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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바다이야기'서 허우적대는 게임정책 [기자수첩-ICT]

박상준 기자 (psj96@dailian.co.kr)
입력 2026.09.14 07:00
수정 2026.09.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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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수출 57.7% 게임에서 발생…지난해 86억 달러 수출

대통령 지원 약속에도 제작비 세액공제 또 제외…해외와 정책 격차

이재명 대통령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인 지난해 5월 17일 광주이스포츠경기장에서 열린 e스포츠 산업 현장간담회에서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를 체험하고 있다.ⓒ연합뉴스



'이것'만 접하면 멀쩡히 공부 열심히 하던 아이가 폐인이 된다. 이것에 빠진 아동은 반사회적 인물로 성장할 확률이 높고, 여과되지 않은 폭력성에 노출돼 흉악한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알콜·마약·도박과 같은 중독성을 지닌 만큼 노출될 환경 자체를 최소화해야 한다. 묘사만 보면 흡사 사람의 뇌에 작용하는 1급 유해 물질이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물질, 동네 PC방만 가도 빠져 사는 아이들이 많다. 이 무슨 말세란 말인가. 당장 말려 죽여야 마땅하다.


불과 수 년 전까지 기성세대와 정치권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랬다.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는 한국 사회에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행성과 중독의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엄밀히 말하자면 게임의 탈을 쓴 '도박'이었으나, 게임 주 소비층인 청소년들보다는 학부모 유권자 표가 중요한 '높으신 분들'께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게임산업 전체에 규제의 올가미가 씌워지기 시작했다. '셧다운제'로 미래 고객들의 게임 유입을 차단하고,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10년이 넘도록 정치권에서 게임은 지원보다는 때려 잡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중 코로나 19 팬데믹이 터졌다. 세계적으로 야외 활동이 제한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게임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 게임산업 역시 외형적 급성장을 이뤘다. 펜데믹 이전 2019년 66억5778만 달러(약 8조 9000억원)였던 게임산업 수출액은 지난해 85억9984만 달러(약 11조5700억원)까지 약 29.1% 성장했다.


여기에 지난해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57.7%를 게임이 홀로 책임졌다. 음악은 23억8505만 달러(약 3조2100억원), 방송·영상은 13억4952만 달러(약 1조8200억원)다. 사실상 K-팝과 K-드라마 이전에 K-게임을 논해야 하는 상황이다.


돈 냄새가 풍기니 높으신 분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현 정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게임 정책 지원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으로 중소·인디게임 제작비 세액공제, 게임 전문 모태펀드 운용 등 금전 지원책을 제시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무총리 시절 펄어비스 '붉은사막' 500만장 판매를 축하하며 게임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말 게임업계에 볕 들 날이 왔을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2026년 세제개편안에서 게임 제작비 세액공제는 또 빠졌다.


사실 게임사도 일반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받을 수는 있다. 원칙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R&D 공제는 엔진과 인공지능(AI), 서버·네트워크 기술처럼 다른 프로젝트에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스토리와 세계관 작성, 캐릭터·배경 아트, 레벨 디자인, 사운드 제작, 외주비처럼 특정 게임을 완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공제 대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업계는 이런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해달라 호소해왔으나, 올해도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나마 앞선 정부들처럼 규제 확대를 천명한 게 아니라 단순히 약속만 지키지 않은 것이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임은 사람과 시간이 곧 원가인 산업이다. 수십~수백명의 개발자가 수년간 달라붙어도 출시 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실패하면 개발비 대부분이 그대로 손실로 남는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중견사는 장기 프로젝트를 접고 짧은 기간에 만들 수 있는 작품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진다.


산업 경쟁력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개발 경험과 인력, IP가 조금씩 부스러지며 퇴화한다. 업계가 요구한 세액공제는 성공한 기업에 상을 주는 제도라기보다 실패 가능성을 감수하고 다음 작품을 만들 여력을 남기는 '안전판'을 만들어달란 취지였다.


그런 와중에 정부는 영상과 웹툰에는 제작비용 세액공제의 점감구간을 신설하면서 게임이 차별 받는 서자임을 절감케 해줬다. 돈은 더 벌어오는데, 취급은 뒷전인 서러운 신세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해외는 다르게 움직인다. 영국은 적격 게임 제작비에 34%의 지출세액공제를, 프랑스는 개발비의 30%를 세액공제로 인정한다. 호주도 적격 개발비의 30%를 돌려주는 게임 전용 제도를 운영한다.


지난달 독일 게임스컴에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연방대통령이 국가원수로는 처음 현장을 찾았다. 독일 정부는 2024년 이후 연방 게임산업 지원금을 두 배 이상 늘렸다고 공개했다. 게임을 문화뿐 아니라 AI, 그래픽, 네트워크와 실시간 렌더링 기술이 모이는 디지털 산업으로 보는 것이다.


후보 시절 게임산업 육성을 공언한 이 대통령은 지난해 당선 이후 열린 국내 최대 게임 축제 지스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행사에는 문체부 장관은 커녕 국장급마저 코빼기도 안 비쳤다. 마침 올해는 지스타가 국내 대표 게임쇼라는 말이 무색하게 참가사 확보에 실패하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과연 올해는 '높으신 분'들이 '친림'하시어 분위기 반전에 기여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줄 것인가.


업계가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게임을 최대 콘텐츠 수출 산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 그 산업의 체급에 맞게 대우해 달라는 것. 게임 인구 감소와 중국의 게임 공세로 고사 직전까지 몰린 시장이다. 무관심의 끝에는 어느덧 '공공의 적' 역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진 산업만 남을뿐이다.

박상준 기자 (psj9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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