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산다는 것"…이기혁 감독이 '메소드연기'에 담은 질문 [D:인터뷰]
입력 2026.03.22 14:02
수정 2026.03.22 14:02
'메소드연기', 20년 우정이 빚어낸 가장 솔직한 이야기
18일 개봉
배우로 활동해온 이기혁 감독은 오랜 시간 영화 연출에 대한 꿈을 품어왔다. 그는 배우 이동휘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단편영화 ‘출국심사’(2019)와 ‘메소드연기’(2020)를 연출하며 연출자로서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후 단편 ‘메소드연기’를 기반으로 서사를 확장해 동명의 장편 영화 ‘메소드연기’를 완성했다.
ⓒ런업컴퍼니·바이포엠스튜디오
작품은 코미디 영화 한 편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배우 이동휘가 정극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업계와 대중은 여전히 그를 기존 이미지 안에 가두고, 그 간극 속에서 그는 점점 극단적인 방식의 연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기혁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메소드연기’라는 개념을 단순한 연기 기법이 아닌, 배우가 처한 현실과 선택의 문제로 키운다. 배우로서의 경험과 감독으로서의 시선을 동시에 투영한 ‘메소드연기’는, 그의 연출자로서의 방향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첫 장편이다.
이기혁 감독은 배우 이동휘와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를 바탕으로, 배우로서의 고민과 현장에서 체득한 감각,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까지 캐릭터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이동휘가 실제 배우의 궤적을 닮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감독 자신의 내면이 교차된 인물로 그려진 이유다.
“저희는 20년 지기 친구라 서로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고민도 자주 공유합니다. 누구보다 이동휘 배우가 가진 고민을 잘 알기에, 그 안에 저의 고민들을 함께 투영시켰습니다.”
이기혁 감독은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밀도를 넓히는 데 집중했다. 특정 직업군의 고민에 머물지 않고, 관객이 자신의 삶과 연결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한 결과다. 이에 따라 서사는 보다 일상적인 관계와 감정으로 넓어졌다.
“많은 분이 공감하며 보실 수 있는 설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가족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어느 가정이든 비슷한 지점이 많기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했죠. 또한 일상 속에서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혹은 보여줘야만 하는 모습으로 ‘메소드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을 배치해, 많은 분이 공감할 여지를 더했습니다.”
이기혁 감독의 관심은 결국 ‘나답게 산다는 것’에 닿아 있다.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고민이다. 역할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직업적 특성 속에서, 자신과는 결이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질문이 쌓였다.
“배우 시절, 회사의 권유로 원치 않는 작품을 하거나 제 실제 모습과 동떨어진 역할을 맡았을 때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요즘 들어 ‘나답게 사는 게 뭔가’라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사회나 가족 안에서 우리는 대표나 엄마 같은 다양한 배역을 맡아 버티며 살아가니까요. 혼자 있을 때의 온전한 모습이 진짜 나라고 본다면, 인생의 ‘백스테이지’와 ‘온 스테이지’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양면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연출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한때 연기 활동과 감독 사이에서 어느 쪽이 제 결에 맞는지 고민했습니다. 배우는 편집에 대한 선택권이 없기에 결과물을 보고 상처받을 때도 있었어요. 반면 연출은 제가 마음에 들 때까지 다듬어서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 제 성격과 맞더라고요. 배우보다는 연출 쪽이 저에게 더 어울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배우 출신 감독을 향한 시선과도 마주해야 했다. 선입견과 평가를 의식하면서도, 이를 통해 스스로를 입증하고나 하는 의지가 작업의 또 다른 동력이 됐다.
“‘배우 출신이 얼마나 하겠어’라는 시선도 있었고, 악평도 많았습니다. 그런 부분을 한편으로는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또 감독과 배우로서의 저를 완전히 분리하고 싶어 제 영화에 직접 출연하지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동휘와의 관계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나오며 쌓아온 신뢰 위에 놓여 있다. 그는 현장에서 마주한 이동휘의 얼굴에서, 이번 작품을 위해 감당해낸 선택과 용기를 읽어냈다고 전했다.
