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환 ‘앞머리’, 관계가 끝나도 남는 사랑의 쉼표 [MV 리플레이 ⑳]
입력 2026.01.14 14:01
수정 2026.01.14 14:01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가수 정승환은 지난해 10월 30일 정규 2집 ‘사랑이라 불린’을 발매하고 7년 8개월 만에 정규 앨범으로 복귀했다.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앞머리’는 이별 앞에서 상대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는 서사를 담았다. 정승환이 미디어 쇼케이스 당시 이 곡을 “관계는 끝나도 사랑에는 쉼표가 남는다. 끝끝내 사랑에 도착하는 마음을 노래했다”고 설명한 것처럼 뮤직비디오에도 한 사람의 인생 궤적을 따라 사랑의 지속성을 그려냈다.
ⓒ‘앞머리’ 뮤직비디오 캡처
줄거리
뮤직비디오는 백발의 여자아이가 등장하며 시작한다. 소녀가 두건을 머리에 두르는 순간, 흰머리는 검은 머리로 바뀐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소녀의 얼굴에는 갑자기 생기가 돈다.
곧이어 소녀와 소년이 들판에서 서로를 마주 본다. 둘은 종이를 색칠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바라보며 웃는다.
그렇게 한때를 통과한 두 아이는 어느 순간 20대 청년과 여성이 된다. 청년은 정승환이 연기한다. 두 사람은 함께 뛰고, 서로를 안고, 캠코더를 들고 장난치듯 서로를 찍는다. 기록하려는 마음이 사랑의 습관처럼 보인다.
정승환이 여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남자는 할아버지가 돼 있다. 여자를 보니 그 역시 할머니가 됐고, 배우 김영옥이 연기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는 다시 두건을 둘러쓰고 걸어가지만 바람에 두건이 날아가고 할머니는 오열하며 정처없이 걸어간다.
검정색 화면이 잠시 이어진 후 들판에 누워 있는 할머니가 나온다. 할아버지는 등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낸다. 그리고 할아버지 눈에 들어온 건 웅크린 할머니가 아니라, 다시 소녀가 된 모습이다. 할아버지도 어느새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소년은 소녀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둘은 손을 잡고 웃으며 걸어간다.
해석
뮤직비디오의 핵심 장치는 두건이다. 소녀가 두건을 쓰면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변한다. 치매라는 질병은 당사자에게도 공포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건은 그 혼란을 감추는 상징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가 버린 상태를 보여준다.
반대로 캠코더는 기억을 붙드는 도구다. 청년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을 정승환이 캠코더로 찍는 장면은 “지금 이 순간을 남겨두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상대가 잊어버릴 것을 대비해 대신 기억하기 위함이다.
정승환이 들판을 헤매며 여자를 찾는 장면이 나오면 이들이 현재는 노인이고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보호자의 하루는 늘 이렇게 행복하다가도 무너졌다가 다시 감정을 일으키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러나 다시 소녀가 된 할머니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슬프기보다는 행복해 보인다. 현실은 잠시 뒤로 하고 할머니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손을 잡고 다시 뛰어노는 엔딩 씬은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앞머리’ 뮤직비디오 캡처
총평
정승환은 정규 2집 발매 쇼케이스에서 “사랑은 연인 관계만이 아니라 가족·우정·한 시절까지 포괄한다. 아픔과 그리움조차 멀리서 보면 결국 사랑의 일부”라며 앨범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 중에서도 타이틀곡 ‘앞머리’ 뮤직비디오가 주는 여운은 ‘치매’라는 소재의 무게보다, 그 무게를 다루는 방식에서 나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질병을 자극적으로 전시하지 않고 사랑을 비극으로만 소비하지도 않는다. 소년–청년–노년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궤적을 따라 사랑의 지속성을 그린 뮤직비디오는 두 사람의 행복한 한 때를 보여주며 “시간이 지나 지금의 관계는 끝나도 사랑엔 쉼표가 남는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사랑은 오히려 습관으로 드러난다는 것도 잘 표현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 사라진 이를 찾기 위해 달리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 신발을 신겨주는 동작은 대사 없이도 사랑하는 이에게 ‘아직 여기 있다’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이 뮤직비디오는 관객에게 슬픔을 강요하기보다, 슬픔 속에서도 끝내 남는 다정함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지리스닝, 3분 내외의 곡, '도파민'을 추구하는 요즘 세상에서 강요 없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앞머리’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감정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한줄평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끝내 서로를 찾아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