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나토 포병 공백 7조원"…美 군사학술지, 기준값에 'K9' 선택
입력 2026.05.20 11:00
수정 2026.05.20 11:08
미 육군대학원 논문 "교리 실패가 만든 공백"
유럽 재건 비용 산정에 K9 단가 기준 직접 인용
EU 방산 블록화 강화 변수…현지화 과제 관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한화에어로스페이스
독일·영국·캐나다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3개국이 미국 9·11 테러 이후 포병 전력을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예산 부족이 아니라 미국식 원정·대반란전 교리 전환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이 공백을 메우는 비용을 계산한 미국 육군대학원 논문은 포병 기준 단가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계약 가격을 활용했다.
"소련 탱크는 끝났다"…유럽은 왜 화력을 줄였나
미국 육군대학원(USAWC) 계간지 '파라미터스(Parameters)' 2026년 봄호에 실린 이 논문은 킹스칼리지런던 국방연구학과 벤체 네메스 부교수가 작성했다. 논문은 독일·영국·캐나다 3개국의 1990년·2001년·2022년 병력 대비 중장비 보유 비율을 추적했다.
미국 9·11 테러 이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나토 동맹국들에 더 기동성 있는 군 구조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소련 탱크를 막기 위한 거대한 군대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논리였다. 후임인 로버트 게이츠 장관도 "유럽 나토군 대부분은 대반란 작전 훈련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풀다 갭을 위해 훈련받았다"며 변화를 압박했다. 2006년 미 육군 야전교범 FM 3-24로 공식화된 대반란전(COIN) 교리는 '섬멸'이 아닌 '통치 역량 경쟁'을 작전 목표로 삼았고, 유럽 군대는 이에 맞춰 재편했다.
독일의 포병은 2001년 1029문에서 2022년 162문으로 줄었다. 영국은 309문에서 124문으로, 캐나다는 58문에서 37문으로 감소했다. 3개국이 2001년 비율을 유지했다면 독일 142문, 영국 98문, 캐나다 33문 등 총 273문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게 논문의 계산이다.
전차 손실도 컸다. 독일은 2521대에서 284대로, 영국은 636대에서 227대로 줄었다. 교리 전환으로 잃은 전차는 3개국 합산 747대에 달한다.
논문은 킬경제연구소·브뤼헐 싱크탱크의 공동 분석을 인용해 발트해 방어에 필요한 최소 억지력을 제시했다. 전차 1400대, 보병전투차(IFV) 2000대, 포병 700문이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육군의 해당 전력을 모두 합쳐도 이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게 이 분석의 결론이다.
3개국의 실제 보유량은 전차 593대, 포병 323문에 불과하다. 2001년 비율을 유지했다면 전차 1340대, 포병 596문으로 기준치에 근접할 수 있었다.
미 육군대학원이 K9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
논문은 재건 비용을 산출하면서 실제 조달 계약 세 건을 기준 단가로 활용했다. 전차는 독일의 레오파르트2A8 계약(대당 약 2800만유로), IFV는 덴마크의 CV90 계약(대당 약 1160만 유로), 포병은 폴란드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체결한 K9A1 자주포 계약(대당 약 1090만 유로)이다.
폴란드의 K9A1 계약은 2022년 8월 체결됐다. 212문에 23억2000만 유로(당시 약 3조4000억원) 규모로, 탄약·훈련·군수지원·기술이전을 포함한 금액이다. 미 육군대학원 논문이 유럽 재무장 비용 산정의 기준 사례로 K9 계약 가격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논문 기준 부족 포병 전력 377문을 채우는 데 드는 비용은 약 41억 유로(약 7조원)다. K9은 이미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K9의 155mm 자주포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고 수출 누계액은 14조원을 돌파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오른쪽)가 올리 루투 핀란드 국방부 자원정책국장(왼쪽)에게 기념품을 전달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족한 건 인력이 아니라 장갑과 화력"
유럽의 K9 수요는 동유럽을 넘어 서유럽으로 번지고 있다.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Indra)는 지난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9 기반 자주포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45억5000만 유로(약 8조원) 규모의 스페인 포병 현대화 사업으로, 128문의 추적형 자주포를 포함한 총 280대의 차량을 스페인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핀란드도 지난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9 112문 추가 계약을 정식 체결해 보유량을 208문으로 늘렸다. 터키·폴란드에 이어 나토 내 세 번째로 K9 200문 이상 운용 국가가 됐다. 한 번 도입한 국가가 반복 도입하는 K9의 특성이 유럽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변수도 있다. 유럽연합(EU)은 역내 무기 구매 비중을 작년 기준 20%에서 2035년 6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럽 방산 블록화가 심화될수록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스페인 사례처럼 현지 기업과의 합작·기술이전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변화는 유럽의 재무장이 산업 전략의 문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논문을 쓴 네메스 교수는 이 흐름의 출발점을 교리 선택에서 찾는다.
다만 논문은 과거 결정자들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당시 많은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을 나토에 붙잡아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국 교리를 수용했다. 그러나 그 장기적 대가가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는 게 논문의 시각이다.
네메스 교수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공백은 인력이 아니라 장갑과 화력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