“이동휘 씨는 정말 똑똑해요. 단편의 가공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본인으로 출연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과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관객이 믿게끔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이 고민해 왔더라고요. 톤앤매너를 최대한 절제하고 담백하게 가길 원했던 제 의도대로, 실제 이동휘처럼 느껴지게끔 연기해 주는 모습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놀랐습니다.”
이동휘가 든든한 파트너였다면, 윤경호는 이기혁 감독에게 배우 시절 가장 외로웠던 순간 따뜻한 위로를 건넨 선배다. 이기혁 감독은 그때의 기억으로 동태 역을 맡길 배우로 윤경호를 떠올렸다.
“드라마 ‘자백’ 출연 당시, 고립된 기분으로 외로운 현장을 견디고 있을 때 경호 선배님이 제 힘듦을 캐치하고 어깨를 토닥여주셨습니다. 그 순간 눈물이 터질 정도로 위로가 됐죠. 나중에 감사 연락을 드렸더니 ‘도자기를 빚는 심정으로 버텨라’라는 장문의 응원을 주셨는데 그 잔상이 오래 남았어요다. 시나리오 속 동태는 우스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캐릭터인데 그 따뜻함과 무게감을 표현할 분으로 경호 형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수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앞선 인연들이 오랜 신뢰와 관계를 기반으로 했다면, 강찬희는 감독이 작품을 위해 공들여 찾아냈다. 이기혁 감독은 화려한 인기 스타의 이면에 외로움과 결핍을 숨긴 정태민 역을 두고, 강찬희의 얼굴에서 묘한 이면성을 포착했다.
“정태민은 인기 스타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면에는 외로움과 옹색함이 있는, 미워할 수 없는 빌런입니다. 강찬희 씨의 작품들을 보며 그 얼굴에서 유약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발견했고, 이 캐릭터를 잘 소화할 거라 확신했습니다. 찬희 씨는 먼저 대화를 요청할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 모든 신을 미리 연습하고 촬영해 볼 정도로 성실했습니다. 특히 세그웨이를 완벽히 익혀와 촬영 시간을 단축해 주는 등 긍정적인 에너지가 큰 기억에 남습니다.”
ⓒ런업컴퍼니·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의 후반부, 감정을 쏟아내듯 이어지는 이동휘의 롱테이크 장면은 배우의 밀도 높은 연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기혁 감독은 해당 장면을 통해 인물이 쌓아온 감정의 결을 한 번에 터뜨리는 데 집중했다
“새벽 촬영이라 해가 뜨기 직전의 촉박한 상황에서 단 두 테이크 만에 찍었습니다. 시간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었죠. 당시 이동휘 배우의 얼굴을 최대한 보여주지 않으려 조명을 어둡게 썼습니다. 관객들이 편견 없이 오직 연기 자체로만 평가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온 인물들 사이에서 성장한 뒤 보여주는 연기였기에, 큰 틀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배우의 해석에 맡겼습니다.”
이기혁 감독은 이동휘와의 협업에 대해 앞으로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당연히 있죠. 저는 코미디 잘하는 배우에 대한 리스펙이 기본적으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코미디를 잘하면 정극을 기본적으로 잘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단편을 찍을 때 노 개런티로 출연해 주셔서 제작비를 촬영이나 장비에 더 쓸 수 있었고, 그런 감사한 마음과 마음의 빚이 있어요. 배우로서도 정말 스펙트럼이 넓고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서, 첫 장편을 하게 되면 이동휘 씨와 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어요. 다음 작품에서도 주연이든 특별 출연이든 기회가 닿는다면 언제든지 함께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연출 방향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넓은 공감으로 이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하셨듯이, 솔직하게 제 얘기를 하고 싶어요. 결국에는 제가 느끼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거라고 저는 믿거든요. 그래서 솔직하고 재미있는 영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감정을 느끼고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