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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조' 로열티의 달콤함에서 깨야 할 제약·바이오 [기자수첩-ICT]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6.01.13 07:00
수정 2026.01.13 07:00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술수출 규모 21조원…역대 최대

신약 상업화 성공시 로열티 수령, 천문학적 부가가치는 빅파마 몫

기술수출의 구조적 한계 벗어나 근본적인 상업화 근육 키워야 할 때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한국엔 왜 글로벌 빅파마가 없을까”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기술 수출 21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매달 터지는 ‘빅딜’ 소식에 기업은 물론 주주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21조원의 축포 속에 세계가 주목할 만한 K-빅파마가 있었을까.


국산 최초로 미국 FDA 허가의 쾌거를 이룬 ‘렉라자’라는 항암제가 있다. 이 항암제는 유한양행이 개발했지만 글로벌 상업화 이익의 대부분은 판권을 보유한 존슨앤드존슨(J&J)이 가져간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주된 글로벌 진출 방식은 기술 수출이라고 불리는 ‘라이선스 아웃’ 방식이다. 임상 초기 단계에서 판권과 유통권, 제조 기술 등을 글로벌 빅파마에 넘기고, 상업화 성공 시 매출의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받는 구조다. 우리가 FDA 허가에 환호할 때, 그들은 열 배, 스무 배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얻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공들여 키운 젖소를 글로벌 빅파마라는 ‘큰 목장’에 입양 보내고 그들이 이따금 주는 우유 몇 병에 만족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아무리 많은 기술 수출을 달성해도 우리 기업이 글로벌 매출 상위에 이름을 올리는 K-빅파마로 도약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


물론, 신약 개발 분야의 후발 주자가 기술 수출 단계에 안주하는 것은 달콤한 유혹이다. 수천억원이 드는 임상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빅파마의 강력한 유통망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도 분명하다. ‘하이 리스크’를 회피했으니 ‘하이 리턴’도 기대해선 안된다. 상업화 성공 시 창출되는 신약의 천문학적 부가가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로열티 장사’의 한계를 깨고 독자 노선을 택해 성과를 낸 사례가 있다. 바로 SK바이오팜이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를 후보물질 단계에서 팔지 않고 미국 본토에서 직접 판매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 결과 로열티 수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출이 고스란히 실적에 반영되며 성장을 이루고 있다.


SK바이오팜의 사례를 기업 규모와 인프라 문제로 한정 짓는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취약한 HLB은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 판권을 지키며 미국 시장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록 FDA 허가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는 등 부침을 겪고 있지만 상업화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완수하려는 시도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21조원이라는 숫자는 분명 박수 받을 만한 일이지만 이 돈이 다시 ‘기술만 파는 연구소’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기술 수출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현지 마케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규제 당국과의 협상력을 키우는 근본적인 ‘상업화 근육’을 길러야 한다.


언제까지 기껏 열심히 밥상을 차려 놓고 숟가락은 글로벌 빅파마에게 바칠 것인가. K-제약·바이오가 진정한 국가 주력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 ‘로열티의 달콤함’에서 깨어나 전장에 직접 뛰어들어야 할 때다.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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