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다시 없을 절대적 위상인 이유
입력 2026.01.10 07:45
수정 2026.01.10 07:45
故 안성기의 영결식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엄수됐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안성기가 후배들의 애도 속에 영면에 들었다. 모든 영화인들이 그를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어른, 버팀목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영화계뿐만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도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진정한 국민배우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움이 크다.
특히 그의 절대적 위상은 거의 전무후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1957년에 아역 배우로 데뷔한 그는 성인 연기자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려 4년 가량이나 무명배우에 머무르다 감독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을 통해 비로소 주목 받는 배우가 됐다. 바로 이 영화부터 안성기의 신화가 시작됐다.
80년대엔 한국 영화계에 새 바람이 불었다. 과거엔 한국 영화를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지 않았었다. 70년대엔 호스티스 멜로물 등이 인기를 끌더니 80년대엔 전두환 정권의 이른바 ‘3S 정책’ 속에서 에로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영화팬들은 서구 영화를 더 수준 높은 작품으로 인식했고, 대학생들이 한국 영화 좋아한다는 말을 드러내놓고 못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그랬던 한국 영화의 용틀임이 시작된 것이 1980년대였다. 그때 한국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리얼리즘 작품을 비롯해 현대 한국인의 욕망과 그림자를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담는 젊은 감독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내며 한국 영화가 부흥하자 영화계에선 이 흐름을 한국 영화의 ‘뉴웨이브’라고 했다.
안성기가 성인 배우로 안착한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바로 80년대 한국 영화 뉴웨이브의 출발점이었다. 안성기는 성인 배우로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우리 영화 뉴웨이브의 문도 열어젖혔던 것이다. 그때부터 안성기는 한국 영화 뉴웨이브의 간판이요 새로운 한국 영화 그 자체가 되었다.
당시 등장한 주목할 만한 젊은 감독들이 모두 안성기를 원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안성기를 추천한 사람은 조감독 배창호였는데, 안성기와 배창호는 그후 한국 영화 최고의 감독-배우 콤비가 되어 80년대 최대 화제작들을 연이어 배출했다. 그밖에 박광수, 이명세, 장선우, 정지영 등의 젊은 감독들이 그를 내세웠고, 80년대에 거장으로 우뚝 선 임권택도 ‘만다라’에서 안성기를 내세웠다.
이렇게 한 배우가 출연한 작품들이 10년 이상이나 계속해서 한국 영화의 대표작이 됐다는 점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바로 이 부분이 전무후무하다. 과거에도 물론 신성일 같은 대스타는 있었지만 안성기처럼 당대의 대표작들을 10년 이상 싹쓸이하다시피 한 경우는 없었다.
현재는 우리 사회와 문화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취향이 다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안성기처럼 단 한 사람이 한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경우는 나타나기 어렵다. 요즘엔 특정 집단 내에서 아무리 스타라도 다른 취향의 집단에겐 잘 모르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과거엔 스타는 모두 국민 스타였다. 특히 80년대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영화가 막 현대화되기 시작하는 특수한 시기였기 때문에 안성기 한 사람이 그 흐름 전체를 대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대중문화는 날로 풍성해지고 다변화되고 있어서 안성기처럼 절대적 위상의 배우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무후무다.
가요계에서도 80년대 조용필 같은 위상의 절대적 스타가 앞으로 다시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80년대라 가능했던 압도적 스타였는데, 안성기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하고서도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화제작들을 배출했다. 기적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그의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좋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형적인 미남이 아닌 평범한 듯하면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로 감독들이 원하는 어떤 역할이든 소화가 가능했다. 소시민, 부랑자부터 엘리트,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렇게 폭이 넓으니 모든 감독들이 그를 원했을 것이다.
안성기는 군복무 중에 시나리오들을 썼는데 그 이유는 연기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다. 그는 나중에 암투병을 할 때도 30kg에 달하는 갑옷을 입고 촬영장을 누볐고,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후에도 촬영 현장으로의 복귀를 다짐했다. 그런 정도의 열정이 있었으니 대표 배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사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는 ‘배우가 더 존중받는 직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한다. 연예인이 ‘딴따라’로 천시당하는 시대에 그는 일과 사생활 모든 면에서 배우의 귀감이 되었다. 그로 인해 연기자에 대한 존중이 더 커졌을 것이다.
사후에도 미담이 알려졌다. 살던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모든 직원들에게 매년 5성급 호텔에서 식사 대접을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선후배, 스태프 등 모든 이에게 성의 있게 대했다. 그가 생전에 아들에게 보냈다는 편지엔 “내 아들 다빈아,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등의 말이 적혀 있었다. 이런 마음을 평생 지켜왔기 때문에 그야말로 국민 스타 더 나아가 시대의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안성기 같은 절대적 위상의 스타는 누구라도 되기 어렵겠지만 후배들이 그의 삶, 일에 대한 진정성을 배운다면 우리 영화계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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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