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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적의 난 – 고려판 스파르타쿠스 [정명섭의 실패한 쿠테타㉜]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24 14:00
수정 2026.03.24 14:00

경인년과 계사년 이래로 높은 관직도 천예에서 많이 나왔으니, 장상에 어찌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면서 채찍 아래에서 고통만 당하겠는가?


조선시대 노비문서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위의 내용은 고려의 신종이 즉위한 서기 1198년, 최충헌의 가노인 만적이 북산에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다가 주변의 노비들에게 한 얘기다. 경인년은 서기 1170년으로 무신들이 보현원에서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 무신들의 반란이 일어난 해였다. 계사년은 서기 1173년으로 김보당의 난이 일어난 시기였다. 천대받은 무신들이 문신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임금인 의종까지 죽이던 시기였다. 하루 아침에 세상이 뒤바뀐 것을 이제 노비들도 깨달은 것이다. 특히, 자신의 주인인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본 만적은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노비들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는 말을 했다. 다른 노비들이 삽시간에 호응했던 것으로 봐서는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계획을 꾸민다. 일단 흥국사에 모여서 누런 종이 수천 장에 ‘丁’자를 적어서 옷의 앞뒤로 붙여서 같은 편을 확인한 후에 흥국사에서 격구장까지 모여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면 궁궐 안의 환관들이 호응하고 관청에 속한 노비들이 궁궐 안의 나쁜 놈들을 죽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기세를 타서 도성안에서 최충헌을 비롯한 각자의 주인들을 죽이고 노비문서를 모두 태운 다음에 천민들을 해방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거사가 성공하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계획의 마지막이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계획으로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거기다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어제까지 노비였던 그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적을 비롯한 노비들은 똑똑히 지켜봤을 것이다. 문신들에게 천대받은 자신들의 주인이 어떻게 세상을 뒤집어 버렸는지 말이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권력을 잡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도 지켜봤을 것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만적의 호기롭고 허황된 말은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엄청난 호응을 얻고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정말 약속한 날짜에 수 백명의 노비들이 흥국사에 모인 것이다. 흥국사는 개경의 궁궐인 만월대 근처에 있는 사찰이며 격구장은 아마도 환선길이 반란을 일으켜서 왕건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도망쳤다가 포위당해서 죽임을 당한 곳으로 보인다. 수백명이나 모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지만 흥국사에서 격구장까지 빼곡하게 채우기에는 부족한 숫자였다. 만적은 할 수 없이 거사를 며칠 미루기로 하고 비밀을 지키기를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거사가 한번 미뤄진 것을 본 노비들 중에 배신자가 나왔다. 바로 율학박사 한충유의 노비 순정이었다. 그의 고발을 들은 최충헌은 당장 병사들을 풀어서 만적을 비롯한 가담자들을 체포했다.


체포된 노비들은 무려 100여명으로 최충헌은 이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서 죽였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물 속에 사람을 던져서 죽이는 방식으로 처형을 했는데 피를 보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라서 그런 것 같다. 만적을 비롯한 가담자들은 모두 물 속에 던져지면서 반란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가담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나머지는 추적하거나 체포하지 않고 넘어갔다. 당시에는 최충헌을 비롯해서 모두 노비 주제에 꿈이 거창했다고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거사일에 수 백명이나 모였고, 주요 가담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형하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노비들이 만적의 주장에 호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종종 가혹하고 혹독한 취급을 받으며 사람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고려와 조선시대 노비들도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동물 취급을 받았다. 그런 노비들이 감히 주인을 해치고 나라를 뒤엎으려고 했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생각을 해도 무리는 아니다. 가담자들을 전부 추적해서 처벌하지 않은 이유 중에는 아마 누군가의 재산이라는 생각도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적의 꿈은 어리석었고,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을까? 만적의 난은 고려사 최충헌 열전에 비중있게 실려있다. 모의와 진행과정도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있는데 아마도 만적이나 가담자를 심문해서 알아낸 사실이었을 것이다. 만적과 가담자들은 물 속으로 잠겨버렸지만 역사는 그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신분제 사회가 무너지고 모든 차별이 사라진 지금와서는 만적의 행동은 어리석은 짓이 아니라 위대한 저항이었다. 검투사 노예 스파르타쿠스는 반란을 일으켜서 로마를 공포에 떨게 만들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날 그 누구도 스파르타쿠스가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하지 않는다. 만적 역시 같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정명섭 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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