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와 무례' 피해자 최강희, 덮고 감싸 안았다
입력 2013.10.08 16:06
수정 2013.10.08 16:15
기성용 물의에 홍명보 개입 '강요 모양새'
최강희 감독, 후배 탓 없이 통 크게 배려
기성용(24)이 드디어 고개를 숙였다.
'SNS 파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성용은 최근 브라질(12일·서울)-말리(15일·천안)와의 A매치에 나설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홍명보호에 첫 승선했다.
7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기성용은 먼저 "최강희 감독님께 죄송하다. 타이밍을 놓쳐 미리 사과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기성용이 직접 입장을 표명한 것은 SNS 논란이 불거진 뒤 무려 3개월 만이다. 기성용은 8일 오전에도 파주트레이닝센터에 입소해 최강희 감독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한 것은 물론 “여러 가지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각오를 전하기도 했다.
기성용의 공식사과로 SNS파문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최강희 감독도 기성용 잘못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기성용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영국에서 돌려보낼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던 홍명보 감독도 일단 기성용 발탁에 명분은 확보했다.
하지만 전후과정을 살펴보면 씁쓸한 뒷맛은 남는다. 갈등에 대한 진정한 화합과 용서라는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고, '보여주기 위한 사과'라는 형식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문제의 원인은 기성용의 사과가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점과 홍명보 감독이 기성용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기성용은 지난 7월 SNS 파문 때 이미 직접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어야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에이전시를 통한 사과문 한 장이 전부였다. 기성용은 이에 대해 "지난 두 달간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팀도 옮기고 어려운 시기라 한국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찾아뵙고 사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다 늦어졌다"고 밝혔다.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기성용이 유럽에 있었고 따로 시간을 내서 직접 사과하러 올 수 없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사과문을 보낼 시간에 어떤 형태로든 본인의 의사를 전하려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비슷한 시기에 구설에 오른 윤석영 조차 바로 SNS를 통해 해명과 사과의 의지를 표했다. 그러나 기성용은 논란 직후 SNS를 탈퇴했고 이후 침묵만 지켰다. 흔한 전화 한 통이나 영상 메시지든 기성용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창구는 없었다. 직접 해명할 의무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기성용 사건에 개입한 것도 결과적으로 악수였다. 홍 감독은 기성용이 최강희 감독에게 공개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감독 발언으로 기성용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과를 강요받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기성용의 사과를 대표팀 발탁과 연계, 마치 조건부 사과가 되어버린 셈이다. 오히려 사과의 진정성만 해친 꼴이 됐다.
홍 감독이 빈축을 사면서도 무리수를 둔 이유는 자명하다. 그만큼 기성용이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홍 감독은 대선배 최강희 감독에게도 무례를 범했다. 기성용 사과여부에 대한 홍 감독의 발언은 당사자인 최강희 감독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최 감독은 이전부터 기성용과 관련된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왔다. 홍 감독도 기성용의 사과를 언급하면서 최 감독 의중은 사전에 묻지 않았다. 홍 감독이 직접 기성용을 데리고 최 감독을 찾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최 감독의 거절로 무산되기도 했다. 당사자의 입장이나 상황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사과를 받아달라고 강요한 그림이 됐다.
분명 불쾌한 과정이었음에도 최강희 감독은 홍 감독이나 기성용을 한 번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후배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다. '사과하러 올 필요가 없다'는 것도, 사과를 거부한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두 사람이 찾아올 경우 조용히 다녀가는 게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인 최강희 감독은 끝까지 통 큰 배려로 후배들을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