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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취해 '근자감'만으로 버티다가는…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3.03.30 07:58
수정

안방서 열리는 2018 평창올림픽 들러리?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 건립 절실한 문제

김연아

‘여제’의 화려한 귀환이 남긴 강렬한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김연아(23)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4년 만에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내외 언론들은 김연아 찬사 릴레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캐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 케이틀린 오스먼드(캐나다) 등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와 경쟁했던 선수들도 김연아의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인정하고 있다. 돌발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카타리나 비트(독일) 이후 약 20년 만에 여자 싱글 부문 2연패 달성 가능성은 매우 높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 한국 피겨 스케이팅은 어떤 상태일까.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피겨는 그저 개최국으로서 대회의 구색을 맞춰주는 마음 좋은 집주인의 모습 그 이상을 넘지 못할 것이 뻔하다.

혹자는 최소한 여자 싱글 부문에서 ‘김연아 후계자’라 불릴 수 있는 선수가 나와 메달을 다툴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연아는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우리 국민에게 큰 선물을, 피겨를 숙명으로 여기고 훈련에 매진해 온 ‘김연아 키즈 세대’ 유망주들에게는 그들이 최종목표로 삼고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에 앞서 동계올림픽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천금을 주고도 얻기 어려운 선물을 선사했다.

김연아가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여자 싱글 부문에서 한국 피겨는 김연아 포함 총 3명의 선수를 소치 동계올림픽에 파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김해진, 박소연 등 주니어 무대에서 그랑프리 대회 메달을 획득한 유망주들이 김연아와 함께 소치동계올림픽 무대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에게 소치동계올림픽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국내 피겨 인프라가 이대로 지속되는 한 그렇다는 얘기다.

결국, 피겨 꿈나무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의 훈련을 할 수 있고, 빙질 역시 피겨 스케이팅에 최적화 된 빙질을 갖춘 피겨 스케이팅 전용 아이스링크가 건립되지 않는 이상 한국 피겨의 영광은 내년 소치동계올림픽 무대에 선 김연아를 끝으로 과거의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연아와 똑같은 비현실적 존재가 또 다시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김연아 후계자 탄생의 전제조건을 오로지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 건립에 두는 것은 어찌 보면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한국 피겨 발전에서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 건립은 절실한 문제다.

1980-90년대 한국 축구는 월드컵 무대에 단골로 진출했지만 번번이 유럽, 남미 등 축구 선진국들과의 수준차를 절감,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아픔을 겪었다. 그 때마다 전문가들이 한국 축구의 발전이 더딘 이유 중의 하나로 제시한 것이 어린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잔디축구장 부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상위험이 적고 기본기와 세밀한 기술을 익히기 좋은 잔디구장에서 충분히 연습해야 한국 축구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기술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980-9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선수들도 잔디구장에서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전국에 인조잔디구장과 천연잔디구장을 꾸준히 늘려가고 그런 환경에서 연습을 한 어린 선수들이 차차 성장하면서 한국 축구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썼다. 이후부터는 수많은 한국 축구선수들이 축구의 본고장 유럽 무대에서 당당히 활약할 수 있게 됐다. 잔디구장이라는 인프라가 확충이 되면서 선수들의 기술수준이 전체적으로 향상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연아 후계자가 탄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김연아와 같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들이 최소한 5-6명 정도 나오고 그들이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런 유망주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또 그 몇 배수의 꿈나무들이 부상에 대한 걱정이나 훈련시간의 제약 없이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있는 아이스링크에서 기량을 연마해야 가능하다.

김연아

하지만 지금 한국 피겨의 현실은 한국을 대표해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도 그와 같은 시설 인프라 지원이 전혀 없다. 김연아가 세계적인 선수가 된 이후에도 국내에 훈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유명 테마파크 내 있는 아이스링크에서 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가운데 연습해야 했던 상황은 외신의 토픽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경기도 군포시가 추진하다 망가지고 만 ‘김연아 빙상장’이나 서울시가 건립계획을 잡았다가 현재는 사실상 백지상태가 된 서울시립빙상장 모두 일이 추진되지 못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타당성’ 문제였다고 전해진다. 김연아가 은퇴하고 나면 피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피겨 전용 빙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감, 이 시설이 ‘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라는 식의 우려가 피겨 전용 빙상장 건립이 타당성 없는 사업으로 낙인찍힌 이유라는 것.

결국, 피겨 전용 빙상장 건립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힘만으로는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빙상계를 포함한 체육계와 정부, 기업, 그리고 피겨를 사랑하는 국민이 모두 함께 이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그 중심에 ‘김연아 재단’과 같은 비영리단체가 설립되어 피겨 전용 빙상장 건립을 포함 한국 피겨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좋다.

이럴 경우, 정부와 체육계가 김연아 재단을 지원하고 기업체들과 일반 국민들로부터 모금해 피겨 유망주 육성을 위한 피겨 전용 빙상장을 건립, 빙상장의 관중석이나 시설물에 모금에 참여한 기업과 국민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 등의 아이디어들이 모아진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너무 덩치가 큰 모델이라면 태릉선수촌이나 진천의 국가대표 선수촌 한 쪽에 국가대표선수들이 합숙하며 훈련할 수 있는 국가대표 전용 피겨 스케이팅 훈련장을 짓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5년. 긴 시간 같지만 피겨 전용 빙상장 건립과 유망주 육성을 병행해야 하는 한국 피겨의 현실을 떠올리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이제는 피겨 전용 빙상장 건립에 대한 해법을 내놓을 때다.

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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