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에 따라 탄 로봇, 왜 자연스럽지?"…용인세브란스병원의 AI 혁신[내일의 닥터]
입력 2026.02.09 06:00
수정 2026.02.09 06:00
용인세브란스, AI·로봇·자동화 기반 혁신 선도
안내·이송 로봇 등 10대의 의료 서비스 로봇 활동
“환자 안전을 핵심 가치로…유기적 연결 목표”
‘내일의 닥터’는 의료산업의 혁신 흐름을 읽습니다. AI·로봇·데이터가 바꾸는 병원 생태계,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기술·정책·시장 트렌드를 심층 분석합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이드 로봇.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이 자리는 로봇에게 양보해주세요.”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연세대 용인세브란스병원. 원내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자 바닥에 적힌 이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병리팀의 검체 이송을 맡은 로봇 ‘이송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과 함께 로봇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는 풍경이 병원에서는 이상하지 않다는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향하자, 이번에는 안내 로봇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 위치를 묻는 환자와 보호자 곁으로 다가가 길을 안내하고,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병원에서는 로봇이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병원의 일상을 함께 만드는 구성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을 직접 찾아 병원이 지향하는 미래 전략에 대해 살펴봤다.
로봇이 들어온 자리, 사람이 빠지지 않았다
(맨 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검체 이송 로봇 '이송이'. 전용 엘리베이터 안에는 "이 자리는 로봇에게 양보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2020년 개원한 용인세브란스병원은 개원 초부터 ‘디지털 혁신 기반 스마트병원’을 표방해 왔다. 병원 전체를 데이터와 네트워크 중심으로 설계했고, 5G 인빌딩 통신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병원 운영의 기본 언어로 삼았다.
현재 병원 곳곳에서는 안내·이송 로봇을 비롯한 5종 10대의 의료 서비스 로봇이 활동 중이다. 검체와 약품, 소모품을 옮기는 로봇들은 병원 동선을 스스로 학습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이동한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이 사용하고 있는 의료 서비스 로봇 모형. 병원에는 가이드, 이송, 키즈 로봇 등 5종 10대의 의료 서비스 로봇이 활동 중이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예를 들어, 의료 서비스 로봇이 전용 엘리베이터를 탈 경우 엘리베이터와의 연동을 통해 로봇이 가야 할 층에 자동으로 도착한다. 개원 초부터 함께하다 지난해 은퇴한 방역로봇 ‘비누’는 변화의 출발점이 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인력 대체’라는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봇이 맡은 역할은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업무다. 그 빈자리는 환자를 직접 마주하는 의료진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병원 관계자들은 “로봇은 사람을 밀어내는 존재가 아닌 의료진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병원의 심장, 데이터를 바라보는 방
용인세브란스병원의 통합반응상황실(IRS)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병원 한쪽에는 통합반응상황실(IRS)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병원 곳곳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으고 해석하는 중앙 컨트롤 타워다. 환자의 생체 신호, 위치 정보, 의료기기와 검사 데이터, 병원정보시스템(HIS) 정보가 5G 네트워크를 통해 한 화면으로 모인다.
이 데이터는 단순히 ‘보는 정보’에 그치지 않는다. ‘지능형 신속대응시스템(AI-RRS)’은 활력 징후와 의무기록 속 신호를 분석해 환자의 위험도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의료진에게 즉각 알림을 보내 주치의와 간호사의 조기 개입을 유도한다. 병원 관계자는 “시스템 도입 후 일반병동의 순사망률이 유의하게 감소하는 등 환자 안전지표 개선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공간에서 함께 관리되는 실시간 위치추적 시스템(RTLS)은 환자와 보호자, 교직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위급 상황 시 빠른 대응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이 시스템은 코로나19 유행기에 확진자 동선 파악에 소요되는 시간을 약 96% 단축하는 등 안정적인 감염 관리의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기술은 숨고, 환자가 드러난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검체 전처리부터 폐기까지 모든 진단검사 단계를 자동화한 통합 자동화 솔루션을 도입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이 그리는 미래는 ‘기술이 눈에 띄는 병원’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뒤로 물러나고, 환자의 경험이 전면에 드러나는 병원이다. 진료 예약부터 검사, 치료, 회복, 퇴원 이후 관리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의료 서비스가 목표다.
검사실에서는 이러한 철학이 구체적으로 구현돼 있다. 병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검체 전처리부터 분석, 보관, 폐기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한 통합 시스템을 도입했다. 컨베이어벨트 기반 실시간 검체 운송 시스템을 통해 채혈 직후 검체가 지체 없이 검사실로 이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 맨 위) 채혈 직후 검체가 컨베이어벨트 기반 실시간 검체 운송 시스템을 통해 검사실로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디지털 인프라 위에 AI 기술을 접목한 대표적인 분야는 영상진단이다. 흉부 X선과 유방촬영, 초음파, 뇌 자기공명영상(MRI) 등에서 AI는 비정상 소견을 먼저 짚어내 판독의 우선순위를 제시한다.
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의료영상정보시스템(PACS)과 판독 보조 프로그램을 구축해 AI의 영상 분석 결과를 진단 보조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뇌 MRI 촬영 시에는 미세출혈 및 뇌 전이를 검출해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과 치료에 기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 관계자가 AI 스마트 데스크를 사용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원무 창구 앞에서는 ‘AI 스마트 데스크’가 환자를 맞는다. 접수와 수납, 증명서 발급 안내를 맡은 AI 휴먼은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환자들에게서 호응이 높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반복 안내에서 벗어나 보다 복잡한 상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용인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병원은 디지털, AI를 단순한 ‘신기술 도입’이 아닌 병원 운영 전반의 공통 언어이자 운영 철학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사람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를 목표로 삼고, 데이터와 자동화, 실시간 반응 체계가 환자 안전이라는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