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는 멀고 주식 앱은 가깝다 – K컬처 글로벌 시대, 한국의 낯선 무지 [김희선의 글로벌 K컬처 이야기⑮]
입력 2026.03.06 14:02
수정 2026.03.06 14:02
전쟁 참화 다루는 기사에 "북한 혼내주자" "주식 어떡하냐" 댓글 반응
한국, 세계를 빠르게 소비하지만 이해하는데 서툴어
테헤란의 하늘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주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인 ‘거대한 분노(Epic Fury)’와 ‘포효하는 사자(Roaring Lion)’ 작전은 이란의 심장부를 관통했습니다. 37년간 이란을 통치해 온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군 핵심 지도부 40여 명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이란은 즉각 보복을 선언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고, 전 세계 물동량의 4분의 1이 지나는 길목은 거대한 화약고가 됐습니다. 국제 유가는 요동치고 해상 물류 시장도 긴장에 들어갔습니다.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가 흔들릴 때 어떤 파장이 생기는지는 이미 여러 차례 역사 속에서 확인된 일입니다.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 이후 치솟는 연기 뒤로 해가 지고 있다. ⓒAP/뉴시스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K-브랜드를 제안하고 콘텐츠를 파는 제게 이 지역은 단순한 ‘시장’이 아닙니다. 종교와 정치가 실핏줄처럼 얽혀 있고, 수천 년의 역사적 기억이 오늘의 비즈니스 에티켓을 결정하는 복잡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마주하며 저는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전쟁의 참화와 복잡한 국제 정세의 함수를 다루는 기사 하단에는 서글픈 민낯들이 나열됩니다. “독재자 한 명 잘 죽였다”, “미국이 역시 형님이다”, “이참에 우리도 북한을 혼내 주자”는 식의 일차원적인 반응들입니다. 더 나아가 전쟁 속보를 접하며 “내 주식 포트폴리오는 어떡하나”, “기름값 오르기 전에 가득 채워야겠다”는 파편화된 경제적 계산이 담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중동 문제와 국제 정세, 그리고 현대 전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도가 얼마나 얕은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런 반응은 낯설면서도 어쩌면 익숙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전쟁을 텔레비전 뉴스나 영화 속 장면처럼 소비해 왔습니다. 국제 분쟁을 선과 악의 대결처럼 단순화하고, 복잡한 역사와 이해관계를 지워버린 채 사건의 표면만 바라보는 습관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권선징악의 드라마가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와 기억이 얽힌 거대한 구조입니다.
또한 원자재 자급률이 낮은 한국 같은 나라에 이 전쟁은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닙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와 LNG는 한국 산업의 중요한 동맥입니다. 그 통로가 흔들리면 물가와 환율, 산업 비용까지 연쇄적으로 움직입니다. 전쟁은 언제나 먼 뉴스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듭니다. 결국 우리에게 호르무즈 해협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스마트폰 속 주식 앱과 물가 그래프는 곧바로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이며 동시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의 가장 민감한 지정학적 교차점에 놓여 있습니다. 세계 질서의 균형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언제나 그 파장의 가까운 곳에 서 있습니다.
ⓒ구글지도 캡처
한국은 지금 제2의 한류로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우리의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며 한국적 감각에 열광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우리 시민사회의 글로벌 문해력은 아직 충분히 성숙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빠르게 소비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서툽니다. SNS와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의 콘텐츠를 동시에 접하지만 그 사회가 형성된 역사와 문명의 층위까지 함께 읽어내는 훈련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문화가 세계로 확장되는 속도에 비해 세계를 이해하는 감각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역사적 조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일민족 국가라는 인식 속에서 오래 살아왔고, 종교가 정치와 경제의 중심 변수로 작동하는 사회를 경험할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지정학적으로도 동북아 끝에 위치한 분단국가로 살아온 시간은 세계를 이해하는 감각을 조금 늦추어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콘텐츠가 팔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문명과 역사, 종교와 갈등의 맥락을 함께 이해하는 일입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제가 반복해서 확인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진짜 경쟁력이 되는 것은 제품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를 읽어내는 감각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종교가 정치보다 강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수백 년의 기억이 오늘의 선택을 결정합니다.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어진 브랜드와 콘텐츠는 잠시 소비될 수는 있어도 오래 존중받지는 못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단지 유가 그래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 연결 속에서 타인의 역사와 감정을 읽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의 가능성도 좁히게 됩니다.
지금 한국 문화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글로벌화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팔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넓은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는가로 완성됩니다. K컬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자부심이 아니라 세계의 복잡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선일지도 모릅니다.
ⓒ
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