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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 명예가 표현의 자유보다 무거울까…외국법 살펴보니

어윤수 기자 (taco@dailian.co.kr)
입력 2026.09.29 05:05
수정 2026.09.2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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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은 허위사실에 의한 사망자 명예훼손 형사처벌

중국은 민사책임 인정…미국은 유족의 별도 청구 불인정

기사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망한 사람의 명예를 형벌로 보호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사망자의 명예를 법으로 보호하는 사례가 있지만 보호 방식과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형사처벌로 보호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민사상 구제에 맡기거나 사망자에 대한 독립적인 명예훼손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법체계도 있다.


한국은 형법 제308조에서 사자의 명예훼손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과 달리 사망자에 대해서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경우만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여서 친족 또는 자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대법원은 사자명예훼손죄를 적용할 때 사망자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평가와 표현의 자유를 함께 고려하고 있다. 예컨대 역사드라마에서 실존 인물에 관한 구체적인 허위사실을 적시했는지는 단순히 실제 역사와 다른 내용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작품의 내용과 제작 목적 등을 종합해 시청자가 실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만한 구체적인 허위사실이 적시됐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일본 역시 사망자의 명예를 형사법으로 보호한다. 일본 형법 제230조 제2항은 사망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허위 사실을 적시한 때에 한해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망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형사처벌하는 구조다.


중국은 일반적인 사망자의 명예 등을 민사법으로 보호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중국 민법전 제994조는 사망자의 이름·초상·명예·영예·사생활·유체 등이 침해된 경우 배우자와 자녀·부모가 행위자에게 민사책임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우자와 자녀가 없고 부모도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다른 근친족이 민사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영웅·열사의 명예를 훼손해 사회공공이익을 해친 경우에는 별도로 형사처벌하는 규정도 뒀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자료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미국에서는 사망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유족의 별도 청구를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구체적 법리는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망자의 명예 자체를 일반적인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등 폭넓은 기준으로 보호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이 같은 원칙을 보여주는 사례가 1992년 루이지애나주 대법원 판결이다. 한 방송사가 살해된 남성이 도박 빚과 조직범죄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있다고 보도하자 유족이 소송을 냈다. 법원은 사망자의 명예훼손만으로 유족에게 별도의 청구권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망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보호할 현재의 평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사망자의 명예훼손을 폭넓게 인정하면 역사 연구와 저술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피고가 사망자를 상대로 반대신문을 할 수 없어 방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다만 미국에서도 유족 자신의 권리까지 보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망자에 대한 표현이 유족 자신에 대한 평가로도 읽히는 경우에는 유족 본인의 명예훼손을 근거로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사망자에 대한 명예와 유족에게 발생한 구체적인 피해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사망자의 명예를 보호하는 방식은 크게 갈린다. 한국과 일본은 허위사실에 의한 사망자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한다. 중국은 일반적인 사망자의 명예 등에 대한 침해에 대해 유족이 민사책임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은 사망자에 대한 명예훼손만을 이유로 한 유족의 독립적인 청구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사망자는 스스로 자신의 평판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주를 이룬다. 서울고법은 2013년 사망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관련해 사자 본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도 유족의 추모·경애의 감정이 침해된 경우 유족 고유의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고 봤다.


사망자의 명예 보호와 유족의 권리 보호를 구분하고 표현의 자유를 함께 고려하는 미국의 법리는 국내 사자명예훼손죄의 보호 범위를 다시 살펴보게 하는 비교 사례가 될 수 있다. 사망자의 명예를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과 별개로 어디까지 형벌로 개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어윤수 기자 (tac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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