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망이 키운 구리…철강은 '체질 전환' 시험대
입력 2025.12.30 14:29
수정 2025.12.30 14:29
구리, AI 시대 전력망 필수재 부상...사상 최고가
철강은 전통 수요 둔화 속 ‘질적 전환’ 시험대
원료비 완화에도 회복 제한...고부가 전략 부각
전력망의 핵심 소재인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철강업계는 전통 수요 둔화 속에서 제품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다.ⓒ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가 맞물리며 비철금속 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력망의 핵심 소재인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원자재 시장 내 온도 차도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반면 철강업계는 중국발 공급 변화와 전통 수요 둔화 속에서 제품 경쟁력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AI 인프라 확산이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을 끌어올린 가운데 철강업계에는 질적 경쟁력을 요구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가격은 장중 톤당 1만3000달러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AI 데이터센터와 송·배전망, 신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에 따른 수요 증가에 더해 주요 광산 사고와 관세 우려에 따른 재고 축적이 겹치며 공급 부족이 부각된 영향이다.
구리 가격은 올해 미국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 속에서 변동성을 보이기도 했다. 관세 부과 가능성이 거론되자 선제적 물량 확보 수요가 늘며 가격이 상승했고, 이후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며 단기 조정이 나타났다. 다만 관세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금리 인하 기대가 재차 부각되면서 구리 가격은 다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구리 강세의 근본 배경으로는 AI와 전기화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구조 변화가 꼽힌다. AI 데이터센터는 건설과 운영, 전력 공급 전 과정에서 대량의 구리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기반 산업이 확대되면서 구리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구리는 제조업 전반에 사용돼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선행 지표라는 의미에서 ‘닥터 코퍼(Dr. Copper)’로 불린다. 다만 최근 구리 가격 상승은 경기 회복 기대감보다 전력 인프라 중심의 수요 확대와 공급 차질이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해 코브레 파나마 광산 폐쇄와 올해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 사고 등으로 공급 불안이 이어진 점도 가격을 떠받쳤다.
이 같은 흐름은 철강업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구리가 AI와 전력 인프라라는 신성장 산업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는 반면, 철강은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전통 인프라 투자 둔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의 산업 구조 변화가 철강 수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력망과 첨단 제조, 신산업 분야에는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나 철강 수요를 지탱해온 부동산과 대규모 토목 부문은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로 인해 중국 내 철강 수요 회복은 제한적인 반면, 생산은 크게 줄지 않으면서 잉여 물량이 수출로 유입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원료 측면에서는 중기적인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기니 시만두 광산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 단계에 접어들면서 철광석 공급은 점진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철광석 가격에도 하방 압력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료비 부담 완화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고로 중심 국내 철강사들에 우호적이지만 수요 부진과 글로벌 가격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익성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권지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철강사 입장에서 원료비 하락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철강사의 가격 결정력 강화에 따른 경쟁 환경 변화에 유의해야 한다”며 “철강 수요가 강하게 회복되는 국면은 아니어서 원가 하락에만 기대기보다는 고부가 강재 비중 확대를 통해 스프레드를 방어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철강 수요가 과거처럼 경기 회복과 함께 자연스럽게 확대되기 어려운 만큼, 고급 강재와 특수강 중심의 체질 전환 여부가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구리는 전력망과 AI라는 새로운 수요 축을 확보했지만 철강은 기존 수요 구조가 빠르게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철강사들은 원가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