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숨 고르기' 들어갔다…"가격 꺾였지만 수요는 묶였다"
입력 2026.04.01 11:43
수정 2026.04.01 11:43
중동 리스크·빅테크 투자 조정에 D램 현물가 하락
장기계약·라인 선점 등…메모리 '수주형 구조' 전환
"삼성·SK하닉에 영향 제한적…일시 조정 가능성 높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미지. ⓒ연합뉴스
인공지능(AI)발 수요 급증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D램 가격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 장기화로 완제품 업체들의 재고 전략이 보수적으로 전환된 데다,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인프라 투자 속도 조절까지 겹치며 D램 현물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조정은 업황 둔화라기보다 과열된 수요의 정상화 성격이 강해, 메모리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일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 최첨단 제품인 16GB(기가바이트) 현물가격은 37.5달러로 한 달 전보다 5.2% 하락했다. 지난 19일 39.9달러를 기록한 이후 열흘 넘게 상승 없이 하락 흐름을 이어간 것이다. D램 현물가격이 열흘가량 하락세를 지속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이다.
D램 가격 상승을 주도해온 DDR4 역시 지난 2월 상승세 둔화 후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DDR4 16Gb 제품 가격은 지난달 말 79.9달러를 찍고, 최근 74.7달러로 내려앉았다. 한 달 사이 6.5% 하락했다. 최첨단 제품에서 연이은 하락 전환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유통시장에서 가격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거래가 위축됐고, 이에 따른 단기 조정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장기화되며 완제품 업체들이 재고 확보에 신중한 태도로 돌아선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는 일부 업체들이 재고를 선제적으로 확보한 점이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 PC·스마트폰 등 전방 산업 수요 둔화까지 겹치며 상승 동력이 약화되는 모습이다.
여기에 AI 투자 기조 변화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간 메모리 시장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초과 수요'가 가격을 밀어 올리는 구조였지만, 최근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기 주도권 확보를 위한 공격적 지출이 점차 효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과열됐던 수요가 정상화 국면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주목할 점은 가격이 꺾이는 와중에도 메모리 시장의 거래 구조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요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고객사들은 단순 구매를 넘어 장기공급계약(LTA), 선급금 지급, 나아가 생산라인 선점까지 나서며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존 1년 단위 계약에서 벗어나 3~5년 이상 장기 계약이 확산되고, 일부는 지분 투자 형태로 생산능력을 사실상 묶어두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가격 변동에 따라 물량을 조절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공급 자체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수주형 구조'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 같은 구조 변화를 오히려 '산업 구조 재편'의 기회로 삼는 모양새다. 과거 업황에 따라 실적이 널뛰던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공급계약(LTA)과 선급금 확보를 통해 물량을 선제적으로 묶어두는 '수주형 산업'으로 체질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급금과 장기 계약 확대는 설비 투자 부담을 분산시키고, 안정적인 가동률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사실상 '락인(lock-in)' 효과로 메모리 업계의 펀더멘탈은 과거 하락기보다 훨씬 견고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메모리 시장은 성장 속도는 다소 둔화되지만, 수익 구조는 한층 견고해지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LTA 등 계약 구조는 서로의 니즈가 맞아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상황으로 봐도 좋다"며 "장기적으로 일정하게 수익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메모리 업계의 기초 체력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소비자 시장에서 다운스트림 업체들의 선제적 재고 축적에 따른 재고 소화가 나타나면서 과열된 D램 스팟 가격에 대한 정상화 및 상승 속도 조절이 나타나고 있지만, 메모리 시장의 실질적인 수익성과 실적을 결정하는 것은 스팟이 아니라 계약 가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메모리 업체 평균판매단가(ASP) 기준 올해 4분기까지 계약 가격 상승 사이클 지속이 전망되는 바, 업황과 실적 흐름은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