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새 피부”…30회 맞은 BIFAN, AI·숏폼으로 재단장 [D:현장]
입력 2026.06.09 13:04
수정 2026.06.09 13:05
7월 2일 개막…50개국 321편 상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가 30회를 맞아 변화를 택했다. 장르영화제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되 AI 영화, XR, 숏폼 등 새로운 영상 매체를 적극적으로 품으며 ‘새 시대의 영화제’를 선언했다. 올해 슬로건은 ‘뉴 에라, 뉴 스킨’(New Era, New Skin)이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장미희 조직위원장, 신철 집행위원장, 송승환 개막식 총감독을 비롯해 주요 프로그래머들이 참석해 올해 영화제 방향과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장미희 조직위원장은 BIFAN의 30년을 ‘경계를 허무는 시간’으로 정의했다. 그는 “BIFAN은 주류가 외면한 다른 것에 대한 감각을 포용하고, 금기시된 이성을 흔들고, 낯설고 기이한 것들이 지닌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탐색해왔다”며 “주류와 비주류, 현실과 상상, 전통과 혁신의 경계를 허무는 태도야말로 비판의 독보적인 정체성이자 우리가 정의하는 판타스틱의 미학”이라고 말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를 ‘두 번째 특이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천영화제가 출범한 1997년 당시에는 첫 번째 특이점이 있었다”며 영화 사전 심의 위헌 판결에 따른 검열 철폐, 콘텐츠 산업에 대한 국가적 각성, 디지털 기술의 등장,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 철학을 당시 한국 영화 성장의 동력으로 꼽았다.
신 위원장은 “30년이 흐른 2026년, 우리는 두 번째 특이점을 마주하고 있다”며 “스트리밍 서비스의 득세는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극장 중심 산업 구조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극장은 이제 단순한 관람을 넘어 새로운 체험의 공간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는 단순한 특수효과 도구를 넘어 상상력의 한계를 해방시키는 창작 파트너이자 영상 산업의 강력한 보조 엔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제30회 비판은 이 거대한 폭풍을 방관하거나 과거를 회복하는 데 머물지 않겠다”며 “스트리밍과 극장이 융합되는 새로운 생태계, AI 시대의 기술과 창작자를 가장 먼저 발굴하고 연결하는 최전선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개막식과 시상식은 송승환 총감독이 연출한다. 송 총감독은 “올해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AI의 공존이 가능할지에 대한 질문을 공연을 통해 던질 예정”이라며 “개막식이라는 프로토콜도 30년이 된 만큼 MC 멘트, 출연자 동선, 스피치 시간, 조명과 음향까지 디테일에 신경 써 국제영화제에 걸맞은 개막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BIFAN은 50개국 321편을 상영한다. 30회를 맞아 섹션 체계도 개편했다. 경쟁 부문은 부천 초이스 월드·코리안·AI 영화로 세분화됐고, 장르 거장과 세계적 스타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섹션 ‘시그니처’가 신설됐다. 비경쟁 부문에는 장르 영화의 강렬한 에너지를 선보이는 ‘비 익스트림’, 장르의 새로운 흐름과 확장성을 조망하는 ‘판타스케이프’가 마련됐다.
개막작은 원화평 감독의 ‘표인: 풍기대막’이다. 이정엽 프로그래머는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압도적인 액션과 장대한 스케일, 이연걸 배우의 반가운 귀환이 더해진 작품”이라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제30회 비판의 시작을 알리기에 적합하다”고 소개했다.
아시아 장르영화의 흐름에서는 인도네시아 호러의 약진이 주목된다. 이 프로그래머는 “지역 특유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뛰어난 완성도로 현재 아시아 장르영화의 역동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를 원작으로 한 아시아권 리메이크작들도 올해 영화제에서 소개된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한국 영화 프로그램도 확대됐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한국 영화의 가장 큰 변화는 상영 편수 확장”이라며 “경쟁 부문도 8편에서 10편으로 늘었고, 더 넓은 스펙트럼의 장르영화를 상영해 신인 감독들을 위한 등용문 역할을 강화하려 했다”고 말했다. 30회를 맞아 ‘아시아 장르 영화 99’ 프로젝트도 시작된다. 올해는 한국 장르영화 33편 특별전과 포럼, 전시 ‘장르 페르소나’가 함께 진행된다.
AI 영화 부문 역시 한층 커졌다. 김관희 프로그래머는 “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영화적 완성도가 많이 향상됐고 출품 편수도 늘었다”며 “올해는 AI 영화 비경쟁 부문도 신설했고, 장편 AI 영화 두 편도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장편 러닝타임과 스토리라인을 갖춘 AI 작품이 등장한 것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XR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도 확장된다. 박보람 프로그래머는 올해 프로그램을 ‘코스믹 시네마’ 콘셉트로 소개하며 “부천시청 잔디광장, 시청 로비, 부천천문과학관, 부천아트벙커B39까지 도심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영화관처럼 구축했다”고 말했다. 관객은 공간을 이동하며 VR, AR, 몰입형 미디어를 체험하게 된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시네마틱 VR의 개척자로 불리는 프랑수아 보티에 회고전도 마련된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프랑스 SF 기획전도 마련된다. 김관희 프로그래머는 “프랑스 SF 영화의 중심에는 시간이 있다고 봤다”며 “시간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프랑스적 사유와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숏폼 기획전도 눈에 띈다. 이정엽 프로그래머는 “2021년 틱톡과 협업해 숏폼을 붐업시키려는 기획을 했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세로형 영상을 많이 보는 시대가 아니었다”며 “올해는 숏폼을 즐기는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형석 프로그래머 역시 “OTT를 넘어 숏폼까지 영상 창작 산업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영화계에서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희 프로그래머는 섹션명 개편에 대해 “과거에는 ‘아드레날린’, ‘메탈 누아르’ 등 키워드 중심의 섹션명이 있었지만,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자기반성이 있었다”며 “30회를 맞아 섹션 수를 정리하고 이름도 더 콤팩트하고 직관적으로 바꾸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BIFAN이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려는 태도의 반영”이라고 덧붙였다.
30회를 맞은 BIFAN은 장르영화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형식과 기술, 관객 경험을 넓히려 한다. 고전 장르영화부터 AI 장편, 숏폼, XR, 프랑스 SF까지 품은 BIFAN은 ‘새 시대의 새 피부’를 입고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