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판 척화파의 종말
입력 2026.04.03 07:07
수정 2026.04.03 08:21
주전론이 지배적인 이란 지도부, 병자호란때 조선 판박이
이념적 경직성 극복 못하면 3000년 역사 시험대에 오를것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테헤란 시내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
조선 중기 병자호란 당시 조선 조정은 한양 도성을 청 태종 홍타이지가 이끄는 청나라군에 넘겨주고 남한산성에 갇혔다. 남한산성 내 군사는 1만 3000명에 식량은 50일 치도 되지 않았다. 강화도마저 이미 함락되었다. 조선은 절대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종(李倧·참고로 ‘종(倧)’은 ‘상고시대의 신인(神人)’이라는 뜻이다.) 속칭 인조의 조정은 수적으로나 목소리 크기에서 주전파(척화파)가 압도했다. 논거는 객관적인 군사력과 전황이 아니라, 서인 세력의 생존 전략이었다.
이종 반란, 속칭 仁祖反正(인조반정)의 핵심 명분은 광해군의 폐모살제(廢母殺弟)와 명청 중립외교를 비판하고 의리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명나라를 섬기고 후금(청)을 오랑캐로 배척하는 것이 서인 정권의 존재 이유였다. 청과 타협하면, 광해군을 몰아낸 논리적 근거가 사라지고, 서인 정권의 ‘자기부정’이 되었다.
김상헌과 삼학사 등은 유교적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며 “죽더라도 오랑캐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대간(사헌부, 사간원)과 산림 선비의 여론을 장악해, 현실적인 타협안을 내면 바로 ‘역적’으로 몰렸다.
척화파는 ‘오랑캐에게 항복한 왕을 모시는 신하’라는 역사적 오명이 두려웠다. 극소수 주화파를 이끄는 최명길은, 냉혹한 현실을 인지하고 “내 머리가 깨질지언정 백성을 살려야 한다”며 목숨을 걸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큰 의리”라고 주장했다.
이란판 척화파의 명분
뜬금없이 병자호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란의 내부 사정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시공을 초월해 항상 전쟁 중에는 주전파가 애국자로 칭송받고 협상파는 배신자로 몰린다.
이란의 현실로서는 미국과 휴전에 합의하고 일단 살아남아야 할 텐데도 주전론이 지배적이다. 이란 지도부는 실제 턱밑까지 차오른 군사적·경제적 붕괴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생존을 위한 후퇴’를 애써 외면한다.
조선의 병자호란 때와 완전 판박이다.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객관적인 전력 차이보다 ‘내부 명분과 정권의 정당성’이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현상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비극이다. 일단 살아 남아야 다음이 있는데 말이다.
이란의 신정 체제에서 ‘반미·반이스라엘’은 이란 신정체제의 근간이다. 이란 지도부로서는 미국과의 타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데도 이란 강경파는 미국과의 타협을 ‘이슬람 혁명 정신의 부정’이자 ‘체제 붕괴’로 받아들인다.
미국·이스라엘과 싸우다 죽으면 ‘순교’지만, 굴욕적 생존은 지도부의 권위를 완전히 상실케 하니 선택지가 될 수 없다. 현재 이란 내에서도 실용주의적 목소리는 혁명수비대(IRGC) 강경파에 눌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 척화파들은 ‘전사’=‘순교’ 즉 종교적·정치적 정당성의 완성으로 선전한다. 패배보다 ‘혁명 정신의 변절’을 더 큰 위기로 본다. 이념적으로 너무나 경직돼 있다.
지난달 21일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이란 수도 테헤란 건물 잔해 옆을 헬멧을 쓴 어머니와 아들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의 전략적 실패
병자호란 당시 조선과 현재의 이란의 차이는 단 하나다. 조선은 청나라 기병이 한양을 점령하고 국왕이 산성에 갇혀 항전이 불가능했다. 이란은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못하니 결사 항전을 외친다.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지상전의 늪에 빠지길 꺼린다는 미국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성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이란은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함으로써 전 세계를 자신의 ‘경제적 남한산성’에 가두려 한다. 죽기 전에 세계 경제(유가 급등·공급망 마비)를 먼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을 부르짖는다. 앞서 이란은 걸프 연안국의 석유, 가스 인프라를 무차별 공격하면서 공멸이라는 회심의 카드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이란의 전략은 세 가지 점에서 미국, 트럼프의 의도에 휘말리는 것이다.
첫째, 걸프 지역의 석유 인프라가 파괴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일본, 한국, 인도와 유럽 등 미국 동맹도 타격을 받지만 걸프 연안의 산유국들, 이란 스스로도 원유 수출을 못해 타격이 크다. 이란은 재정이 고갈되고 주변국으로부터 고립된다.
둘째, 전쟁이 장기화되면 이란의 값싼 석유에 의존하는 중국 제조업 전체가 큰 타격을 받는다. 미국은 중국의 동맹 이란 석유를 봉쇄함으로써 중국을 제어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셋째, 중동 석유가 공급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는 미국과 미국이 직접 통제하는 석유과 가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전쟁 이후 미국의 에너지 패권 장악률은 90%를 넘길 것이라 한다.
미국은 지난해 관세 협상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으로부터 미국의 에너지 산업에 9천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 자금으로 에너지 산업 인프라를 구축한 뒤, 현재 유가보다 훨씬 가격으로 일본, 한국, 중국, 대만, 인도에 공급할 것이다. 미국만 배불리는 결과다.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큰 의리다
병자호란의 비극은 ‘현실적 군사 역량’보다 ‘이념적 가치’가 국가 의사결정을 압도할 때 발생하는 참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청음 김상헌-사계 김장생-우암 송시열이 영도하는 서인-노론 정권이 집권하면서 명분론과 예송 논쟁에 집착했다.
김상헌 형제와 그 손자, 증손들이 얼마나 청렴결백했는지는 잘 안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어두운 그들의 명분론은 조선 말 외척의 세도정치로, 조선의 패망으로 이어졌다. 한때는 택도 없는 북벌론까지 등장했다.
만일 송시열류 북벌론자의 주장대로 북벌을 시도했다면 오늘날 세계 지도에서 대한민국은 완전히 지워졌을 것이다. 정조 이산의 개혁 정치와 실학파의 집권으로 조선의 운명에 잠깐 햇볕이 들기도 했지만, 그 기간은 너무나 짧았다.
“일단 살아남아야 다음이 있다” 국가와 기업 경영의 제1원칙이다. 하지만 역사 속의 많은 정권이 ‘국가의 생존’보다 ‘집권 세력의 명분’을 우선시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곤 했다. 고대 동방 사회 최강대국 이집트가 현대에 이르러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훈을 이란 지도부는 되새겨야 한다.
이란은 고대 사회 이래 근 3000년 이상을 이어온 세계 제국이다. 이란판 척화파들이 잠깐의 굴욕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들이 이념적 경직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페르샤 대제국의 후예들 역시 비슷한 역사적 시험대에 서게 될 것이다. “나라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큰 의리다.”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