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멈추지 않는 도전 [31st BIFF]
입력 2026.10.07 11:56
수정 2026.10.07 11:57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아시아에서 시작해 세계로, BIFF와 함께 걸어왔다”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으로 부산行…“80대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어”
아시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품은 뒤에도 양자경의 시선은 다음 도전을 향해 있다. 정형화된 아시아 배우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을 거듭해왔고, 지금도 새로운 감독과 장르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그는 그 원동력으로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꼽았다.
7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1층 기자회견장에서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이자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의 주연 배우 양자경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양자경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양자경은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게 돼 감사하고 뜻깊다”며 “부산국제영화제와 오랜 시간 함께 걸어왔다. 아시아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나아가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를 함께 이뤄온 것 같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 잡기까지 아시아 배우라는 정체성은 때로 한계로 작용했다. 양자경은 커리어 초반 아시아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 자체가 제한적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가장 큰 충격은 아시아에서 왔다는 이유로 마이너리티로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영화 속 아시아 배우들은 굉장히 정형화된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변화의 계기는 ‘007’ 시리즈였다. 양자경은 이를 통해 처음 문이 열렸다고 표현했다. 이후 ‘와호장룡’ 등을 거치면서 비슷한 역할에 안주하지 않으려 했다.
양자경은 “같은 역할만 계속 들어온다면 그런 배우로만 소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선택들을 하면서 역할의 폭을 넓혀왔다”고 밝혔다.
그 여정은 2023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시아계 배우 최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양자경은 자신보다 먼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언급했다.
그는 “무엇보다 아시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가 먼저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한다”며 “그 흐름 속에서 좋은 감독을 만나고 오스카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다. 가끔은 꿈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 수상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영화가 정말 잘하고 있고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며 자부심을 가지고 걸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우리 할머니는 큐브왕’으로 관객과 만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양자경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80대 할머니를 연기했다.
양자경은 “처음 80대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웃으며 “큐브 자체가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기회는 계속 찾아오는데 우리가 ‘아니야’라고 하면 그 문은 닫힌다”고 말했다.
작품을 선택한 데에는 아시아로 다시 돌아와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는 “수년 동안 주로 미국에서 작업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방식으로 아시아 시장에 돌아올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며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 연결이 끊기지 않고 계속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품은 메시지에도 끌렸다. 양자경은 “나이가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회복하고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내 삶은 내 것인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주저 없이 ‘열정과 사랑’을 꼽았다. 그는 “저에게 이건 그냥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심장이 뛰게 만드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고 싶다. 저를 더 배우게 만드는 새로운 경험을 계속 원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창작자와 만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는 양자경은 “새로운 사람과 일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 젊은 감독들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고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을 끌어내기도 한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면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하는 것, 그게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감독들과의 작업에도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 양자경은 “‘가능한 사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을 기대하고 있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며 “정우성 배우와는 이미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K팝과 K드라마, K푸드를 좋아하고 특히 한국 사람들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직접 연출할 계획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배우와 프로듀서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말 훌륭한 감독이 되려면 개인의 삶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모두 쏟아야 할 것 같다”며 “감독이 가져야 하는 비전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제가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못할 것 같다. 대신 그런 비전을 가진 감독들을 응원하고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수십 년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가리켰다. 양자경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힘든 순간으로는 촬영 중 부상을 꼽았다. 약 30년 전 액션영화를 찍다 크게 다쳤고 ‘와호장룡’ 촬영 ㄹ당시에는 무릎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는 “그런 일을 겪으면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발 물러서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고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양자경에게 영화는 여전히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는 “영화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 작업은 제게 열정 그 자체”라며 “영화는 제 삶의 선택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저를 데려가 많은 기억을 선물했다. 상상하지 못했던 역할과 작품을 만나면서 세상에는 경험할 것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양자경은 “15년이나 기다리지 않고 이보다 더 일찍 부산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