어 마음으로 소통해야 한다. 해서 묵념(黙念)이라 하지 않는가. 참배에 뒷말이 붙으면 참배가 아니다. 그런 걸 헛짓한다, 싸가지 없다 하는 것이다. 번지수도 헤아릴 줄 모르는 몰상식한 짓거리다.
게나 고동이나 정치하는 나라?
기자가 묻는다고 또박또박 말대꾸하거나 자기 행위에 대해 일일이 변명, 핑계를 대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다. 진짜 프로는 그렇게 직접 답을 하지 않는다. 은유적인 메시지만 던져놓고 정답이나 선택, 결정은 상대에게 맡긴다. 박정희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 시대를 살았던 국민이 더 잘 안다. 자신만의 판단이나 오늘의 잣대로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에게 과거사를 가르치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다.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그러니 어설픈 지식과 감정적 논리로 국민을 가르치려 들지 말았으면 한다. 국민은 그런 무지하게 ‘똑똑한’ 골샌님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하다고 전지전능한 것 아니다. 아무렴 김영삼, 김대중 만한 인물도 이제 이 땅에서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격정의 한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박정희 콤플렉스, 박정희 트라우마를 걷어내고 다시 새벽을 맞을 수 있을까? 밤이 무척 길 것 같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