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1호'가 쏘아 올린 신호탄…석유화학 '빅딜' 2호, 3호는 어디?
입력 2026.02.25 16:13
수정 2026.02.25 16:13
공급과잉 늪 빠진 석화업계, '정유-석화 통합'으로 생존 활로
정부, 2.1조원 패키지 지원... 여수·울산 등 후속 구조조정 압박 거세질 듯
(왼쪽부터)조남수 HD현대케미칼 대표,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송명준 HD현대오일뱅크 대표가 25일 서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열린 대산 1호 프로젝트의 신속이행을 위한 석유화학 사업재편승인기업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생존을 위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정부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대산 단지 통합을 '사업재편 1호'로 승인하며 2조원 규모의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이제 업계의 시선은 여수와 울산 등 후속 '빅딜'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의 증설 공세와 업황 악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이번 대산 모델이 구조조정의 이정표가 될지 주목된다.
2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산업경제장관회에서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이 제출한 사업재편계획서를 최종 승인하고 금융·세제·원가 등 2조1000억원 이상의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사업재편계획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대산 사업장을 분할한 후 현대케미칼과 합병해 NCC(나프타분해시설) 및 다운스트림 설비를 통합 운영한다. 이번 재편의 핵심은 롯데케미칼 대산 사업장을 분할해 현대케미칼과 합병함으로써 '정유에서 석유화학'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롯데케미칼은 110만t 규모의 NCC 가동을 중단하는 과감한 설비 감축을 단행한다.
이번 사업재편은 주주사들의 강력한 자구 노력이 뒷받침된다.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통합 신설법인에 총 1조2000억원 규모(각 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대케미칼의 지분구조는 기존 6대 4에서 5대 5로 조정된다. 향후 기업 간 합병 관련 계약체결 및 이사회 승인, 기업분할 및 합병절차 등을 거쳐, 통합법인 설립 절차를 완료할 계획이다.
대산 1호 사업재편계획 주요내용. ⓒ산업통상부
정부는 기업의 자구 노력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화답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신규 자금 및 영구채 전환 등 최대 2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실시하며, 기업 결합 심사 기간을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하는 등 제도적 특례도 마련했다. 특히 분산특구제도를 활용해 전기요금을 한전 대비 4~5% 저렴하게 적용하고, 원유·나프타 무관세 기간을 연장하는 등 연간 최대 1150억원의 원가 절감 효과를 지원할 방침이다.
이번 '대산 1호' 프로젝트의 공식 출범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우선 공급 과잉의 정점에 있는 여수와 울산 산단의 후속 재편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정부는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전국 NCC 설비의 약 18~25%에 해당하는 270만~370만t 감축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에 맞춰 국내 석유화학 기업 16곳이 여수·대산·울산을 중심으로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한 상태다. 업황 부진 속에서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재무 부담이 확대된 상황에서 설비 감축과 통합 운영을 통한 고정비 절감은 생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산단별 이해관계는 여전히 복잡한 변수다. 특히 울산 산단은 막바지 공정 중인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연산 180만t 규모) 가동을 앞두고 있어 긴장감이 높다. 기존 업체들이 설비를 줄이며 고통 분담에 나서는 상황에서 대규모 신규 물량이 유입되는 것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최신 설비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에쓰오일 측과 "전체적인 공급 총량을 줄여야 한다"는 기존 업체 간의 입장 차가 후속 재편의 최대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산 1호' 승인을 계기로 정부는 후속 프로젝트 사업재편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민관협의체를 통해 지난해 12월 제출된 프로젝트별 재편안을 신속히 보완하여 최종안 제출을 독려한다. 아울러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 시행령을 조속히 제정해 공동행위 예외 허용 및 인허가 간소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3월 중 '화학산업 생태계 포럼'을 발족해 구조조정에 따른 지역 고용 영향과 중소 협력사 피해 최소화 방안을 논의하며, 상반기 중 '화학산업 생태계 종합지원 대책'을 마련해 제도적 뒷받침을 완료할 예정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정부와 기업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노력한 결과 첫 번째 프로젝트가 무사히 항로에 오를 수 있었다"며 "정부는 대산 1호의 항해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순풍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대산 재편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설비 가동률 정상화와 고정비 부담 완화, 저가 수출 물량 축소 등을 통해 산업 전반의 수익 구조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통합법인 운영과 생산 구조 전환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올해 말 이후로 예상되는 만큼, 사업재편 성과가 경영 지표에 반영되는 시점은 2027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