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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트라우마' 치유 못하면 '인사는 망사'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입력 2013.06.03 10:48
수정 2013.06.03 18:08

<박근혜 취임 100일 명과 암①>MB정부 반면교사 못삼아

초기 추동력 '아쉬움'…홍보수석-대변인 인선이 시금석

박근혜호(號)는 출항부터 험난했다. 닻을 올리기도 전에 인사문제의 파고가 덮쳤다. 특히 초대 국무총리 내정자의 자진사퇴는 초유의 일이었다. ‘권력이 가장 강할 때’라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 터진 인사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뼈아픈 정치적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국민과 언론이 새 정부 추진동력에 힘을 실어주는 허니문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은 4일까지 국민 앞에 두 번 사과를 했다. 첫 사과는 대규모 장차관 낙마를 불러온 부실인사에 대한 사과, 두 번째는 인사난맥상의 결정판인 ‘윤창중 파문’에 대한 사과였다. 모두 ‘불통인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백일까지 인사참사로 닻을 끌어올리지 못해 국정운영에 속도를 올리지 못했지만, 박근혜호의 순항을 가로막는 인사문제의 닻이 상대적으로 더 무겁게 민심의 바다에 잠겨있다. 개혁과 경제에 대한 기대를 품고 출항한 앞선 정부와 달리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내건 박근혜정부다. 인사문제로 제 속도를 못내는 ‘준비된 정부’의 모습에 국민들의 답답함은 쉽게 가시질 않고 있다.

김용준 자진사퇴로 시작된 '도미노 낙마' 국정운영 발목

출발에서 삐거덕 거린 인사문제는 ‘도미노효과’로 이어졌다.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된지 5일 만에 자진사퇴한 사건으로 인사문제에 균열이 시작됐다.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자진 사퇴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둔 기간은 ‘천금’같은 시간이다. 인사문제에 발목이 잡히면 국정추동력 저하로 직결되고, 새 정부의 비전과 철학을 펼쳐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 등의 신조어를 낳으며 출범 초부터 민심이반 현상을 겪은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정부도 ‘성시경 내각’이라는 야당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박근혜호가 출항한 뒤 한 달 동안만 김용준 내정자를 비롯해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김학의 법무부차관,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가 연이어 낙마했다. 선장은 키를 잡았지만, 주요 승무원은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이 가운데,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의 자진사퇴는 결정적인 항해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위협이 계속된 가운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국방부 장관의 공백은 안보를 강조해온 박근혜정부에게 치명타였다. 즉각 박 대통령은 김관진 현 국방장관을 유임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 나타난 인사 문제의 처음과 끝인 김용준 대통령인수위원장(왼쪽)과 윤창중 전대변인.ⓒ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종훈 사퇴로 창조경제 구상 삐거덕…'몰라요' 윤진숙 반대여론 뚫어

이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의 낙마로 박근혜정부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미래창조과학부를 국정목표인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성장엔진으로 삼고, 미국에서 정보통신의 신화를 일군 김 후보자에게 지휘봉을 맡기려한 박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자진사퇴 후 황망히 미국으로 돌아간 김 후보자는 현지언론 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낙마 이유를 한국 탓으로 돌려 또 다른 논란을 낳기도 했다.

장관 후보자 중 마지막 인사청문회를 거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기사회생’한 경우다. 그는 주요 현안에 대해 “잘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어업의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질문에는 “국내총생산이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하”라고 답해 구설에 올랐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부적격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반발에도 4월 17일 윤 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새 정부 출범이 더 늦어질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온 ‘여성인재 등용’이라는 점도 더했다. 윤 후보자를 교체할 경우, 내각에서 여성장관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밖에 남지 않게 된다. 야당의 반대에 명분을 제시하고 거듭 이해를 구한 뒤 내각 구성의 마지막 한 수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인사사고 노미노' 끝은 윤창중…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윤창중 사태’는 박 대통령의 인사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언론의 지적과 여론을 무시하고 윤창중을 고집한 것이 참사를 빚은 씨앗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 기간 중에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와 그 가족, 국민에게 사과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불통인사’라는 비판을 수없이 받았고, ‘수첩인사의 결과는 망사(亡事)’라는 지적 등 무거운 책임론을 떠안았다.

이에 박 대통령은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윤 전 대변인에 대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라고 ‘인사 실패’를 인정하고 인사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보완과 변화를 약속했다.

중요한 건 앞으로다. 박근혜정부는 이제 출항을 해 속도를 올리는 과정이고, 100일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어야 남은 항해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

'나홀로 인사' 지적에 "상시검증하겠다"…차기 홍보수석 '새인사의 가늠자'

박 대통령의 인사문제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나홀로 인사’다. 인선과정에서 철저한 검증과 정교한 사후대책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당장 인사시스템의 점검이 필요하다’, ‘검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윤창중 사태로 반성문을 쓴 뒤 “인사위원회에서 다면적으로 검증하고 인사 자료도 차곡차곡 쌓으면서 상시 검증체계로 가겠다”며 제도적 보완과 변화를 약속했다. 청와대도 변화의 움직임에 적응할 채비다.

특히 공석인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변인 인선은 박 대통령의 ‘새인사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고민이 길어지는 이유다.

이와 관련, 박근혜정부 출범 공신 중 한 명인 이상돈 전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100일’에 대해 “인사실패로 헤매다가 100일이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그 인사가 대통령의 결정이 많았다”고 ‘나홀로 인사’문제를 지적했다. 또 “인사가 만사라고 해서 인사가 잘못됐다고 평가를 받으면 모든 게 잘못됐다고 평가받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과 지난 2004년 ‘탄핵정국’에서 선대본 부본부장으로 호흡을 맞추며 난국을 돌파한 바 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겉으로 보기에는 윤창중 사태가 수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국민들 가슴속에 남은 상처는 치유가 잘 안 될 것”이라며 “별 책임을 안지고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절대 득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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