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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 ‘굿 굿바이’…박정민 눈빛이 완성한 현실 로맨스 [MV 리플레이⑱]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2.27 08:37
수정 2025.12.27 08:37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화사는 10월 15일 디지털 싱글 ‘굿 굿바이’(Good Goodbye)를 발매하고 동명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뮤직비디오는 이별을 준비하는 오래된 연인의 하루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화사와 배우 박정민은 실제 연인이라고 믿길 만큼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디테일한 눈빛 연기로 화제를 모았고, 결국 서로를 놓아주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 장기 연애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완성한다.


ⓒ화사 ‘굿 굿바이’ 뮤직비디오
줄거리


뮤직비디오는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비 오는 바닷가, 두 사람이 함께 떠나는 여행길, 그리고 화사가 홀로 있는 실내 공간이다. 이 세 장면이 교차 편집되며 한 커플의 오래된 연애와 그 끝을 보여준다.


바닷가에서 화사는 빨간 투피스 원피스에 회색 가디건을 걸친 채 모래사장을 뛰어다니고, 검은 셔츠 차림의 박정민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를 여유롭게 바라본다. 화사가 신발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지고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춤을 추면, 박정민은 말없이 구두를 주워 모래를 털어 든다.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누워 술을 마시고, 장난을 치고, 소소한 몸싸움처럼 보이는 다툼을 반복하며 오래된 연인이 공유한 수많은 밤과 시간을 암시한다.


여행길 장면에서는 흰색 드레스를 입은 화사와 턱시도를 입은 박정민이 짐을 끌고 어딘가로 향한다. 마치 웨딩사진을 찍으러 가는 커플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결국 캐리어를 길 위에 내려놓고 가볍게 발길을 돌린다. 서로에게 매여 있던 짐을 내려놓는 듯한 연출이다. 파란 배경 앞에서 두 사람은 격하게 싸우다가도 이내 박정민이 화사의 머릿결을 정리해주고, 비눗방울 막대를 담뱃재를 털 듯 툭툭 치며 웃음 섞인 분위기로 돌아간다. 싸움과 화해가 일상이 된 커플의 모습이 반복된다.


저녁 들판에서는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장난치고,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배경은 바다, 들판, 도로 위로 계속 바뀌지만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은 비슷하다. 지독하게 사랑하고, 지독하게 싸우고, 다시 화해하는 관계. 그런데 이 뮤비의 포인트는 연애 중인 연인의 한 장면이 아니라 이별을 직감한 장기 연인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이다.


뮤직비디오 후반부 바닷가 장면에서 화사는 빗속에서 홀로 춤을 추고, 박정민은 책을 들어 비를 가려준다. 우산 대신 책 한 권으로 비를 막아주는 모습은 자유로운 연인을 끝까지 받아주고 품어주려는 그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후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서로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주고받고 손을 흔들며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엔딩에서 화사는 스튜디오의 자물쇠를 잠그고 짐을 싣기 전, 차 창밖으로 마지막으로 어딘가를 바라본다. 동시에 화면은 밤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문 채 버스를 기다리는 박정민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여전히 미련과 정이 남아 있지만 결국 서로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인 표정이다.


ⓒ화사 ‘굿 굿바이’ 뮤직비디오
해석


‘굿 굿바이’의 주인공들은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 속 이상적인 연인이라기보다 서로의 결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지긋지긋한 커플에 가깝다. 자유로운 영혼인 화사와, 그런 화사를 말없이 받아주며 뒤를 따라가는 박정민의 구도는 이 커플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화사가 신발을 벗고 혼자 앞질러 가도 박정민은 구두를 주워 모래를 털고 묵묵히 뒤에서 따라간다. 싸우면서도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비눗방울 막대를 담뱃재 털 듯 장난스럽게 치는 행동들에는 그들이 만난 오랜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불같이 다투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다시 손을 잡는, 자극적이면서 오래된 연애의 패턴이 짧은 장면들에 농축돼 있다.


그래서 이별 역시 극적인 폭발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의 끝에서 조용히 합의한 모습처럼 그려진다. 짐을 세워두고 가볍게 몸만 빠져나오듯 떠나는 여행 장면, 서로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하는 바닷가 장면,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엔딩은 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헤어진다는 어른의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안녕이 현실에 있을까라는 의문에 뮤직비디오는 완벽한 답 대신 어느 정도의 타협안을 제시한다. 여전히 설레고, 웃기고, 서운하지만 관계를 유지하기엔 너무 많은 싸움과 소모가 있었기에 둘은 서로가 무너지기 전에 미리 한발씩 물러난다. 지독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작별의 방식이다.


총평


박정민의 캐스팅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이다. 각자의 고유한 매력과 특유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사랑받아온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있으면 과하게 꾸며지지 않은 배경에서도 묘하게 세련된 공기를 만든다. 서로를 참아주고 또 견디게 만드는 장기 연애의 공기가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에 설득력 있게 실린다. 서사가 대단히 복잡한 건 아니지만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비슷한 행동들이 반복되면서 이 커플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사랑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만든다.


‘굿 굿바이’는 뮤직비디오 공개 직후에도 큰 화제를 모았지만 제 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중 화사의 축하무대로 둘이 뮤직비디오의 퍼포먼스를 재현하며 다시 한 번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화사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박정민이 신발을 들어주고, 배우들이 이들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 장면은 뮤비의 한 장면을 현실로 끌고 온 듯한 장면으로 회자됐다. 이 무대 영상은 26일 기준 약 1259만회를 기록했고 음원 역시 멜론 차트 톱(TOP)100 1위에 오르며 뮤직비디오가 만들어낸 파급력을 증명했다.


이번 뮤직비디오가 왜 인기를 얻었는지 분석하는 글들과 이를 두고 ‘설렌다 VS 안 설렌다’로 토론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정도로 극명한 호불호 반응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이 뮤직비디오가 파급력을 지닌다는 뜻이다. 뮤직비디오 속 스토리라인과 인물들에 이렇게 관심도가 높은 건 2013년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너를’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경수진과 김영광 이후로 오랜만이기에 반갑기도 하다.


한줄평


로맨스 서사에는 대사보다 눈빛이 중요해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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